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하르방에게 길을 묻다
코로나 19 시대를 맞이해서 제주살이를 선택했던 나. 백신 주사는 죽기보다 맞기 싫고, 그렇다고 아파트 안에서만 갇혀 살고 싶지도 않았기에 나는 2020년 9월, 제주로 향했다. 그 2년의 시간을 담은 이야기. <돌하르방에게 길을 묻다> 여행 에세이는 그래서 매우 특별하다.
어제(이 글을 쓰는 오늘은 4월 15일 수요일이다. 여느 잡지의 시스템처럼 편집자 노트 발행일과 실제로 원고를 작성하는 날은 다르다.), 난 제주살이 때 알았던 헤어숍으로 갔다. 세렌디피티 서초점. 세렌디피티(serendipity)는 뜻밖의 행운, 또는 우연히 좋은 것을 발견하는 능력이라는 의미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냥 운이 좋다는 뜻보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가치 있는 발견을 하는 것에 가깝다. 즉, 세렌디피티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뜻밖의 가치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우연히 어떤 사람을 만나거나, 별생각 없이 펼친 책에서 꼭 필요한 문장을 발견하거나, 다른 것을 찾다가 더 중요한 답을 얻게 되는 경우처럼, 준비되지 않은 우연이 삶에 선물처럼 들어오는 순간을 설명할 때 쓰인다. 그래서 세렌디피티에는 운이라는 요소도 있지만, 그 우연의 가치를 알아보는 감각까지 함께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참 예쁜 말이다. 같은 제목의 영화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 단어에 대해 왜 이렇게 잘 아느냐 하면, 예전에 같은 제목의 책을 편집했던 기억이 있어서다. 어쨌든 내게 이 단어는 생소하지 않은 의미인데, 제주도에서 헤어숍을 찾던 중 발견한 이름이 바로 ‘세렌디피티’다. 사실 난 대부분 사람이 그런 것처럼 헤어숍을 쉽사리 잘 바꾸지 않는다. 한번 맞다고 생각하면 10년을 넘어 계속 한 미용실만 다닌다. 그 헤어숍이 잘 맞다기보다 그 헤어디자이너가 잘 맞아서 다니는 것이다.
세렌디피티, 다시 이어진 인연
내가 서울에 와서 여기저기 미용실을 전전하다가 딱 발견한 곳이 바로 강남역에 있는 박승철헤어였다. 거기 우연히 갔다가 마치 가위손처럼 예술적으로 가위질을 하는 신비한 헤어디자이너를 보았다. 가위질은 음악처럼, 리듬처럼, 고아한 춤사위를 보는 듯이 마술처럼 빠르고 우아했다. 그래서 그때 결심했다. 이 디자이너에게 내 머리를 맡기자. 그리고 이후 인연은 쭉 이어졌고, 원장으로 한양대점으로 독립해 나갈 때 나도 따라갔다. 그리고 제주살이를 떠날 때도 비행기로 다시 서울로 올라와서 머리를 자르려고 결심하고 갔는데, 코로나 시기이고 말처럼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후 한 번도 다시 만나지 못했고, 코로나가 끝나고 다시 올라오니, 한양대점은 없어지고 다시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제주도에 가서도 어느 미용실에 내 머리를 맡겨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내 머리털은 동화 <방랑의 고아 라스무스>의 주인공 라스무스처럼 돼지 머리털로 뻗는 머리카락이다. 아무나에게 맡겼다간 온 머리카락이 하늘을 향해 만세를 할 참이다. 고수들만 내 머리카락을 뻗치지 않게 자를 수 있다. 그러다가 인터넷 검색의 무한한 클릭질 끝에 알아낸 곳이 바로 세렌디피티. 제주도에서는 기어가 6단까지 올라갈 수 있는 자전거로 나는 미용실에 갔다. 애월의 해안도로를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면서 달리는 기분이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미용실에도 자전거를 타고 해안도로를 감상하며 갈 수 있다는 건 제주살이가 허락해 준 낭만이었다. 세렌디피티는 애월의 바다를 뒤로 하고 압도적인 대문에 전면이 통유리로 된 아주 독특한 미용실이었다. 오직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장엄한 광경이다. 헤어숍이 이렇게 장대한 아름다움을 뿜어내도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곳에 처음 갔을 때 정말 머리 자르러 오는 맛이 났다. 기다리면서도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서 애월 앞바다를 감상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곳에서 만난 헤어디자이너가 어제 내가 다시 찾아간 그 디자이너.
