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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Étoile Bleue Créations · 푸른별창작소)

EDITOR’S NOTE · TOUCH
2026.06.01

터치
손끝에서 시작되는 삶의 편집

오래전 첫사랑의 감각에서 한 그릇의 만두국, 프랑스어와 파리행의 마음까지. 오늘의 문장은 닿는 방식이 세계를 바꾼다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영화 《Touch》는 오래전 런던에서 만난 첫사랑을 반세기 뒤 다시 찾아가는 한 남자의 이야기다. 아이슬란드에서 온 젊은 유학생 크리스토퍼는 일본 식당에서 일하게 되고, 그곳에서 주인의 딸 미코를 만난다. 둘 사이에 생긴 감정은 거창한 선언보다 작은 손길, 함께 머문 시간, 음식과 언어와 시선 속에서 조용히 자란다. 제목 그대로 이 영화에서 사랑은 설명보다 접촉에 가깝다. 한 사람의 삶에 닿은 순간이 사라진 뒤에도, 그 감각은 아주 오래 남아 다시 그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첫 장면에 보여준 북유럽의 아이슬란드 어느 도시의 풍경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문득 북유럽이 가고 싶어졌다. 추운 것은 질색이라 딱히 갈 생각을 안 해봤는데, 북유럽 도시가 주는 그 독특한 매력이 있었다. 나는 파리에서 살게 되면 한번은 꼭 북유럽의 도시를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손끝에서 시작된 요리의 편집

오늘 나는 문득 요리도 이 영화 제목처럼 ‘터치’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했다. 냉동만두를 그냥 찌면 한 끼 식사지만, 작은 냄비에 고기왕만두와 김치왕만두를 넣고, 물을 조금만 잡고, 달걀 하나를 풀고, 마지막에 화이트 식초를 몇 방울 떨어뜨리면 전혀 다른 음식이 된다. 대단한 조리법이 아니라 아주 작은 손끝의 차이인데, 그 차이가 맛의 방향을 바꾼다. 많이 넣으면 망하고, 안 넣으면 밋밋하고, 딱 몇 방울이면 국물의 끝맛이 살아난다. 요리도 역시 창의력의 세계이다.

편집도 결국 그런 일인지 모른다. 원고의 재료를 완전히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문장과 장면과 리듬을 어디에 놓을지 다시 만져보는 일. 닭가슴살은 샐러드가 되기도 하고 파스타의 단백질이 되기도 하며, 냉동만두는 찐만두가 되기도 하고 작은 만두탕이 되기도 한다. 재료는 같아도 손이 닿는 방식에 따라 다른 문장이 된다. 오늘의 식탁에서 나는 다시 확인했다. 창의성은 거창한 발명이 아니라, 이미 내 앞에 있는 것들을 조금 다르게 만져보는 감각에서 시작된다.

손끝이 닿는 방식이 달라지면,
같은 재료도 다른 문장이 된다.

아름다운 영화 뒤에 남은 불편함

그런데 이 영화에서 많이 불편했던 점이 하나 있었다. 이 영화 자체는 너무 아름답고 완성도도 있었지만, 딱 하나, 일본을 피해자처럼 인식하게 한다는 점이었다. 히로시마의 핵 폭탄 투하로 일본인들이 너무 희생양, 피해자처럼 보였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그럼 731부대는? 731부대는? 731부대는? 이 말만 자꾸 되뇌어졌다. 이 영화를 일본 사람이 만든 건 아니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일본 사람들이 피해자로서만 비치는 게 몹시 역겹게 느껴졌다. 이런 말까지 하면 그렇지만, 일본 사람들이 그냥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핵폭탄이 어느 날 갑자기 떨어진 건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세계사 배경지식이 없는 세계인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게다가 동아시아 역사가 그리 세계인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것도 아닐 건데, 아름다운 영화 스토리 뒤에 그 역사적 진실이 묻히는 게 싫었다. 사실 그 핵폭탄이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본 이름을 사용하고, 학교에서도 일본어를 배워야 할 것이고, 한글은 역사 너머로 사라졌을 것이다. 막말로 내가 이 시대에 ‘파리의 한국어 교사’가 될 일도 절대로 없었을 테고. 일본 사람들은 왜 자기들이 핵 폭탄을 처맞은 것만 생각하고, 희생양인 척, 피해자인 척만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런 역사 인식을 따라서 또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은 그대로 일본인 입장에서 영화에 일언반구도 없이 그냥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을 뿐이다. 역겹다.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인 독일은 그래도 반성도 하고, 계속 그 역사를 영화 속에서도 죄인으로 자신들을 소환하는데, 일본은 도대체 뭐냐. 계속 자기들만 희생양인 척 불쌍한 척 하고. 솔직히 조금이라도 역사 속에 반성을 하고 있다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아직도 발악하지는 않을 텐데. 참 아름다운 영화를 보긴 했지만, 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 속에서 그냥 아름답게만 감상할 수는 없다. 내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이건 이 생에선 정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언어를 사랑한다는 일

