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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Étoile Bleue Créations · 푸른별창작소)

EDITOR'S NOTE · STUDY
2026.05.04

세상은 알고 보면 의외로 쉬울지도

시험을 앞둔 아침, 나는 공부 대신 잠시 글을 쓴다. 시험이라는 형식은 늘 이상하게 사람을 작게 만들지만, 동시에 지나온 시간을 다시 펼쳐 보이게 한다. 사이버한국외대 한국어교육학과에 들어와 처음 맞이한 중간고사는 단순한 평가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피해 왔고 무엇을 다시 배우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하는 작은 문턱처럼 느껴진다.

시험 모드의 아침

이번 주는 시험 모드이다. 사이버한국외대 한국어교육학과에 들어와서 처음 맞이하는 중간고사라서 매우 조심스러웠다. 뭐든 처음은 익숙하지 않아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니까. 벌써 두 과목을 시험 쳤다.(오늘은 4월 28일) 오늘 두 과목 또 친다. 그런데 한번 다 봐두어서 오늘 이 아침에 편집자 노트를 써본다. 밥을 먹으러 가는 시간은 11시. 그때 다 식당이 문을 열어서. 그때까지 우유 한 잔 마시고, 공부를 하자니 오늘은 좀 이 아침에 글을 쓰고 싶어서. 밥을 먹고 나서 또 저녁까지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 시험 시간대가 직장인을 위해서 밤에 설정되어 있다.

방송대 다닐 때는 시험 날짜와 과목 배정을 각자 그 시험 기간 내에 정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미리 다 정해져 있다. 내가 선택할 수는 없다. 수강한 과목의 시험 날짜와 시간이 딱 정해져 있다. 방송대처럼 직접 출석해서 시험을 치는 건 옵션에 없고, 모두 다 온라인으로 치른다. 그래서 오가는 시간도 아낄 수 있고, 피곤하지도 않고, 교통비도 들지 않는다. 방송대는 학비가 매우 저렴했지만, 교재를 매 학기마다 구매해야 했다. 종이책 교재가 있었다. 물론 전자책 교재도 있었다. 난 종이책 교재를 구매했다. 처음 대하는 프랑스어라서 옛날 방식으로 공부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시스템이 교재가 없다. 물론 복사해서 제본하여 판매하긴 하는데, 정식으로 인쇄해서 나오는 종이책 교재는 없다. 교재비가 절약된다. 이번에는 pdf 파일 교재를 다운받아서 보면 된다. 교재비가 전혀 들지 않는다.

이렇게 방송대와 사이버대학은 시스템이 다르다. 각각 특성이 있다. 두 시스템을 다 경험해 보니까, 의외로 새롭고 재밌다. 둘 다 나는 아주 만족한다. 프랑스어문학은 좀 더 정통적인 학제 시스템 아래에서 기존의 대학 특유의 학문적 분위기에서 배우는 방송대가 좋다고 생각한다. 또 한국어교사 자격증을 위해서는 보다 더 ‘학원’ 같은 분위기에서 배우는 지금 시스템도 좋은 것 같다. 각각 그 목적을 위해서 적합한듯하다. 이래저래 온라인 교육의 시스템의 다양한 케이스를 경험하는 것이 훗날 나의 한국어 교사 활동에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공부밖에 남지 않은 시간