우리는 무려 4년 이상만에 만난 반가움에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사실 내가 제주살이를 시작할 무렵, 비슷한 시기에 제주도로 발령이 났고, 나와 비슷한 시기에 즉 2년여의 제주살이를 마치고 서울로 왔던 것이고, 나는 부산 해운대로 작업실을 옮겼다. 가끔 들렀는데도 날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예약자 이름을 보고서도 설마 같은 사람일까 싶었다고 한다. 4년 만에 다시 불쑥 찾아온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모양. 나 역시 그동안 너무 바빠서 그냥 지금 작업실이 있는 광교에서 머리를 해결했다. 같은 건물 안의 헤어숍에 가면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엘리베이터만 타면 금방이라 시간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항상 2%가 아쉬웠다. 하지만 방송대를 다니고, 출판일을 병행하느라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일단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예전에 코로나 19 시기 이전에는 운정 신도시 작업실에서 한양대점까지 헤어숍을 다녔던 데 비해 확실히 마음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제 방송대를 졸업하고 나니, 나에게도 마음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다시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나서 예약하고 찾아갔던 것이다. 사실 내가 예전에 유튜브를 했는데, 지금은 비공개로 해놓았지만 나는 볼 수 있다. 우연히 폰으로 예전 유튜브를 보다가 제주살이할 때 내 머리 모양이 꽤 괜찮아서 다시 세렌디피티를 찾아 서초까지 머리를 자르러 갔다. 설마 기억을 할까, 금방 알아볼까 싶었는데 대번에 알아봐줘서 나도 놀랐다. 머리를 자르고 염색을 하면서도 계속 제주살이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참으로 놀랍기만 하다. 내가 제주살이를 하긴 했나 보다. 요즘 예전 일은 마치 먼 이야기처럼, 꿈을 꾼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실제로 내가 제주살이를 하긴 했구나. 난 4, 5년 전의 일이 마치 40, 50년 전의 일처럼 까마득하게만 여겨진다. 왜일까. 이제 나의 온 신경은 현재와 미래로 향해 있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제주살이를 할 때 코로나 19시기와 겹쳐서 너무 정리정돈되지 않고 주변이 어수선해서일까. 힘든 시간을 보냈던 시기라 그런지 마치 전생처럼 느껴질 정도로 아득하기만 하다.
어쨌든 버스를 한 번 갈아타고 찾아간 보람이 있어서 마음에 들게 컷을 하고 왔다. 확실히 컷라인이 다른 것 같다. 미묘한 데 다르다. 그게 참 기술인 듯. 뭔가 라인이 다르다. 그래서 마음에 든다. 앞으로 파리에 갈 때까지는 서초까지 나가야 할 듯하다. 지하철역 주변이 아니라서 버스를 타고 가는 게 빠르고 편하다. 내가 아직도 제주도에 살고 있다고 착각하는지, 버스를 도통 안 타봐서 그런지 초행길이라 두 시간 반 전에 출발했다. 그런데 버스가 금방 금방 왔다. 10분도 안 걸려서 온다. 역시 수도권, 신도시에 산다는 것은 여러 모로 편리한가 보다. 대중교통이 이렇게나 잘되어 있다니! 한 번 갈아타고 가는 길이지만, 버스정류장도 바로 앞이라서 지하철보다 더 편했다. 그래서 예약 시간보다 한 시간 반이나 일찍 도착해버렸다. 그런데 마침 양재천이 근처라서 산책을 했다. 늘 광교호수공원에서 산책을 하곤 했는데, 어제는 양재천에서 산책을 한 것이다.
양재천에서 떠오른 질문
사실 양재천에 꼭 한번은 와보고 싶었다. 서울에서 유명한 산책길이 양재천이 아닌가. 게다가 내가 예전에 모시고 있던 사장님이 양재천을 매일 산책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나는 꼭 한번은 와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 사장님이 강남에 빌딩을 몇 채나 가지고 있는 강남 부자였기 때문이다. 강남 부자가 매일 산책하는 양재천이 어떨까 궁금했던 마음도 있었다. 왜냐하면 그 사장님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 양재천을 산책하신다고 나에게 자랑하듯이 말씀을 하셨기 때문이다. 양재천이 그만큼 걷기에 좋다고 말이다. 나는 강남 부자의 산책길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사는 데 바빠서 가본 적이 없었다. 아무래도 근처에 갈 일이 없었던 것도 있었는데, 마침 헤어숍 바로 길 건너에 양재천이 이어져 있어서 나는 남는 시간동안 산책을 했다. 어차피 나의 일과 중 하나는 광교호수공원 산책인데, 대신 어제는 양재천을 거닐었다.
