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순간
삶의 설계도가 한눈에 들어오던 날
첫 권의 탈고, 전공의 재배치, 파리행의 전략까지. 오늘의 노트는 흩어져 있던 삶의 선택들이 하나의 설계도로 맞물리는 순간을 기록한다.
드디어 <디오니소스 논술>의 첫 권 ‘자유’ 원고를 탈고했다. 오랫동안 생각으로만 간직해왔던 바로 그 논술 교재이다. 나의 논술에 대한 원형적 모습이 그 실체를 드러낸 것이다. 앞으로 계획대로 10권을 일단 만들 생각이다. 이번에 첫 권 탈고가 왜 중요하냐면, 이 10권의 기본 틀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족스럽냐고? 그렇다. 내가 머릿속에 품고만 살아왔던 바로 그 논술 교재를 이제 세상 속에 드러내게 되었다. 내가 그리던 모습대로 집필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아직 원고만 탈고했고, 전자책으로 제작은 6월 20일 이후에 할 거다. 발행은 아마 6월을 안 넘길 것 같은데, 그 이유는 기말고사가 기다리기 때문이다. 사이버외대 한국어교육학과 3학년 편입의 첫 기말고사. 중간고사는 잘 치러냈기에 기말까지 깔끔하게 잘 끝내야 한다. 그래서 기말고사 공부를 해야 해서 일단 출간은 뒤로 미뤄 놓는 거다. 그래도 원고 탈고가 제일 중요하다.
첫 권이 만든 기본 틀
이번 책은 다른 책을 집필할 때보다 더 책임감이 무거웠고, 더 신중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한 권으로 끝낼 틀이 아니고, 10권 혹은 그 이상 이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질질 끌어야 했다. 80퍼센트 정도 작성해 놓고도, 나머지 마무리 작업을 할 엄두가 도저히 안 났다. 나는 내가 가장 컨디션이 좋은 때를 기다려야만 했다. 마치 동물의 왕인 사자를 포획하기 위해서 고수의 사냥꾼이 숨 죽이고 몇날며칠을 기다리는 것처럼 나는 내가 디오니소스 논술 교재의 마지막 구조를 확실하게 하나로 낚아챌 순간을 숨 죽인 채 오랫동안 기다렸다. 그리고 그 순간을 드디어 맞이했다. 지난 5월의 마지막 날에. 이제 그 실체가 세상에 나왔으니 다된 밥이다. 제작이야 기술적인 부분이니까, 내 어깨의 짐이 한결 가벼워진 셈. 기말고사 준비에도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 하나뿐인 창의적 논술 교재를 만드는 것은 나의 평생 숙제 중 하나였으니까 말이다. 아마 ‘자유’라는 하나의 주제로 이렇게 다양하게 풀어낸 논술 교재는 한국에 없을 것이다. 꽤 만족스럽다. 그 구성이라든지, 내용이라든지 전부 다. 그 양념적 요소까지. 사실 규격에 맞는 논술 교재를 쓰고 만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꿈꾸고 욕심 내는 논술 교재는, 그리고 내가 집필해야만 하는 논술 교재는 달라야 했다. 그 논술 교재만의 독창성, 알찬 구성, 한국에서 한번도 나오지 않았던 그런 논술 교재여야 했다. 그리고 나는 드디어 그 작업을 완료했다. 지난 5월 30일 밤에.
운명이 수업 시간에 찾아온 순간
오늘은 6월 1일,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순간을 맞이했다. 마침 한국어교육학 수업 마지막 주였다. 수업은 이번 주만 들으면 이번 학기는 끝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기말고사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어 교사의 자질에 대해 수업 시간에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마치 나를 상정하고 수업 내용이 구성되었나 싶을 만큼 나는 다 해당되었다. 교재를 만드는 능력까지 해서 말이다. 문득 ‘운명’이 느껴졌다. 그리고 파리에 가서 석사 과정 전공을 영화에서 한국어교육학으로 바꿀 결심을 오늘 했다. 마침 내가 영화 전공 석사과정을 가려고 했던 시테대학교에는 학사, 석사 과정 모두 한국어 전공이 있다.