세상은 알고 보면 의외로 쉬울지도 모른다. 난 요즘 수업과 공부에 진심이다. 청소년 시절에 이렇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지만 그때는 알고 싶은 게 너무 많았고,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이것저것 호기심도 많았다. 공부나 수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일단 구체적 목적이 없었다. 또 그때는 공부를 할만큼 체력이 받쳐주지를 않았다. 난 고등학교 시절에 계속 장염을 앓아서 사과 한 조각이든, 뭘 먹더라도 설사를 했다. 계속 화장실에 자주 가니까 몸이 축 처져서 공부에 집중할 체력이 남아나질 않았다. 늘 눕고 싶었고,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은 독서뿐이었다. 그때 누워서 공부를 했으면 어땠을까. 그 생각까지는 못했다. 늘 배가 아프기 때문에 공부를 하면 또 스트레스를 받아서 더 배가 아팠기 때문이다. 다시 청소년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공부에 집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똑같은 환경이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에서 이제 궁금한 게 별로 없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다 알 건 알게 되었고, 많은 것들을 경험해서 하고 싶은 일도 이제 남지 않았다. 다만, 파리로 가고 싶고, 영화를 파리대학에서 공부하고 싶은 게 남았을 뿐이다. 딱히 사고 싶은 물건도, 먹고 싶은 음식도 없다. 모두 다 경험해 본 것들이라 이제 더 이상 뭔가를 한국에서 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한국에서는 이제 더 이상 놀러가 보고 싶은 데도 없다. 한국에서 내 욕망을 자극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래서 사실 공부밖에 할 게 없다. 하지만 파리나 유럽을 여행하고 싶고, 파리지앙으로 살고 싶은 욕망은 있다. 그것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지도 모르겠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먹고 싶은 것도 파리에서 순수한 재료로 된 요리를 먹고 싶지, 이제 한국에서는 더 이상 먹고 싶은 것도 없다. 그래서 요즘 내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것 같다.

나는 원래 공부를 좋아하지는 않는데, 요즘은 하고 싶은 일이 구체적으로 있기 때문에 공부를 한다. 시험 준비도 열심히 하고 말이다. 다시 청소년 시절로 돌아간다면, 아마 이 기억을 다 갖고 가고, 몸을 버틸 수 있는 식단에 대한 정보를 기억하고 간다는 전제 하에서라면 열심히 공부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기억과 정보 없이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하면 또 똑같은 생활이 반복될 듯하다.

시험 트라우마와 숫자의 감각

공부를 해서 시험을 치니까 참 좋다. 뭔가 성취감이 느껴진다. 고등학교 때는 정말 하나도 공부를 안 하고 가니까, 모의고사를 치는 날이나 시험날에는 철없는 상상을 많이 했다. 시험지 공장에 불이 나서 시험을 안 치르면 좋겠다거나, 시험지를 싣고 오는 트럭이 전복되어서 시험을 안 치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 정말 지금 생각하면 참 철이 없는 상상이긴 하지만, 그만큼 시험 스트레스가 심했다. 그만큼 시험 스트레스가 있으면 차라리 공부를 하지, 그런 생각이 들겠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공부를 할만큼 체력이 없었다.

차라리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집에서 준비했더라면 정말 어땠을까. 그럼 꽤 내 삶이 달라졌을 텐데. 왜냐하면 고등학교 생활을 엉망으로 했기 때문에 내신이 정말 나빴고, 몇 십점이나 깎여야 했고, 또 거기다가 한 30점을 또 더 남겨서 갔다. 떨어질까봐 불안해서. 사실 대학에 들어갈 때 시험에서 수학 빼고는 내 점수는 최상위권이었다. 왜냐하면 생각을 해보라. 차 떼고 포 떼고도 남는 점수이니까. 도대체 몇 점을 뗐나. 몇 점에도 당락이 왔다갔다하는데 거의 50점을 떼고 대학에 가다니. 지금 생각하면 참 멍청한 짓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난 왜 그리 계산을 못할까. 그냥 중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쳤더라면 내신 때문에 손해보는 점수도 없고, 점수를 그만큼 남겨서 갈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더 좋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 듯. 더 욕심을 낼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사실 수학도 왜 포기를 했냐면 대학입시를 치던 해에 또 주사 쇼크를 받았다. 소화가 좀 안 되어서 동네 내과에 가니까 그냥 링거를 맞으라고 했든가, 주사였든가 그랬는데 그게 주사 쇼크를 일으켜 큰 병원의 응급실에 실려갔다. 눈의 초점이 안 맞게 되어서. 보통 그런 경우에는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죽을 뻔했던 걸 살아나서 다행이라고 해야겠지만, 그다음에는 좀비처럼 몇 개월을 지내서 수학을 포기해야 했다. 내 공부 계획이 엉망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시간을 너무 보내버려서 꼭 그때 대학에 가야 해서 30점 정도 낮춰서 학교를 선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한 해 더 늦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너무 심했다. 나이가 너무 들어서 대학에 간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선택이 어리석었다. 하지만 까딱하면 대학에 못 갈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무 대학이나 빨리 가야 했다. 내가 그렇게 공부에 최적화된 인간이 아니고, 체력이 워낙 안 좋아서 그 다음해에도 시험을 준비할 수 있을지 장담을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고졸에 머물 수도 있어서 그해에는 꼭 대학에 가야 했다. 하지만 몇 십년을 지나 보니 그때 제대로 잘 설계해서 대학에 갔어야 했다. 그 뒤의 사회적 대접이 너무 다르고, 진입 장벽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참 멍청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학과를 말하는 게 아니라, 대학을 말하는 것이다.