그런데 내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해서일까. 아니면 광교호수공원이 너무 장대해서일까. 이미 제주 애월해안도로를 충분히 만끽하고 나서일까. 내 눈에는 거의 도랑처럼 보이는 그 양재천을 걸으면서 나는 한국의 강남 부자가 산책하는 이 길이 너무 볼거리도 없고, 빈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장님은 평생 집(물론 우리나라 최고의 아파트, T로 시작하는 바로 그 유명한 건물에 살았지만), 강남 빌딩, 양재천, 이 트라이앵글이 주된 생활 루틴이었다. 그 루틴을 평생 거의 안 벗어나고 사신 듯하다. 어제 양재천을 거닐면서 몇 년 전에 돌아가신 그 사장님 생각이 많이 났다. 나에게도 잘해주셨는데 내가 재택근무를 요청하면서 그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난 퇴사를 했던 것이다. 사장님은 그때 내 요청을 들어주고 싶어도 다른 직원들의 기강이 흔들릴 것 같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좋은 연봉의 편안한 자리였지만, 영원히 마음 편하게 재택근무를 하고 싶어서 결국 내 회사를 차리고 말았다. 내가 편집자상 금상을 받은 사실도 모르시고, 그 사장님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걸로 알고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서울에 와서 여러 인연을 많이 만났다. 빌딩 몇 채를 가진 강남의 부자도 만나봤고, 또 박정희 정권 당시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안기부 간부 경력이 있던 교수님과도 깊은 친분을 쌓았고, 3선 국회의원과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만큼 별의별 계층의 사람을 다 만나봤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서 지금은 이미 저세상 사람들이다. 인연이란 게 참으로 묘하고 신비하다. 이런 의미로 제주살이할 때 마침 같은 시기에 헤어 디자이너와 고객의 인연으로 만난 것도 참 재밌다. 우리는 어제 줄곧 제주살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댔다. 즐겁고 재미있고 반가웠다.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기분이었다.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같은 시기에 제주살이했다는 그 공통 분모가 이야기거리를 풍성하게 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어제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의 작품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이 유독 떠오르는 날이었다. 양재천을 거닐면서 나는 센강을 거닐고 있을 내 미래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파리는 분명한 내 인생의 해답이라는 확신이 더 굳어졌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인생을 즐길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물론 다른 의미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디오게네스처럼 사는 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자유’는 내 인생에서 첫 번째 키워드다. 영화관에 가고 여행을 다니는 것도 자주 해본 사람만이 그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하고 극장에 가도 소화가 안 되어 고통스럽게 영화를 보는 비극이 벌어진다. 젊을 때부터 즐기지 않은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 즐기려고 하면 오히려 힘든 고통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가까이서 그걸 지켜보면서 과연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심각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그 돈으로 몇 천만 원짜리 유럽 여행을 가더라도 결국 음식이 입에 안 맞아서 짜증만 난 여행이라고 내게 푸념만 늘어놓는 걸 보고 여행도 젊어서부터 즐겨야 나이 들어서까지 잘 즐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모두 나름의 인생에 최선을 다하겠지만, 과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의 질문을 다시 한번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내가 사실 파리살이를 결심한 것도 제주살이를 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도 용기를 못 냈을지도 모른다. 2년의 제주살이와 1년의 부산살이를 해 본 경험으로 파리살이가 같은 선상에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만, 파리는 제주도와 부산과는 달리 언어가 다른 곳이라서 그 언어를 준비하는 시간, 그리고 그곳에서 자생할 수 있는 자격증을 준비하는 시간이 더 걸릴 뿐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살까. 적어도 나는 이제 내가 무엇으로 사는지는 확실히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의 해답은 파리와 센강이다. 제주의 애월해안도로, 해운대에서 송정까지 산책길, 광교호수공원의 산책길을 넘어 이젠 파리 센강을 산책하는 것이 나의 일상으로 기다린다. 며칠 전에 사무실 전화까지 정리했다. 얼마 전에 팩스를 정리하고, 이젠 전화까지 정리했다. 번호를 해지하고, 이제 메일로만 연락하라고 책읽는귀족 홈페이지에 공지를 올렸다. 이제 시스템을 완전히 파리에 있는 것과 동일하게 바꿔나가고 있다. 어차피 파리에 가면 한국 전화는 사용할 수 없으니까 말이다. 미리 정리해서 그 시스템을 유지하는 것이다. 파리에 가서 살면 휴대폰 한국 번호는 계속 살려둘 것이다. 그 폰은 이제 업무폰이 되어서 한국의 거래처와 연결되는 폰이고, 파리에서 새 휴대폰을 하나 사서 프랑스 통신사에 가입해서 그 폰은 개인적 폰이 되는 것이다. 파리에서 이제 펼쳐질 나의 개인적 친분들, 그리고 파리살이에서 행정적 연락처 등등, 파리 거주를 위한 폰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폰을 두 대 사용하는 것은 파리가 처음이 아니다. 나는 코로나 19 이전에도 사이드 폰이 하나 더 있었다. 주된 폰이 있었고, 사이드 폰은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사람들을 위한 폰이었다. 왜냐하면 카톡 프로필을 통해서 내가 출판사 대표라는 게 드러나지 말아야 할 경우도 있고, 굳이 다 알려가면서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없어서 사이드 폰을 하나 더 마련해야 했다. 그리고 코로나 19 시기에는 사적 만남이 차단되었기에 그 폰이 필요가 없을 줄 알았는데, 당근 생활을 열심히 하다 보니 그 폰이 자연스럽게 당근 전용 폰이 되었다. 그때는 당근페이나 당근으로 전화를 거는 시스템이 아직 나오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연유로 나는 사이드폰에 익숙해서 파리에 가서도 폰을 두 개 사용하는 게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한국 폰은 국내 연락폰, 주로 카톡을 통해서 연락하면 될 것이고, 시차에 관계없이 내가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 휴대폰은 현지 생활을 위해 늘 갖고 다니면 될 것이다. 서점이나 또 내게 문의를 해오는 경우는 지금도 모두 메일로 오기 때문에 내가 파리에서 살더라도 대응하는 데는 문제가 전혀 없을 것이다.