내가 사실 외국어에 관심이 없었던 것도 이러한 역사 의식 때문이었다. 제일 가까운 선진국 일본의 언어도 도저히 배울 수 없었다. 우리 독립군들이 그렇게나 일제 강점기 때 배척하며 그 언어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했는데, 내가 자발적으로 일본어를 배운다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언어라는 것은 그 언어의 문화에 흠뻑 빠져야 하는 거라서 더더구나 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를 온통 던져버려야 한 언어를 통과하는데, 난 일본어에 내 영혼을 갈아 넣을 자신이 없었다. 영어도 마찬가지였다. 미국 덕분에 우리가 독립을 하고, 한국전쟁 때도 살아남았지만, 내가 청소년기에 읽었던 수많은 문학 작품 속에는 미국이 제국주의로서 우리 민족을 핍박한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었으니까. 나는 그런 문학을 접하면서, 그리고 역사적 사실 속에 엄연히 존재하는 그런 어두운 부분이 있어서 미국의 언어인 영어에 흠뻑 빠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난 외국어에 정이 안 갔던 것. 하지만 독일어는 헤르만 헤세가 있었기에, 우리와는 직접적으로 안 좋은 기억이 없어서 그나마 좋아했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제2외국어로 선택했을 만큼.

프랑스어라는 방어막 없는 언어

그리고 프랑스어. 내가 만난 이 언어는 그야말로 나의 영혼을 갈아 넣어도 될 언어라고 생각했다.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악연이 딱히 없다. 큰 악연은 없다. 다만, 조선시대 말에 하나의 사건이 있었다. 바로 병인양요. 병인양요는 1866년 조선에서 천주교 박해로 프랑스 선교사들이 처형된 뒤, 프랑스 함대가 강화도를 침공한 사건이다. 이때 프랑스군은 강화도 외규장각 도서를 약탈해 갔고, 훗날 한·프랑스 문화재 반환 논의의 중요한 역사적 배경이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도 따지고 보면, 우리 쪽에서 선교사들을 먼저 처형한 게 발단이 되었다. 그리고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약탈해 간 외규장각 의궤는 2011년 145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물론, 법적 소유권이 완전히 이전된 반환은 아니었다. 현재 의궤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으나, 형식상으로는 프랑스와의 5년 단위 갱신 대여, 곧 ‘영구임대’에 가깝다. 하지만 요즘 프랑스 당국의 정책이 바뀜에 따라 곧 이 문제도 반환으로 귀착될 거라고 본다.

여튼 프랑스와는 그래도 큰 악연이 없다. 우리나라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어떤 거부 반응도 없이 프랑스어에 푹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방송대에서 프랑스어 문학사 학위를 받고 보니, 내가 대학교 때 독일로 유학 갈 기회를 주사 쇼크 사건으로 못 이룬 게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프랑스어가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다. 독일어는 지금 들어보면 너무 딱딱하다. 그에 반해 프랑스어는 발음이 너무 부드럽다. 그리고 독일은 전범 국가인 건 사실이고. 프랑스도 물론 아프리카 쪽에 식민지를 만들고 제국주의의 면모를 가졌던 적이 있었지만, 강대국이 세계사에서 그런 역사적 흔적이 없는 국가를 찾기란 정말 불가능하다. 아마 우리나라도 ‘평화의 민족’ 어쩌고 하지만, 강대국이 되었다면 과연 그냥 가만히 있었을까. 아주 위험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솔직해지면 좋겠다. 베트남 전쟁 때 사건을 봐도 우리도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과거의 역사적 추문에서. 어쨌든 프랑스는 나의 영혼에 치명적인 방어막을 형성하진 않아서 난 푹 빠질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에 푹 빠질 생각이다.