나는 숫자에 약한 것 같다. 시험 점수도 그렇게 멍청하게 많이 남겨서 대학을 선택했고, 경제적 관념에도 숫자에 약하다. 쭉 지난날을 돌아보니 사업가로서 나는 셈이 밝지 못하다. 나는 자선사업가를 하거나, 교육 쪽처럼 셈에 어두워도 되는 길을 선택해야 했다. 나는 숫자에 민감하지 못하다. 그게 참 어리석은 일이다. 하지만 누구 말마따나 그런 기질이기에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인생에는 양면이 존재하는 것 같다.

회피의 오래된 뿌리

이제는 이 모든 것이 눈에 다 들어와서 앞으로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을 것이다. 숫자에 여전히 민감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예전과 같은 실수는 되풀이하지 않을 자신이 있다. 그런 선택지를 안 만들면 된다. 요즘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것은 시험 공부라는 것이 반드시 그 결과에만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니라는 것. 스스로 사투를 벌이면 공부하면서 심리적으로 성장한다는 것이다. 나는 사실 시험 트라우마가 있다. 앞에 예를 든 것처럼 고등학교 때 워낙 공부를 안 해서 시험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진다. 그리고 시험 앞에서 스트레스가 무척 심하다. 많이 불안하고, 다른 것에는 집중이 안 된다. 공부에도 집중이 안 된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 더 공부를 안 했던 것 같고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방송대를 거치고, 이 학교에서 공부하면서 그 시험 트라우마를 많이 극복했다. 이제 시험 앞에서 병적으로 불안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시험 앞에서 작아진다. 속된 말로 시험 앞에서 ‘쫄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암기식 시험에는 여전히 스트레스다. 하지만 많이 나아지고 있다. 공부를 많이 하니까 시험 스트레스가 없어진다는 걸 알았다. 준비를 제대로 하면 시험 트라우마가 극복되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 밤에 두 과목이나 있는데, 이 글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나는 시험 스트레스에서 못 벗어났거나, 숫자의 셈에 밝지 않는 것이다. 보통은 이렇게 시간이 남으면 공부를 더 해야 할 텐데, 나는 어느 정도 준비가 되면 또 이렇게 딴짓을 하고 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밥을 먹고 오면 이제 집중해서 다시 열심히 공부할 것이다.