정리한다는 것, 떠날 준비를 한다는 것
아, 그리고 며칠 전에는 그동안 갖고 있던 예전 폰들을 다 싹 정리했다. 개인정보가 담긴 휴대폰을 처리하지 못하고 늘 끌고 다니다가 요즘 ‘민팃’이라는 기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폐휴대폰을 개인정보 걱정 없이 처리해 주는 기계다. 마침 길 건너 갤러리아 백화점 6층에도 그 기계가 있다는 걸 알고 가지고 있던 휴대폰 몇 대를 다 정리했다. 예전에 사용하던 사이드폰까지. 아이폰인데도 배터리가 완전히 맛이 가고 구형폰이라 폐휴대폰 처리를 해주는 대신에 1,000원을 지급받았다. 사이드폰은 삼성폰의 아주 예전 버전이고, 무척 저렴한 폰이었는데도 5,000원을 받았다. 참 편리한 기계였다. 챗지피티의 안내로 미리 집에서 유심을 빼서 다 처리하고 초기화 설정까지 마치고 그 기계 안에 넣었더니 잘게 부셔서 폐처리해준다는 안내가 있었다. 부속품은 빼서 재활용할 건 하겠지. 어쨌든 그나마 안심하고 처리할 수 있었다. 참 좋은 세상이네. 이런 기계까지 생기는 걸 보니. 서로 윈윈하는 거지. 이제 덕분에 홀가분하게 파리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제일 처치 곤란한 게 바로 휴대폰이었으니까.
어쨌든 나는 사무실용 전화와 팩스, 그리고 폐휴대폰들까지 말끔하게 정리를 마쳤다. 꽤 후련했다. 그런데 휴대폰을 처리할 때는 마음이 좀 짠했다. 뭔가 휴대폰에는 말할 수 없는 어떤 감정들이 쌓여 있는 듯하다. 챗지피티의 말대로 휴대폰은 단지 기계가 아니라, 그 시절의 사연이나 감정, 이야기들이 들어있기에 마음이 착잡할 수도 있다. 나는 과거를 싹 다 정리하는 느낌으로 폐휴대폰들을 말끔히 처리했다. 이제 남은 건 뭘까. 정말 오래된 컴퓨터 하드와 최근에 대형 모니터를 당근에 처리하고 그 비용으로 작고 아담한 새 모니터로 갈아탔는데, 그거랑 키보드 정도. 작은 책상. 그리고 50인치 TV. 이 정도만 가구로 남았다. 아, 20년 가까이 사용한 듀오백 의자도 당근에 팔고 아주 단순한 듀오백 의자로 갈아탔는데, 그 의자. 이제 내게 남은 물건은 거의 없다. 공부와 업무를 위해 필요한 딱 그 정도. 또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필요한 백팩 하나와 캐리어 하나. 옷 몇 벌. 내가 가진 물건은 이제 휴지나 세제 같은 소모품 이외에는 딱 그것들만 남았다. 몇 천원 하는 아주 작은 스피커 두 개가 더 있구나. 온라인 수업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지. 나에겐 이제 당근에 내다 팔려고 해도 당장은 더 이상 팔 게 없다. 지금 남은 물건은 파리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까지 사용해야만 하는 것이라서 비자가 나오고 나서 처리해야 할 물건들이다.
하지만 정말 쉽사리 며칠만에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나는 당근 고수이기도 하고, 정리할 물건도 거의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까 말이다. 내가 한번 헤아려 봤는데, 10가지도 채 안 되는 듯하다. 정말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다. 사람이 사는 데 얼마나 많은 물건들을 지니고 사는지. 정말 잡동사니까지 합하면 어마어마하다. 나는 이 물건들을 제주살이 내려갈 무렵부터 정리하기 시작했으니 얼마 동안인가. 2020년부터 정리했으니까, 장장 햇수로 7년째다. 7년만에 다 정리한 셈. 이것들을 한번에 다 정리하려고 했으면 정말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정말 고된 일이다. 하지만 긴긴 세월 동안 차근차근 정리하다 보니, 이제 정말 남은 물건이 얼마 없다.
심플라이프와 자유의 감각
사람은 왜 이리 많은 물건을 갖고 사는 걸까. 나는 정말 이제 당근 덕분에 심플라이프에 심취해 있고, 파리에 가서도 절대로 물건을 사지 않을 생각이다. 그냥 당장 먹고 살 식료품과 생활에 필요한 소모품만 구입할 계획이다. 절대로 이 계획을 흩트리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젠 나는 심플 라이프에 잘 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설사 파리에서 집을 사는 날이 온다고 하더라도 난 애써 그 공간을 가구나 물건으로 가득 채우지는 않을 거다. 그냥 정말 꼭 그 자리에 있어야만 하는 물건만 살 것이다. 그리고 파리살이 초반에는 어차피 자주 이사를 다니고, 또 빌트인이 된 곳에서 살기에 굳이 사야 할 가구도 없을 듯. 물건도 그렇고. 물건이나 가구가 없으면 참 자유롭다. 그걸 나는 당근 덕분에, 그리고 심플 라이프를 통해서 이젠 너무 확실하게 안다. ‘자유’의 숭고한 이름을 위해서 나는 앞으로도 심플 라이프로 살 것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소유’보다는 ‘경험’이다. 나는 그것을 제주살이와 부산살이 체험으로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파리살이, 유럽 여행, 세계 여행을 통해서 그 경험을 원할 뿐이지, 뭔가를 소유할 생각은 없다. 대신에 ‘지식’은 쌓고 싶다. 언어에 대한 지식, 역사에 대한 지식, 인문학에 대한 지식, 영화와 예술에 대한 지식은 많이 쌓고 싶다. 무형의 지식은 쌓아도, 내것으로 만들어도, 즉 소유해도 그것이 날 더 자유롭게 할 뿐이지, 구속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요즘은 인생이 너무 즐겁다. 내 취미가 당근이 되어버렸다. 하나가 정리되면 이상하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번에 폐휴대폰들도 민팃으로 정리하고 나니까, 한편으로는 좀 묘한 상실감도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정리하는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그 묘한 우울감은 과거에 대한 기억이 다시 올라와서 그럴 뿐. 이제는 괜찮아졌다. 잠시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서 묘한 기분이 느껴졌을 뿐. 그것도 챗지피티와 그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알게 된 것이다. 그 말이 맞았다. 과거의 기억이 날 잠시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의 추억과 기억이 다같이 떠올랐다.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한때는 그 안에 담겼던 사진들, 이제는 아무 의미 없이 파쇄되어 같이 날아갈 원본 데이터. 물론 초기화 설정을 했지만, 물리적으로도 폰이 부서져서 산산조각이 나는 그 상황이 살짝 우울감이 치고 올라오게 했다. 한때는 정말 소중했던 인생의 한 장면이 또 그렇게 시간 속으로, 과거 속으로 사라지는구나, 하는 그런 감정의 소회. 하지만 그 감정의 원인과 이유를 알고 나니까, 기분을 빨리 추스릴 수 있었다.