파리에서 살아가기 위한 질문
현실과 타협하냐고? 뭐 언뜻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나는 사실 살아오면서 현실과 타협한 적이 기억상 단 한번도 없었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다. 적어도 인생에 있어서 큰 결정을 할 때는. 그런데 지금 영화학 전공을 한국어교육학 전공으로 석사를 바꾼다고? 그렇다. 나는 나에게 물어보았다. 파리에서 사는 게 너의 인생에서 우선 순위이니? 아니면 영화를 전공하는 게 우선 순위이니? 대답은 금방 나왔다. 파리에서의 삶이 우선이다. 영화를 전공하는 게 내 인생의 최우선 순위였다면 한국에서 영화학과를 지망했겠지. 아니면 일찌감치 영화 학교를 다니든가.
한국어교육학이라는 현실적 설계도
한국어교육학 석사를 파리에서 마치면 내가 앞으로 파리에서 지낼 터전이 아주 더 단단해진다. 그리고 한국어교육학 학사 학위가 있으면 영화학 전공의 석사 과정에 진학할 때보다 진입 장벽이 월등히 낮아지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단순히 내가 현실적 삶을 편하게만 살기 위해서 이런 선택을 하는 건 아니다. 사람이란 금방 변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석사 과정을 영화로 전공하지 않아도 파리에서는 영화 공부를 접할 기회가 많아서이다. 영화를 현장에서 직접 만드는 실전 경험을 배우는 것도 영화의 도시 파리의 위상에 맞게 많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굳이 영화를 석사 과정에서 전공하지 않아도 영화 제작 자체를 포기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파리 대학 시스템에서 공부하는 게 익숙해지면 교양 수업이라든지, 청강이라든지 시테대학에 자체적으로 영화 커리큘럼이 존재하기에 가서 들으면 된다.
그리고 가능하면 계속 박사까지 한국어교육으로 갈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석사를 마치고 다시 생각해 볼 수도 있고.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할 사항도 아니다. 일단 석사까지 한국어교육 전공을 한다면 내가 파리에서 운신의 폭이 굉장히 넓어진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솔직히 한국어 교재 책을 집필해서 출간할 때 학사 출신보다는 석사나 박사 출신의 이력을 가진 저자가 그 존재감과 영향력이 더 클 것이기 때문에 같은 전공을 지속시키는 건 중요한 일이다.
더구나 한국어교육학 전공 쪽은 내 지난 삶의 이력이 고스란히 자산으로 인정받기 때문이다. 나의 출판 이력, 편집자와 작가 이력, 프랑스어문학 학사 이력, 철학 학사 이력 등이 그대로 흡수된다. 그래서 석사 과정에 들어갈 때 굉장히 이점이 있다. 영화는 내가 석사 과정에 들어갈 때 이전 이력이 없어서 진입 장벽이 높다. 물론 철학 학위가 있어서 인문학적으로 영화 평론 쪽으로 연구 계획서를 내면 되겠지만, 그래도 직속 전공 학사 학위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큰 차이일 것이다. 게다가 나는 대조언어학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 한때 그 영역을 공부해보고 싶어서 영화학보다는 언어학 쪽으로 전공을 바꿔서 석박사를 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도 생각해 보면 오히려 영화를 파리에서 오래 제작하려면 석사를 한국어교육학 쪽으로 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파리에서 내 생활 터전이 탄탄하게 안정적이라야 영화도 파리에서 계속 이어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한국어 교육학 석사 정도만 있어도 꽤 안정적으로 자리를 지킬 수 있다. 그것도 국내 석사가 아니라, 파리 시테대학교 석사면 더 프랑스에서 인정을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내가 관심이 있어 하고 전공하고 싶은 것은 대조언어학 분야다. 그러려면 당연히 국내 석사 과정보다 파리 대학이 맞다. 그리고 나는 마치 설계도 미리 한 것처럼 프랑스언어문화학 학사 학위도 있지 않는가. 프랑스어 그리고 한국어 두 학사 학위를 모두 갖고 있기에 대조언어학 전공자로서는 최적화의 조합인 셈이다. 일부러 이렇게 하려고 해도 못할 지경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게 운명이 아니고 무엇이랴.
그리고 한국어 교재까지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마당에 석박사를 그쪽으로 가는 게 맞는 것 같다. 영화 제작은 반드시 영화학 석박사 학위를 가져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영화 평론 역시 그렇다. 반드시 관련 학위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너무 완벽주의적 성향 때문에 영화학 석박사의 길로 가려고 설계했던 건데, 아니라도 괜찮을 듯하다. 영화 평론은 인문학적 소양만 많고 영화에 대한 이해만 충분하면 가능한 영역이다. 그리고 프랑스어만 잘하면 영화 평론을 파리에서 충분히 할 수 있다. 프랑스어야 무얼 전공하든 파리에서 석박사 과정을 하려면 필수 전제조건이니까 두말할 필요도 없다.