요즘 공부를 하면서 어떤 한 장면이 떠올랐다. 암기를 열심히 해야 하는 요즘 공부라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그 당시에 포항에 큰 입시 학원이 새로 오픈을 했다. 그때만 해도 포항에는 서울대 졸업생이 귀했는데, 서울대 출신의 원장이 사관학교식인가 뭔가를 표방하면서 스카이대 중심의 목표로 학원을 운영한다는 거였다. 그것도 우리 고등학교 앞에다가 오픈을 했다. 그때는 포항에 고등학교 입시에도 시험을 쳐서 들어가서 일번지 학교인 우리 학교 앞에 오픈을 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그런데 그때 나도 처음에 그 학원에 첫 달을 다녀봤는데, 첫날 테스트를 했다. 그 서울대 출신의 원장이 영어에 열을 올렸는데, 영어 단어 시험을 즉석에서 봤다. 학생들 수준을 알아야 한다고 말이다. 시간을 주고 몇 백개인가 단어를 주면서 그 자리에서 외우라고 했다. 그리고 결과를 발표했는데, 나는 그때 한두 개인가 틀렸던가 그랬다. 그래서 점수를 불러주면서 나를 힐끗 보는 그 원장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네가 이 점수를 받냐. 이런 느낌 말이다. 의아한 눈빛이었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제출했던 성적과 전혀 다른 결과의 점수이기 때문이다. 난 그때 단기 기억력과 집중력은 좋았던 듯하다. 그래서 그날 테스트에서는 나는 상위권 수준과 같은 결과로 나왔다. 하지만 문제는 그 학원을 쭉 계속 다녔으면 결과가 좋았겠지만, 그 학원의 스파르타식 분위기를 난 견뎌내지 못했다. 그래서 한달인가 하고 그만두었다. 항상 도망, 회피, 이게 나의 문제였다. 스트레스가 생기면 극복해야 하는데, 회피하고 마는 그것이 내 인생을 빛나게 하지 못한 듯하다.

이 회피는 언제부터 생겼는가. 초등학교 2학년 시절에 선생님이 구구단을 다들 외워 오라고 했다. 그리고 앞에서 발표를 시킨다고 했다. 나는 그 스트레스가 너무 싫어서 어머니에게 그다음 날 인상을 찌푸리면서 아프다고 말하고 학교에 못 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어머니가 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다. 난 스트레스가 생길 때마다 결석을 했다. 사실 구구단, 아무것도 아닌데 난 그저 앞에서 그걸 시킨다고 하니까 두려웠던 것이다. 사실 그당시 내 머리로 그걸 못 외울 것도 아닌데(사실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수학을 반에서 1, 2등 해서 수학 경시대회에 각 반에서 두 명씩 차출되어 나갈 때 나도 나갔을 정도로 수학을 못하지는 않았다), 그냥 꼭 다음날까지 해야 한다는 그 사실이 너무 스트레스였다. 그리고 발표, 이것도 싫었고. 암기해서 발표를 하는 건 너무 싫었다. 그냥 내 생각을 발표하는 건 너무 즐겼지만, 암기를 해서 틀리지 않게 발표를 해야 하는 건 큰 스트레스였나 보다. 난 생각해보면 완전하지 못한 상태가 노출되는 걸 극도로 두려워했던 것 같다. 틀릴 수도 있다는 걸 허용했어야 했는데, 난 그걸 못견뎌한 것 같다. 결국은 그 완벽주의가 내 인생을 더 안 좋은 상태로 몰고 간 듯하다.

이제 나는 모든 걸 내려놓았다. 시험 공부를 해서 틀릴 수도 있다는 걸 허용한 것이다. 그건 나이 핑계도 대고, 또 뭐 내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틀리는 것 당연한 거지, 이렇게 나에게 허용해준 것이다. 모든 걸 내려놓았다. 그랬더니 시험에 대해서도 마음이 예전보다는 편해지고, 틀린다는 사실에도 심리적 저항감이 적어진 것이다. 그랬더니 공부를 하는 것도 스트레스가 적은 것이다. 이렇게 공부는 여러 가지로 날 성장하게 한다. 청소년 시기에도 배가 아프면 그냥 누워서라도 교과서를 들고 봤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쉽긴 하지만, 그 보상으로 이렇게 파리지앙의 길에 들어선 것이다. 내가 제대로 갔더라면 한국에서 떠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야 가진 것이 별로 없어서 한국을 완전히 떠난다는 게 아쉬울 것도 없다. 결정이 쉬운 것이다. 하지만 제대로 갔다면 한국에 버리고 가야 할 것들이 많아서 내가 파리행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 갔더라도 또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서로를 알아본 두 갈래의 길처럼