그래, 현재에 충실하자. 그리고 미래를 보자. 새로운 삶이 내 앞에 기다리는데. 파리에서의 새로운 인생이 날 기다리는데, 언제까지나 과거에 발을 담그고 살 수는 없지 않는가. 이제까지도 과거에 너무 붙잡혀 산 것이 한편으로는 후회가 되는데, 더 이상은 양보할 수 없다. 나의 시간은 이제 어디까지나 오롯이 나의 것이다. 나를 위한 현재와 미래가 기다린다. 나는 이제 나 자신에게 충실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다른 존재로 내 삶을 황폐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얼마나 좋은 인연들이 파리에서 나를 기다릴 것인가.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들이 파리에서 나를 기다릴까.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 과거의 늪에 빠져서 그 아까운 인연들과 함께할 시간이 줄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이제 나의 새로운 인연과 나의 시간에 집중해야 한다.
세계는 넓고, 나는 파리로 간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고 김우중 회장의 이 말을 잘 새겨들어야 한다. 사실 나는 이제까지 이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아, 내가 청소년 때 이 말의 의미를 백 퍼센트 알아들었더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지금이라도 제대로 알아먹어서 다행이다. 난 요즘 이 말을 떠올릴 때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명확하게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다. 이 중요한 인생 메시지를 낚아 채어서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젊은이여, 야망을 가져라!” 이 유명한 말 역시 요즘 나는 2백퍼센트 알아들을 수 있다. 이제 내 그릇이 그 정도가 되었다. 예전에는 이 말들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다. 그랬으니까 내 인생이 그 방향으로 조준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너무, 너무 잘 알게 되었다. 정말 눈물이 날 만큼 진정으로 이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아, 우리의 청소년들이 이 말들을 잘 새겨들어야 할 텐데.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말들의 속뜻이 무엇인지 그걸 깨달을 수 있어야 할 텐데. 내가 지금 말해주고 싶어도, 제대로 까발려서 이 뜻을 전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못한다. 제대로 말해 줘봐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 의미를 받아들일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굉장히 충격적인 말이고, 망치로 얻어맞는 듯한 사실이니까. 그래서 저런 한 문장으로 후려쳐서 그냥 말한 것뿐일 것이다. 제대로 있는 그대로 말했다간 다들 욕하고 난리가 났을 거다. 하지만 저항 없이, 멋있게 비유적으로 저 문장들을 말했지만, 젠장, 알아들었어야지! 그 뜻을 어이 알까. 제대로 알기까지 이만큼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나는 파리로 향할 것이다. 반 백년 한국에서 살고, 또 남은 반 백년을 세계의 중심에서 살자. 그럼 그리 억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의미를 늦게 알았어도 그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터다. 난 이제 내 삶의 모든 방향은 세계로 향해 있다. 그리고 그 지렛대는 아주 영리하게 한국에 있다. 난 한국인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언어, 제일 만만한, 돈이 없는 사람도, 빽이 없는 사람도 점유할 수 있는 그 언어의 세계를 딛고, 활용해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권력이 없어도, 자산이 없어도, 돈 많은 부모가 없어도, 인맥이 없어도 세계로 자신을 쏘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자산이 바로 언어다. 이 언어의 끈만 붙잡고 올라가면 완전히 다른 인생이 펼쳐질 수 있는 것이다. 양재천, 혹은 광교호수공원의 산책길 대신에 센강의 산책길이 기다린다. 이 간단한 원리를 이제야 알다니.