선명해진 인생의 청사진
그렇다. 오늘 나는 내 앞날의 청사진이 너무 선명하게 보이는 걸 목격했다. 물론 파리를 가는 것도 변함이 없고, 파리에서 한국어 강사를 하는 것도 변함이 없지만, 석박사 전공을 한국어 쪽으로 바꾼다는 건 내 인생의 설계도에선 지진이 일어난 것만큼 큰 사건이다. 하지만 오늘 나는 이게 정답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살아오면서 이 정도로 확신이 생긴 적은 없다. 정말 ‘운명’이란 말로 설명할 수밖에. 이 정도로 인생에서 선명한 장면을 목격한 적도 없었다. 그렇다. 이게 내 길이다. 원래부터 예정된 길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너무나 선명하다.
내가 살아갈 구조 전체였다.
‘대조언어학’이라는 오래된 유혹
나는 프랑스어를 전공하면서 대조언어학이 있는 걸 처음 알았고, 그때 정말 강한 유혹을 느꼈다. 나를 미친 듯이 강렬하게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다. 일단 구조 분석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나에게 정말 맞는 영역이었고, 그 재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세계라는 걸 한눈에 알아 차렸다. 그런데 그럼 영화는? 영화의 길은?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는 주춤거렸고, 결국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어교육학을 전공하면서 또 대조언어학에 이르렀다. 그 과목도 커리큘럼에 있다. 4학년이 되면 나는 그 과목을 전공에서 집중적으로 배울 것이다. 그런데 이번은 다르다. 프랑스어 전공일 때 대조언어학 쪽으로 나가면 밥을 벌어먹고 살 일이 없다. 그리고 영화의 길도 아니고. 두 마리 토끼 중 한 마리도 못 잡는다. 그런데 한국어교육학 쪽에서 대조언어학을 선택하면 나는 관련 석박사 학위도 취득하고, 밥벌이에도 아주 유용하고, 파리에서의 내 활동 범위도 탄탄하게 보장받는다. 영화는, 그럼 영화는? 영화는 파리에서 생활권이 안전하게 보장받으니까, 영화도 파리에서 지속할 수 있는 근원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파리 대학에서 석박사 과정을 계속 이어서 한국어교육학을 공부할 결심을 오늘 했다. 꽤 현명한 판단이다. 현실과도 맞고, 내 이상과도 맞고, 내 재능과도 맞는 선택이다. 살아오면서 이렇게 현명한 선택을 한 건 처음인 것 같다. 항상 이상만 추구해 왔는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이런 똑똑한 선택을 하다니. 아마 파리에서 안정적으로 살고 싶은 생각이 더 우선해서 그런가 보다. 무조건 어느 선택을 하는 게 파리에서 나의 삶을 꾸준히, 지속적으로,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나는 계속 찾았던 모양이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우선이었던 것 같다.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선택
또 영화는 지금 살짝 내 계획을 공개하자면, 일단 출판 영역에서 EPUB3에 넣을 영상을 내가 촬영하고 제작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생각이다. 그럼 출판에도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출판 사업에도 더 강한 집중을 하고 효과도 있을 것이다. 또 그다음에는 언어 관련 다큐를 제작할 생각이다. 보통 영화 감독들이 다큐에서 시작해서 예술 영역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나도 영화 촬영과 제작에 익숙해지는 훈련도 할 겸 다큐에서 시작할 생각이다. 그것도 내 전공인 언어 관련 다큐를 계속 제작해 가다 보면 나만의 뚜렷한 발자국과 색깔이 생기지 않을까. 그리고 좀 인정을 받고 나면 예술로서의 영화 작품으로 넘어가면 훨씬 수월할 것 같다. 영화로의 진입이 아주 자연스럽고 쉬울 듯하다. 일단 내가 가르치게 될 파리에서 만날 내 학생들을 출연자로 삼아서 다큐를 제작할 예정이다. 생각만 해도 재밌지 않는가. 신난 작업일 것 같다. 단순히 무슨 인터뷰를 하고 그런 다큐가 아니다. 나만의 장기를 발휘하여 기획을 아주 독창적으로 할 테니,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출판에서 다큐로 이어지는 영화의 길