그리고 한국어교육 공부를 하다 보니, 그 역사도 알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서 한국어 교사 양성을 한 지도 얼마 안 되었더라. 본격적으로 한 지가 말이다. 내가 출판을 시작하고부터이다. 묘하게 맞물려 있다. 한국어교원 자격 제도는 2005년 7월 28일, 「국어기본법」 시행과 함께 국가 자격 제도로 출발했다. 한국어를 모어로 사용하지 않는 외국인과 재외동포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일정한 법정 요건을 심사해 자격을 부여하는 제도였다. 2006년부터는 한국어교육능력검정시험과 한국어교원 자격 심사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고, 그해 7월부터 한국어교원 자격증이 처음 발급되었다. 이후 한국어교육 전공 학위 과정, 비학위 양성과정, 검정시험, 자격 심사, 승급 제도가 차례로 정착하면서 한국어교사는 단순한 ‘언어 사용자’가 아니라, 한국어를 교육의 언어로 설계하고 전달하는 전문 직업으로 제도화되었다. 내가 출판사를 시작한 2012년은 이 제도가 막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다. 그때 나는 책을 만들며 언어의 바깥을 편집하고 있었고, 지금은 한국어교육을 공부하며 언어의 안쪽 구조를 다시 배우고 있다. 묘하게도 두 시간은 따로 흐른 것이 아니라, 한참 뒤에야 서로를 알아본 두 갈래의 길처럼 이어져 있었다.

실수를 줄이는 설계

의외로 한국어교육이 세계적으로 일찍 시작되지 않았다. 모든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폭발하듯이 한국이 성장했던 것이다. 그것은 한국어의 위상에도 정확하게 일치하는 역사다. 놀라웠다. 서울올림픽이 없었다면 한국어는 아직도 세계인들이 잘 모르는 언어로서 존재감이 적었을 걸 생각하니 정말 아찔해졌다. 1980년대의 한국어는 국제 행사를 앞두고 다시 한 번 제도적으로 정비되었다.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어떻게 보이게 하고 들리게 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흐름 속에서 1984년 「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이 고시되었고, 1986년에는 「외래어 표기법」이 고시되었다. 이어 1988년 1월 19일에는 「한글 맞춤법」과 「표준어 규정」이 함께 고시되었다. 한국어는 안으로는 맞춤법과 표준어의 기준을 정비하고, 밖으로는 외래어와 로마자 표기의 기준을 마련하며 세계 무대 앞에 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훗날 한국어교원 자격 제도가 2005년 「국어기본법」 시행과 함께 출발했다는 사실까지 이어서 보면, 한국어는 어느 순간 갑자기 세계로 나간 언어가 아니라, 규범과 교육 제도를 차례로 갖추며 천천히 세계의 언어가 되어 간 셈이다.

이제 나는 파리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로서의 삶을 사는 것에 내 인생의 보상을 느낀다. ‘책을 만드는 파리의 한국어 교사’ 이게 내 인생 타이틀이 될 것이다. 나는 이제 내 재능을 썩히지 않겠다. 어리석은 판단으로 이제 나를 더 이상 시간 낭비하게도 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도 셈을 썩 잘하지는 못하지만,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출판 사업에서도 재고 관리에서 느슨함, 또 잘못된 선택. 이건 완벽주의에 근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냥 넉넉한 게 좋고, 뭔가 부족하면 안 된다는 것, 모자라면 안 된다는 불안감, 그것이 모든 걸 느슨하게 했다. 경제적 관념으로 재고 관리도 빠릿하게 잘 챙겨야 했고, 모자랄 때만 인쇄를 해야 했다. 뭐 쌀도 아닌데 그냥 넉넉하게 두는 건 전략적으로 실패였다. 그게 모두 관리와 재정 판단에 대한 능력 부족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책을 못 만든 것도 아니고, 책이 그렇게 잘 안 팔린 것도 아닌데도 늘 허덕여야 했던 건 나의 느슨한 판단, 안일한 태도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실 경제적 판단과는 맞지 않는 먼 미래에 대한 몽상적 상상력 때문이었다. 관리를 잘해야 했다. 그리고 너무 자선사업가적 마인드가 문제였다. 아무리 책이 문화 상품이라고 해도 국내 작가를 발굴해야 한다는 몽상적 마인드가 결국 패착 원인이다. 내가 기획했던 다른 책들이 잘 나가도 출판 실험을 하면서 전력이 없던 작가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자선사업가적 마인드는 멍청했다. 한두 번 해보고 아니면 접어야 했는데, 그걸 반복했던 것이 패착의 원인이다. 너무 낭만적 마인드여서 현실적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사업가로서는 맞지 않았다. 이제 나는 나의 모든 패착 원인을 알게 되었다. 청소년 시절의 공부에 대한 패착과, 사업할 때 패착 원인. 이 모든 걸 이제 알기에 앞으로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것이다.