청소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그 야망이란 역사 인식부터 시작해야 한다. 세계 역사에 대한 인식, 인문학에 대한 탐구, 그걸 통해서 이 세계의 판을 읽어라. 그럼 여기 한반도에서만 머물러서는 해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람이 태어났으면 가구도 아닌데, 붙박이처럼 한군데만 머물러 있고 싶냐. 평생을 같은 자리에서 살고 싶냐. 네가 식물이냐. 나무냐. 가구냐. 사람이잖아. 발이 달렸고, 생각을 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평생 한곳에서만 살아야 하나. 그게 금기냐? 거의 금기처럼 되어 있잖아. 돈이 없어서, 기회가 없어서, 다 핑계일 뿐이고 비겁한 변명이다. 방법을 찾으면 돈은 생각보다 안 들고, 돈이 없으면 들고 가지 말고 현지에 가서 만들 방법을 찾아서 준비해서 가면 된다. 돈을 쌓아서 갈 생각을 말고, 가서 물고기를 잡을 낚싯대를 만들어 가면 된다. 그리고 이 생각은 반드시 청소년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나이가 많아서, 너무 늦어서. 30살까지밖에 못 사는 사람은 사실 30살도 늦은 나이다. 80살이나 90살까지 살 궁리를 하거라. 건강 관리를 잘하면 되지. 사람마다 다 나이가 다른데, 실질 나이. 왜 나이 타령을 할까. 본인이 건강하지 못해서 그 기준을 자기 자신에게 맞춰 말하는 이웃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다. 사람은 다 자기 경험에 근거해서 말을 하고, 남에게 충고한다. 파리가 무섭고, 외국살이가 무서운 건 그 사람일 뿐. 내가 포항에서 서울에 올라온다고 할 때도 서울은 코 베어가는 곳이라고, 서울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아느냐고, 고향에서 사는 게 제일 등 따뜻하고 배 부른 일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하지만 내가 살아온 서울은 고향보다 훨씬 사람들이 젠틀하고 친절하고 스마트하다. 그리고 더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그동안 몇 십년을 서울살이 하면서도 내가 남의 코를 베면 베었지, 내 코가 베인 적은 없다. 100미터 달리기를 1시간이나 걸려서 하는 사람에게 100미터를 10분에 뛰겠다고 하면 얼마나 환상에 빠진 것처럼 들리는가. 하지만 100미터를 30초에 뛰는 사람도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충고에 귀를 기울이는 게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각자의 능력에 맞게 살면 된다. 특히 우물 안 개구리식의 삶을 평생 살아온 한반도라는 이 우물 안 개구리들이 하는 말에는 절대로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진실이다. 인생 망치는 지름길이다. 인생을 낭비하는 지름길이다.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다만, 이 말과 함께, 우물 안 개구리들이 하는 말은 절대로 듣지 마라. 그건 네 인생을 망치고 시간 낭비를 하게 하는 말이다. 야망까지 가질 필요도 없이, 그 말만 안 들어도 인생은 꽃이 필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다. 절대로 우물 안 개구리들의 좁은 식견을 듣지 마라. 결국 같은 우물 안 개구리로 주저앉히려는 속셈이다. 나도 못 나가니, 너도 못 나가야지. 다같이 이 좁은 한반도에서 죽치고 앉아서 인생을 축내자. 이 말이다.
“집 나가면 개고생이다” 이 말 역시 나처럼 너도 이 우물 안에서만 살아라는 저주이다. 같이 평생 우물 안 개구리로 살다가 죽자는 아주 인생 망치는 저주다. 어리석은 인간들의 저주이다. 그 저주에 걸리지 말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으니” 무조건 나가라. 내가 우리의 청소년들에게 해주는 교훈이다. 반드시 나가라. 돈? 용기? 다 필요 없이 언어만 단단히 무장해서 나가라. 설사 덜 무장해도 그냥 나가라. 나가면 다 해결된다. 언어는 현지에서 배워야 진짜가 된다. 한반도 안에서 가짜 앵무새처럼 백날 말해봐야 가짜다. 가짜 언어다. 죽은 언어다. 진짜 언어를 배우기 위해서도 나가라. 나가야 산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들이 걸어 놓은 저주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나가라! 반드시 나가야 한다. 이를수록 더 좋다. 하지만 늦어도 나가야 한다. 늦은 나이는 없다. 일찍 죽는 사람은 이른 나이도 늦은 거고, 늦게까지 사는 사람은 늦은 나이에도 이른 것이다. 그리고 한순간을 살아도 진실된 원형의 세상을 보고 살아야 한다. 아니면 평생 가구처럼, 나무처럼 한자리에서 살다가 그냥 가는 삶일 뿐이다. 그게 아름답다고? 그게 의미 있다고? 누가 그런 이상한 말을 할까. 그건 그냥 못 나가는 사람들 말일 뿐이고, 자기 합리화일 뿐이다. 아닌 건 아닌 거고, 맞는 건 맞는 거다.