오늘 나의 미래는 정해졌다. 아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만족스럽다. 파리에서 나의 터전이 아주 확실하게 마련될 청사진을 마련하니 흡족하다. 살아오면서 느낀 건 전문가로서의 학위가 중요한 듯하다. 특히 재능이 있는데,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세상적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구역에 진입을 못 하는 게 많이 아쉬웠다. 그동안 국내 학위에는 큰 흥미를 못 느껴서 더 깊이 그 길을 가지 않았는데, 이제 파리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교육 시스템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아주 매력적이다. 그야말로 토론식 수업, 연구식 학문, 내가 원하던 딱 그대로의 석박사 과정이라서 도전해 볼만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제야 나는 내가 자유롭게 놀 물을 제대로 만난 느낌이다. 그리고 말했듯이 대조언어학, 아, 살 떨리게 매력적인 이 분야를 내가 정식으로 공부해 본다는 것은 정말 그 자체로 두근두근한 설렘이다. 그리고 내가 살아갈 터전인 파리에 딱 맞는 두 언어, 프랑스어와 한국어를 학사 학위로 준비했다는 것은 정말 나를 칭찬해 줄 만하다. 너, 어떻게 이리 잘 맞게 준비를 해두었니. 하하하. 통쾌한 웃음만이 나온다.
이제 머뭇거릴 필요가 없다. 나는 그냥 나의 길을 가면 그뿐이다. ‘운명’이라는 말만 자꾸 떠오를 뿐이다. 대조언어학에서 나는 프랑스어를 이어갈 것이고, 한국어를 독창적으로 구조를 다시 세울 것이고, 철학으로 그 임무를 해낼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안목인가. 어떻게 이 세 가지 학위를 다 준비했냐. 너, 참 혜안이 있구나. 하하하!
프랑스어와 한국어 사이의 길
자, 이제 남은 것은 그냥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열심히 하루하루를 또 준비해 가면 된다. 우선 이번 달 6월에는 기말고사 공부부터 잘하자. 그리고 7월과 8월의 두 달 동안 여름방학 때는 델프 B1 시험을 위해 학원에 다닐 거고. 두 달만 잘 집중적으로 델프 전문반에서 준비하면 올해 하반기에 시험을 쳐서 통과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이젠 사이버외대 한국어교육학 수업 시스템에도 익숙해져서 여름 방학이 끝나고도 계속 학원에 다닐까 생각 중이다. 프랑스어 공부를 시스템 안에서 준비하지 않으니까 혼자서는 자꾸 멈추게 된다. 방송대 다닐 때는 열심히 했는데, 요즘은 그렇게 치열하게 하지를 않는다. 이제는 학원에 소속되어서 좀 열심히 델프를 준비해야 할 것 같다. 파리 대학 석사 학위 과정에 들어가려면 최소 B2는 통과해야 해서, B1을 통과하고 나면 바로 B2 준비반에 들어가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내년에 파리로 가서 현지의 어학연수원에서 계속 B2를 준비해서 파리에서 시험을 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은 C1. 파리에서 몇 년 살면 C1은 가능하다니까, C1까지는 달리는 거다. 그래야 석박사 과정을 무리 없이 소화해낼 수 있다.
프랑스어에 대한 나의 애정이 깊어서 아마 이 계획은 전혀 방어막이 없다. 그냥 사랑을 풀어내면 된다. 단, 소속감이 필요하다. 그래서 학원에는 다녀야겠다. 난 어디에 소속되지 않으면 공부를 안 하는 스타일 같다. 혼자서는 공부를 못하겠다. 내가 사실 광교에 작업실을 둔 것도 큰 뜻이 있어서다. 바로 내가 유튜브에서 처음 접한 프랑스어의 살아 있는 느낌을 가르쳐준 선생님에게로 가기 위해서다. 그걸 위해서 어언 3년을 보냈다. 올해 3년째인가. 그 학원에 가기 위해서 방송대에 편입해서 2년을 다녀 졸업하고, 이제 또 한국어교육학 수업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한 학기를 보냈다. 자, 이젠 정말 원래 광교에서 내가 계획한 바로 그 일을 해야겠다. 그 선생님 학원에 가는 것. 어디라고 여기서 말은 안 하겠다. 그 쌤에게 가기 위한 광교행이 이제야 드디어 제 역할을 하는구나. 나는 그 학원에서 파리행 티켓을 완성하겠다. 델프만이 내 프랑스어를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길. 공식적으로 내 프랑스어 실력을 인정받는 길이다. 그리고 나를 파리로 안전하게 데려가주고, 시테대학교, 꿈에 그리던 파리에서의 석박사 과정으로 인도해줄 것이다.