어려운 시절이 알려준 사람의 품격

이제 파리행. 이 목표를 향해서만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잘해나가고 있다. 일단 열심히만 하면 나는 잘해낸다. 그리고 이제 전자책은 재고 관리가 필요없는 분야이고, 앱도 마찬가지다. 종이책을 내더라도 이제 재고 관리는 잘할 자신이 있다. 나는 실질적인 부분에서는 능력이 있고 다 잘하고 있었지만, 그걸 운영하는 데서 패착이 있었다. 그러니 여전히 그냥 공부를 열심히 하면 좋은 성적을 낼 것이요, 일을 열심히 하면 좋은 성과를 낼 것이다. 관리 부분은 없애면 되는 것이다. 내가 못 하는 건 아예 배제를 한 설계대로 간다면 앞으로는 과거와 같은 패착은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제 나는 주변을 다 정리하는 모드로 가서 과거에 내가 저질렀던 실수와 과오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고 있다. 그 작업이 올해는 거의 다 끝날 것 같다. 그리고 내년 봄에는 파리로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러고 나서도 숙제가 남겠지만, 그건 파리에 가서 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다. 뭐 당장 죽을 목숨도 아닌데 급할 건 없지. 내가 오늘, 내일 죽을 것도 아니잖은가. 나에겐 긴 시간이 남아 있다. 그것도 현명한 나로서 존재하는 그 시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젠 멍청한 선택이나 실수나 잘못은 하지 않을 생각이니까 패착은 없다.

사실 사업도 운이 따라줘야 한다. 포항이 지진이 나서 집값이 폭락한 것도 내 죄는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코로나19가 갑자기 닥친 것도 내 잘못이 아닌데, 나는 사업적으로 패착의 길로 더 들어서야 했다. 물론 나의 관리적 실책에 덧붙여저 그 충격 여파가 더 크게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천재지변만 아니었다면 한동안 겪었던 어려움은 안 겪어도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이라면 이상하지만, 사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볼 수 있어서 어쩌면 다행이었다. 아니면 나중에 큰돈을 벌었을 때 또 자선사업가적 마인드로 이 사람, 저 사람 안 가리고 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마구 퍼줬을 테니까 말이다. 지금처럼 경제적으로 냉철한 마인드로 성장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어려운 시절을 겪고 나니까, 누가 내 편인지, 누가 적군인지 알겠더라. 또 어떤 사람의 그릇이 크고, 어떤 사람이 간장 종지만한지도 알겠더라. 사람이 힘든 일을 겪을 때 상대의 품격을 알게 된다. 참 그런 면에서는 어려운 시절도 약이 되는 법이다.