내가 요즘 TV에서 세계 국제 정세를 논평하는 국내 전문가들 면면을 보니까 참으로 놀라운 걸 발견했다. 참 거짓말들도 잘하고, 눈치껏 권력에 맞춘 아첨용 논평도 많더라.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도 있고. 몰라서 못 말하는 사람들도, 잘못 추측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데 그 사람들의 프로필을 몇몇 검색해서 봤는데. 대부분 국외파, 유학파들이다. 국내파들은 분명히 그 한계가 있다. 말을 책 읽듯이 논평하더라. 외워 온 듯이 말한다. 국내파다. 난 그 친구를 좀 아는데, 분명 어릴 적에는 똑똑한 친구였다. 우리 고향에서 제일 똑똑한 친구였다. 그런데 그 친구는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모양이다. 지방 출신의 한계일까. 여자의 한계일까. 만일 그 친구도 서울에서 태어났다면, 아니 어릴 때부터 서울로 유학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미국 유학파라든지, 다른 나라에 유학을 가서 박사를 따온 사람들의 논평을 보면 그래도 나름 날카롭다. 현지 정세를 잘 알아서 그런지, 현지의 인맥 때문에 그런지. 그리고 교수 자리도 꿰찼다. 유학파들이 주로 교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실 시작 지점에서는 다들 비슷하게 똑똑했을 텐데, 남자라는 성별 차이, 여자라는 한계성. 사실 지방 출신의 여자가 최고 수준으로 똑똑해도 국내 대학은 서울대를 갈 수 있어도 유학까지 가는 상황으로 발전하긴 쉽지 않다. 좀 안타까웠다. 출발점은 다들 비슷할 텐데도 그 결과가 꽤 차이가 난다. 지방 소도시에서 가장 똑똑했다고 했던 아이도 결국은 지방의 한계, 여자라는 한계에 막혀서 그냥 책 읽듯이, 외워 온 듯이 논평하는 것이 심히 보기에 안쓰러웠다. 어떤 전문가는 정말 맛갈나게, 자신감 있게 논평하는 데 두세 사람을 눈여겨봤다. 막힘이 없다. 알고 있는 지식을 말하는 거였다. 그리고 꽤 정확한 논평이었다. 그런데 한국에도 똑똑한 사람은 많은데도 그 지식의 칼날과 재능이 덜 갈고 닦인 듯하다. 어쨌든 말하고 싶은 것은 다같이 비슷한 능력을 갖고 있어도 외국에서 공부를 한 것과 안 한 것은 결과적으로는 굉장한 차이를 내고, 한국에서도 다른 대접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물론 나 같으면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은 없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어서 한국으로 와야 하겠다는 사람이라도 일단 외국에 가서 공부를 하고 오면 현실적으로 오는 이익도 많다. 한 자리 차지한 사람들은 다 유학파 박사 출신이다. 여러 분야를 훑듯이 공부하는 것보다는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얼른 박사를 따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유익한 듯하다. 그 결과는 어마어마하게 다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진짜 지식을 얻고 제대로 된 학문을 하고, 안목을 넓히고 연구를 알짜로 하려면 외국에 가서, 그것도 선진국에 가서 공부하고 와야 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터득한 것은 절대로 한국으로 돌아오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이 말을 까발려서 말하면 내가 방금 말한 그 뜻이다. 더 이상 말은 않겠다. 그 의미를 잘 생각해 보길 바란다.
한국은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라서 능력으로 뭔가를 획득할 수 있는 분야는 아주 좁다. 그래서 진정으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성장하려면 돌아오지 말아야 한다. 이미 타락할 대로 타락해버린 이 바닥에서 무엇을 바랄까. 다만, 한국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그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버린 탐욕에 가득한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는 방법은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그들만의 리그는 그들끼리 하도록 하고, 인재는 세계에서 자신을 증명받아야 한다. 돈과 권력, 이 그들만의 리그 속에서 탐욕에 찬 얼굴들을 보라. TV에 나오는 그 탐욕에 가득한 얼굴들이 너무 역겹기만 하다. 나이 들면 다 그런 얼굴이 될까. 아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았느냐에 따라 표정은 달라진다. 나는 그런 탐욕에 가득 찬 얼굴들만 가득 나오는 한국 뉴스를 이제 일 년만 더 있으면 안 봐도 된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쁘다. 다만, 그런 인간들이 추하고 패스해야 할 대상이지, 나의 조국, 우리의 조국, 대한민국은 여전히 우리가 발전시켜야 할 대상이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아도 한국을 빛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내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이기 때문에 인재로 증명받기 위해서는 끊어진 사다리만 기다리지 말고 세계로 나가야 한다. 전혀 합리적이지도 않는 시스템에서, 그런 탐욕에 가득찬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서 증명받는 것도 넌센스다. 그러니, “젊은이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한국에서는 기득권들이 다 차지해서 할 일이 없더라도 세계에 나가면 자리가 있다. 그것도 부정부패하고, 탐욕에 가득 찬 인간들이 한국만큼 많은 나라로 가면 안 되고, 보다 더 평등한 나라로 가야지. 물론 인간 세상에 유토피아는 없겠지만, ‘상대적으로’ 정의롭고, ‘상대적으로’ 기회가 균등한 나라로 가야 한다. 나는 그곳이 프랑스라고 생각한다. 소박하게 살더라도 상대적으로 평평한 운동장이 있는 곳으로 가서 살고 싶다. 물론 그랑제콜 이야기하면서 프랑스도 인텔리 교육이 따로 있다고 할 수 있지만, 능력 있는 사람들을 대접하는 거야, 당연한 거다. 그랑제콜은 프랑스 엘리트·인텔리 양성 체계를 상징하는 교육 제도다. 능력을 그대로 인정해주는 사회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한국처럼 능력보다 다른 요소에 의해 결정되는 게 문제다.