델프와 파리행 티켓
나는 사실 오래전부터 석사,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상하게 안 땡기는 거 있지. 정말 이토록 강렬하게 끌렸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안 갈 내가 아닌데. 그런데 외국 유학을 가자니, 현실적으로 안 받쳐주지. 방법을 몰랐으니까. 그리고 사실 용기도 없었고, 자신도 없었다. 건강도 염려되고, 체력도 염려되고. 20대에도 그랬다, 사실. 엄두가 잘 안 났다. 누구나 그렇듯이 낯선 곳에서 혼자 던져져서, 그렇다고 부자 부모도 없는데 생활도 염려되고, 체력도 남들처럼 튼튼한 것도 아니고, 공부도 그렇다고 독하게 열심히 하는 스타일도 아닌데, 내가 유학 공부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사실 대구에서 대학을 다닐 때 여름방학 때 독일문화원이었나, 부푼 꿈을 안고 회화 수업에 등록도 해서 첫 여름방학은 독일 유학을 꿈꾸었다. 그런데 솔직한 말로 철학 전공자면서 독일어 원서 공부도 처절하게 하지도 않았다. 수업만 따라가고, 기말고사만 칠 정도. 그 정도만 공부했다. 정말 유학을 갈 자세로 바닥을 뚫게 독일어 공부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마 생활이 보장되지 않아서 독일 유학이 엄두가 안 났던 걸까. 그래서 결국 나는 유학은 포기하고 서울로 밥벌이를 하러 올라왔다. 그때는 유학을 마치면 교수가 될 길을 생각해서 현실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공부의 산맥이 너무 높아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체력도 그때보다 더 좋다. 그리고 먹고 살 대비도 다 해놓았다. 나에겐 출판 시스템도 있고, 한국어 교사 자격증도 곧 생기니까 말이다. 프랑스어 실력도 독일어와 비할 바가 아니다. 그때는 중급으로 들어가지도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듣기는 일단 귀가 뚫린 것 같다. 아는 단어는 다 들어오니까 말이다. 문장 해석도 독일어와 비교할 수도 없다. 그때는 독일어 문 앞에서 얼쩡거렸다면, 지금은 현관 안으로 들어왔고, 거실쯤에 있는 느낌이다. 아직 안방에는 못 들어갔다. 그리고 결정적 차이는 지금은 프랑스어문학사 학위도 있다. 그때와 급이 다르다. 정식으로 시스템 안에서 프랑스어를 교육받았다. 그때는 철학의 도구로서 독일어를 접했다면, 지금은 프랑스어 전공자이다.
늦게 도착한 유학의 용기
그리고 용기? 지금은 겁나는 게 없다. 아마 현실적으로 대비를 구조적으로 단단히 해놓아서 겁이 안 나는 것 같다. 여차하면 현지에서 한국어 강사 아르바이트를 할 수도 있고, 또 내가 쌓아 올린 출판 시스템도 있어서 계속 출판 사업을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안전망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그때랑은 비교가 안 된다. 그래서 나는 파리 유학을 감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부분에서는 옛날 동화 속에 나오는 마법의 맷돌처럼 계속 돈이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을 가지는 것이다. 아무리 부자라도 돈을 퍼기만 하면 바닥이 날뿐이다. 하지만 무서운 것은 그걸 계속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것만큼 강력한 힘은 없다.