공부는 생존의 기술이다

나는 내가 만든 요정 이야기책에 나오는 요정처럼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에게는 큰 선물을 안겨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상종을 안 할 생각이다. 나는 반드시 어떤 식으로든 보답하는 사람이다. 이제 나는 다시 꽤 명석해져서 어떤 일이든 잘해낼 수 있게 되었다. 앞으로는 엉뚱한 부분에서 실책을 하지 않고, 실질적 영역만큼 제대로 해낼 것이다. 그럼 그 결과는? 말해 뭐해. 이제는 내 재능에 걸맞는 과실을 수확할 것이다. 계속 멍청하게 살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사람에게는 다 품격이 있는 듯하다. 평소에는 잘 모르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본색을 드러낸다. 나는 그 품격에 맞는 대우를 해줄 생각이다. 그리고 솔직히 내가 쓸 돈이 어디 있겠는가. 큰돈 벌어봐야 영화 만들고, 도서관 만들 생각이나 하지. 딱히 들어갈 데도 없다. 그러니 은혜를 갚는 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지금 준비 중인 디오니소스 논술 교재는 한국어 교재의 바탕이 될 것이다. 앱 제작 등 그 기초 시스템이 나중에 다 한국어 교재에도 잘 적용될 것이다. 나는 이제 한국어교사 자격증만 따고 나면 딱히 암기해야 할 공부도 없다. 그러면 이제 책을 본격적으로 만들 생각이다. 물론 파리에서 한국어 교사도 하면서 말이다. 내가 무슨 책을 만들 수 있을까? 그건 파리라는 드넓은 소재가 충만한 영감을 줄 것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세상, 세계의 중심이 될 그곳에서 나는 또 아주 경제적인 길도 발견할 것이다. 보답하기 위해서 나는 큰돈을 벌 궁리를 한다. 사실 난 그 보답이 아니라면 굳이 나 자신을 위해서 큰돈을 벌 필요는 없다. 영화 제작도 프랑스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많아서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어서 굳이 그것 때문에 큰돈을 벌 필요는 없다. 도서관도 반드시 지을 필요도 없으니, 굳이 노력해서 큰돈을 벌 궁리를 안 해도 된다. 하지만 보답을 해주기 위해서 난 큰돈을 벌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게 내가 돈을 벌려고 노력하는 심리적 지렛대가 되는 것이다. 그런 게 없으면 나는 굳이 큰돈을 벌려고 하지 않을 인간이니까 말이다.

세계 정세를 요즘 보자면, 정말이지 ‘예측 불가’이다. 세상은 이제 새로운 힘의 균형으로 판이 바뀌고 있다. 내가 코로나 19는 정말 예측 불가라서 앉은 자리에서 당했지만, 이제 앞으로의 환란은 절대로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을 읽는 인문학의 힘을 나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활용할 것이다.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짜다는 속담도 있듯이 지식은 사용해야 한다. 이론만의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나는 내가 획득한 인문학적 지식과 통찰력으로 앞으로 올 환란의 시대에 맞서 현명하게 대처할 생각이다. 파리행도 그 일부라고 할 수도 있다. 내가 주변에 아무리 설명을 해줘도 눈이 안 트인 사람은 진실이 보이지 않는 법이다. 코로나는 갑자기 들이닥쳤지만, 이번에는 서서히 잠식되어 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 물론 통찰력의 시력이 낮은 사람에겐 아무리 보라고 해도 보이지 않지만 말이다. 이젠 앉아서 당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인문학적 해석 능력과 세계의 지식과 판단력으로 내 앞길을 제대로 헤쳐 나갈 것이다. 그것이 오늘 내가 공부하는 힘이고, 이유이기도 하다. 공부는 정말 사람을 강하게 하고, 현명하게 하고, 성장하게 한다. 앞으로는 어떤 공부든 놓지 않을 것이다. 계속 두뇌를 회전시키고, 심리적으로 강철같이 강하게 우뚝 설 것이다. 중간고사 공부를 하면서 너무 장엄한 태도인가. 하지만 그냥 내가 공부를 하면서 느낀 소회를 풀어놓은 것이다. 나는 공부를 통해서 나 자신을 느껴서 희열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평생 이 희열을 느끼며 살고 싶다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