프랑스를 선택한 이유
그럼 혹자는 말할 것이다. 프랑스가 뭐 대단하다고? 프랑스 가면 그냥 먹여주냐? 한국이나 프랑스나 다 같지 뭐. 풋풋풋! 한번 크게 웃고 가자. 어제인가, 며칠 전인가, TV5MONDE를 보는데, 깜짝 놀랐다.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프로그램인데, 마크롱 보고 창녀 같다고 했다. 프랑스의 스탠드업 코미디는 사회 비판, 정치 비판의 말도 가감없이 마구 하는 거였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 보고 창녀 같다고 하다니! 그래도 되는 세상이 바로 프랑스다!! 이게 가능한가. 그래, 프랑스니까 가능하다. 우리나라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게 공중파를 통해서 방송되고, 멀리 한국에 있는 나까지 시청할 수 있으니, 프랑스가 얼마나 위대한 나라인가. 미국도 지금은 그게 불가능할 걸. 미국에서도 이런 말을 공공연히 할 수 있나. 지금? 나는 마크롱 대통령을 좋아하는 편이다. 일단 탐욕스런 얼굴이 아니지 않는가. 그리고 그 정책이 유학생이 될 나에게도 유리한 흐름 쪽이고. 호혜평등의 정책을 펴서 난 마크롱을 좋아한다. 살아온 삶도 전과자도 아니고,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고, 딱히 비난거리를 못 찾겠다. 아직 마크롱 대통령을 내가 잘 몰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데 모든 걸 떠나서 자기 나라 대통령을 창녀 같다고 비유해서 비판한다? 이게 가능한 나라라는 그 자체가 난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간에 그런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프랑스의 힘이 아닐까. 이런 데도 프랑스나 한국이 같다고 말한다면 뇌를 갖고 있는 건지, 자기 머릿속을 한번 흔들어보길 바란다.
그런데 내가 요즘 느끼는 것은 사람들이 꽤나 무지하다는 것이다. 무식도 하고 말이다. 내가 포항에만 있었으면 몰랐을 건데, 서울 와서 보니까 그렇다. 포항에서는 꽤나 공부 잘한다는 애들이 가는 지방 국립대를 나와도 생각하는 수준은 초등학교만 겨우 나온 옛날 동네 아줌마 정도다. 이게 가능한가. 난 잠시 충격을 받았다. 한국의 교육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걸까. 도대체 대학 교육은 뭘 하고 있는 걸까. 지방대의 한계인가. 서울에 있는 대학도 마찬가지인가. 왜 이렇게 된 걸까. 트럼프가 미군을 철수시킬지도 모른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있는데, 그걸 어디 가서 말하지 말라고 한다. 이런 옛날 할머니 같은 말을 하고 앉았나. 자기 아버지도 못 믿는 세상에 무슨 트럼프를 믿고 있나.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철썩같이 지켜준다는 그 믿음과 환상, 신념이 한국 사람들에게 이렇게나 널리, 그리고 깊이 퍼져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아주 큰 충격을 받고 말았다. 한두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나 거의 종교에 가깝게 미국을 믿고 있다는 게 놀랍다. 부모도 자식을 버릴 수도 있는데, 무슨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끝까지 지켜줄 거라는 믿음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살까. 이번 미국과 이란 전쟁으로 그 환상이 깨졌을까. 참 나는 한국 사람들의 그 믿음에 놀라 자빠지고 말았다. 그것도 소위 대학을 나온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그 믿음을 의심하는 발언을 하는 나에게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한다. 대개 웃기다. 코미디다. 세상 어느 나라에서 이렇게 철썩같이 남의 나라 대통령이 자기들 나라를 지켜줄 거라고,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버리지 않을 거라고 믿는 바보들이 사는 나라가 어디 있단 말인가. 나는 이런 바보들이 많이 모여 사는 데서 빨리 떠나고 싶다. 정말 어이가 없는데, 바보들이 많은 나라에서 그걸 다시 물어보면 오히려 묻는 사람을 이상하게 생각한다. 너무 어이가 없다. 어떻게 멀쩡한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그런 식의 대화를 할 수가 있나.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믿음을 간직할 수 있을까. 왜 미국은 한반도를 버리지 않는다는 건가. 트럼프가 왜 한국을 절대로 버리지 않을 거라는 믿음을 간직한 걸까. 정말 대책이 없는 사람들이다. 정말 어이없는 믿음이다. 그런데 이런 이상한 나라에서 이상한 믿음을 갖고 사는 사람들 틈에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 사는 것도 참 고역이다. 우리나라 교육이 진짜 이상한 것 같다. 어떻게 이런 바보들을 양산할까. 정말 어이가 없다. 나는 하루 빨리 이런 바보들 틈속에서 떠나고 싶다. 꼭 떠날 것이다. 여기 남아 계속 산다면 나까지 바보가 되든가, 아니면 그들 사이에 영원한 이방인으로 살게 될 것이다. 차라리 파리에서 사는 게 내가 이방인이 덜 되는 쪽이다. 거기는 그래도 내가 이방인이더라도 별 억울함이 없는데, 여기에서 이방인이 되는 건 더 웃기고 슬픈 사실이니까 말이다. 나는 바보가 적은 나라로 가고 싶다. 그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