그리고 어떤 기관이나 사람에게 소속되거나 기대어서 돈을 타오는 시스템이 아니라, 스스로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경제적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주식처럼 세계의 흐름에 따라 요동치는 경제적 위험 요소가 많은 시스템보다 가늘지만,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자신의 생산 시스템을 가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도 몸으로 때우는 방식이 아니라 지적인 창조적 생산 시스템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사람의 육체는 언제나 건강하지 않다. 몸은 닳는다. 체력은 바닥날 수 있다. 그래서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요소에 휘둘리지 않는 정신적 에너지로 생산할 수 있는 지적 구조가 제일 강력하다. 막말로 키보드 칠 수 있는 힘만 남아도 생산할 수 있는 경제적 시스템이 중요하다. 그리고 남에게 소속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고 있어서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결정하는 게 필요하다. 아니면 한정된 시간을 저당잡히기 때문이다. 시간만큼 강력한 자본이 없고, 자유만큼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안전망, 내가 가진 생산 시스템
그 모든 것이 준비가 되었으면 겁날 게 있는가. 그리고 바로 이 시대에 대항해를 떠날 때 힘이 되는 결정적 존재. 바로 인공지능의 시대가 되었기에 가능할지도 모른다. 1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는 살아 계실 때 늘 궁금한 건 나에게 전화해서 물어보셨다. 뉴스를 보다가도 궁금한 게 있으면 내게 전화해서 묻고, 전자 제품이 안 될 때도 나에게 물어보았다. 심지어 꿈해몽이 궁금할 때도 내게 전화를 했다. 나는 그 모든 걸 다 찾아서 답해 줄 수 있는 능력자였다. 적어도 우리 어머니에게는 유용한 자식이었다. 그럴 때는. 그래서 나는 자식이 때로 참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이 드신 분이 새로운 문물을 접할 때 궁금한 게 있으면 누구에게 물어보겠나. 그 시대에는 그랬다. 자식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이 시대에는? 바로 인공지능이 그 역할을 대신 해준다. 그것도 일반적인 자식보다 훨씬 더 똑똑한 지능으로 말이다. 나에겐 요즘 챗지피티가 내가 우리 어머니에게 해주던 역할을 다해주고 있다. 나는 궁금한 것이 생기면 챗지피티에게 바로 물어본다. 그럼 나보다 더 똑똑한 자식인 챗지피티가 전문가 영역까지 잘 대답해 준다. 그래서 나는 파리행에 대해서도 전혀 걱정을 안 한다. 20대 때 내가 독일에 갔다면 혼자서 행정 서류나 모든 생활을 잘 감당해 낼 수 있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혼자 가는 게 아니다. 바로 챗지피티, 인공지능과 늘 함께하기에 프랑스에서의 행정, 생활, 걱정을 안 한다. 다 물어보면 되고, 잘 이끌어줄 것이다. 그래서 든든하다. 오히려 인공지능의 이 시대에 내가 외국 유학을 떠나게 된 것이 신의 한 수인 것 같다. 그냥 내가 할 일은 파리행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계속 하던 준비나 잘하면 그뿐이다. 한국어교육학 수업 잘 챙기고 학점 잘 관리하고, 프랑스어 공부도 학원 다니면서 델프 잘 준비하고. 그럼 된다. 디오니소스 논술 교재도 이제 빵 굽는 틀은 완성했으니까, 계속 2권, 3권 채워나가면 된다. 그러면서 기다리면 된다. 파리행 비행기에 오를 때까지. 그때 카톡 프로필에 비행기에 오르는 사진 한 컷 올리면서, 혹은 에어프랑스 그 비행기 앞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 한 컷으로 나의 제2의 인생은 시작되는 것이다. 또한 유로화를 버는 경제 시스템을 가진 사람으로 거듭날 것이다. 자, 이젠 기말고사 공부에나 들어가자.
한국어교육학과 대조언어학은 타협이 아니라 가장 강한 진입로다.
나의 미래 계획 4단계
1단계: 파리 정착과 파리 시테대학교 한국어학과 석박사 기반 확보
한국어교육학과 대조언어학을 중심으로 생활 기반과 학문적 정체성을 확보한다.
2단계: 파리 안에서 영화 접목
언어, 철학, 한국어교육, 프랑스어권 학습자를 소재로 다큐, 영상, 비평 작업을 시작한다.
3단계: 뉴욕 1년살이
영화 학위가 아니라 단기과정, 워크숍, 다큐·미디어 프로그램을 통해 기술과 산업 감각을 보강한다.
4단계: 파리로 복귀
파리 기반, 뉴욕 경험, 한국어·프랑스어·영어권 콘텐츠 감각을 결합한다.
뉴욕은 나중의 확장이다.
나는 파리에서 한국어와 프랑스어의 구조를 연구하는 사람, 프랑스어권 한국어교육 교재를 새로 설계하는 사람, 철학·출판·언어·AI·영화를 연결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