황홀경을 지나 현실로

하지만 요즘은 프랑스와 프랑스어에 대해 생각이 좀 달라졌다. 처음의 그 황홀경을 지나서 이제는 좀 더 객관적이고 현실적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프랑스 파리만이 내 인생 제2막의 근거지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프랑스도 세계 여러 나라 중 하나로 이젠 내게 자리매김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프랑스는 영화와 예술과 역사적 유적이 풍요로운 공간이다. 내가 자리를 잡을 곳은 여전히 파리일 뿐. 다만, 그 처음 프랑스를 대했을 때, 방송대에서 프랑스언어문화를 전공하면서 깊이 사랑했던 그 열정이 이젠 좀 차분해졌다고 할까. 하지만 여전히 프랑스어는 아름답고, 그 문화는 화려하며, 그 유적지는 나의 지적 욕구를 자극한다. 사실적으로 달라진 건 없지만, 그냥 열정과 흥분의 도가니에서 이젠 좀 빠져나와 좀 더 현실적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의 태도가 합리적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달라진 건 없다. 왜 이렇게 그 열정이 가라앉았을까 생각해 보면, 일단 방송대를 졸업해서 이젠 소속감이 좀 사라져서 그런가. 아니면 이제 곧 현실이 될 나의 파리행에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합리적 자세로 진지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실용적 자각이었을까. 아니면 이제 프랑스 파리가 영화 스크린을 찢고 나와서 현실이 되어야 하기에 내가 좀 더 냉정한 판단의 세계로 들어섰다고 할까. 그러나저러나 여전히 프랑스 파리는 나의 정신적, 육체적으로 의탁해야 할 곳이다. 나의 제2의 인생의 출발점이 될 곳이다. 이렇게 좀 더 냉철해져야 내 파리행이 더 안전하고 안락하게 쭉쭉 뻗어나갈 수 있기에 난 열정과 흥분을 가라앉히는지도 모르겠다.

떠날 때가 가까워질 때의 양가감정

어쨌든 요즘 나는 코로나19 시절, 제주살이 때와 부산살이 때 그곳을 떠날 무렵의 감정과 비슷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제주를 맞이했을 때 그 흥분과 신남, 정말 너무 황홀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꿈꾼다는 바로 그 제주살이, 처음엔 정말 멋졌다. 상상 그대로였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일 년여가 지날 무렵,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제주살이가 섬에 갇힌 느낌이었다. 부산 해운대살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막상 거기를 떠나올 날이 가까워져 오자, 뭔가 양가감정이 들었다. 시원하기도 했지만, 뭔가 아련해지는 그 이중적 감정 말이다. 지금이 딱 그렇다. 그토록 한국을 떠나고 싶어 했는데, 요즘 뭔가 짠하고, 아련해진다. 이제 진짜 떠날 때가 온 것 같다. 광교도 그렇게나 아름답고 편안했는데, 이젠 제법 무료함이 느껴진다. 광교호수공원이 이젠 너무 익숙해져서 새롭지가 않다. 산책할 때마다 매번 경탄했는데, 이젠 단조로움과 익숙함 사이에 있다. 그래, 정말 떠날 시기가 다가온 것이구나 싶었다. 양가감정도 느껴지고, 이젠 떠날 때가 된 것 같다. 딱 이런 감정이 들 때, 난 그곳을 떠나왔던 것이다.

집으로서의 파리, 통로로서의 세계

그럼 사람들은 말할 수도 있겠지. 파리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면 어디로 떠날 것이냐고. 딱 지금과 같은 시기가 찾아온다면 어디로 떠날 거냐고. 글쎄, 제주와 부산, 그리고 여기 광교는 내가 ‘집’으로 생각하진 않았으니까 떠날 때가 자연스레 다가오는 것이겠지. 하지만 ‘파리’는 내가 ‘집’으로 생각하고 살아갈 테니, 그런 감정이 들어도 안식처 자체를 옮기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이젠 한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게 아니라, 파리에서 미국 뉴욕으로 가는 것이니까 뉴욕살이 1년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감정이 들 때. 하지만 안식처 자체를 옮기는 건 아니고, 그냥 일년살이 정도 할 것 같다. 바람 쐬는 느낌으로다가 말이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폐소공포증에 가까운 감각이 있었다. 그래서 비행기 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한국에서 유럽을 간다거나 미국을 갈 때는 어마어마한 시간을 비행기 속에 갇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14시간이나 걸리는 파리행을 딱 한번만 하고 안 할 것이라는 말이다. 한국에서 편도행을 끊고 나면 내 인생에서 아주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한, 나는 그렇게 긴 시간 동안 비행기를 탈 일은 없을 것이다. 딱 한번뿐이니까, 난 파리행을 단행할 수 있는 것이다. 파리에서 뉴욕까지는 비행기로 7시간에서 8시간 정도 걸린다는데, 그것도 딱 한번만 왕복할 것이다. 한번 갔다가 일 년 후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파리로. 일곱 시간 정도야 잠을 좀 자고 영화 한 편 보다 보면 끝나겠지. 나는 기차 여행은 좋아한다. 버스도 썩 안 내키고, 자동차도 그다지 크게는 안 좋아한다. 다 좁은 장소에 갇히는 거라서. 유럽에서는 주로 기차 여행으로 여러 나라를 갈 수 있어서 난 파리에서 살면 기차로 여행을 주로 다닐 생각이다. 그래서 유럽이 내겐 맞다.

이제 채워져야 할 마지막 단추

어쨌든 유럽을 터치하며 다닐 그 일 년 뒤쯤의 내 제2의 인생을 생각하니, 요즘 나날이 한편으로는 짠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빨리 떠나고 싶기도 하다. 양가감정이다. 제주에서 떠나올 때도 정말 똑같은 감정이었고, 부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애잔하면서도 또 빨리 떠나고 싶은 그 양가감정. 어쩌면 좋으냐. 늘 이런 감정들이 떠날 때마다 생긴다. 이제 정말 때가 되어 오는 듯하다. 그냥 느낌으로 안다고 할까. 난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서, 확신이 들면 행동한다. 제주살이를 하러 갈 때도 모든 여건이 맞아서 간 건 아니다. 그냥 확신이 들어서 밀어붙였고, 생각대로 되었다. 부산도 마찬가지였고, 다시 수도권으로 올라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환경이 다 완벽하게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나는 마음이 차오를 때 움직이는 편이다. 이젠 서서히 내 마음이 차오르고 있다. 이젠 정말 움직일 때라고 여러 곳에서 신호가 오고 있다. 결정적인 건 이제 올 겨울방학 때 사이버외대 한국어교육학과 실습 과목이 끝나면 찰칵! 하고 그 단추가 채워지는 셈이다. 그게 현실적으로 마무리되어야 난 움직일 수 있다. 아무리 내 마음이 차올라도 그 절차가 완벽하게 마무리되지 않으면 한국에서 해야 할 일이 남으니까, 난 무조건적으로 거기까지 잘 해내야 한다. 올해는 그게 마무리다. 그다음에 이제 파리행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 이제 그 과정과 절차만 마무리하면 내가 한국에 굳이 남을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교육실습. 그게 찰칵 하고 채워져야 나는 행동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잘되어가고 있기에 시간만 지나면 될 것 같은데, 모든 일은 일단 다 완료되어야 되는 거다. 일단 거기까지 가고 나면, 나는 이제 파리행에 대해 구체적으로 작전과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우선 교육실습까지 가는 데 집중하도록 하자.

비 오는 저녁, 첫 권을 향해

지금은 화요일 저녁이다. 오늘 저녁부터 비가 많이 온다고 하는데, 지금 여기도 창문 너머 어둑어둑해지고 바람도 제법 좀 선선해지려고 한다. 어두워져서 잘 모르겠는데 약한 빗줄기가 뿌리는 것 같기도 하고, 좀 습한 느낌이 든다. 내일부터는 이달 말일까지 논술 교재 집필 마무리 작업에 올인할 것 같다. 그래야 6월에는 기말고사 공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곧 기말고사다. 한 학기가 이제 진짜 마무리되는 듯. 좀 긴 느낌. 짧다면 짧을 수 있지만,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있고 과제물도 6과목 해서 바쳐야 하니까 정말 긴 느낌이다. 아, 한국어 교사 되는 것, 쉽지 않다. 이제 겨우 한 학기가 아직 지나지 않았는데도 왜 이리 길고 긴 느낌일까. 방송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때는 정신없이 휘몰아쳐서 공부를 해야만 해서 그런가, 짧게만 느껴졌는데. 어쨌든 파리를 가기 직전의 한 해라서 어쩌면 더 길게, 길게 느껴질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냥 두 눈 딱 감았다가 뜨면 파리행의 비행기에 오를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자. 정말 두 눈 질끈 감고 열심히 잘 처리해나가자. 내가 해야 할 공부들, 수업들, 과제물, 시험. 그리고 교육실습. 올 겨울방학 때는 집중학기에 딱 한 과목만 특별 신청해서 듣는데, 그것만 딱 듣고는 나는 자유 아닌 자유다. 아직 사이버대에 얽매여 있어도 온라인으로만 다 수업을 듣고 과제물을 보내고, 시험을 치면 되니까. 교육실습, 딱 그 과목만 잘 해내면 난 자유다. 나머지는 그저 행정절차일 뿐이다. 내일부터는 이번 주 수업 마무리하고, 논술 교재 첫 권 집필 작업을 마무리해야겠다. 집중해서 잘해보자. 내일은 비도 온다니까 제법 선선해져서 작업하기 좋겠다. 그래서 오늘 편집자 노트를 쓰고, 내일부터는 논술 교재 완성을 향해 달리기를 하기로 했던 거다. 자, 꼭 5월이 가기 전에 집필은 마치자. 첫 권은. 제작은 6월에 하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