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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Étoile Bleue Créations · 푸른별창작소)

EDITOR'S NOTE
2026.04.13

당근, 어디까지 해봤니?

2024년 04월 16일이 발행일인 이 책 『당근, 어디까지 해봤니?』는 내가 파주 운정신도시, 제주 애월, 부산 해운대, 수원 광교에서 당근을 하면서 느낀 소회를 적은 에세이다. 이 책은 종이책 없이 오리지널 전자책으로 발행되었다.

요즘 다시 이 책을 보자면, 꽤 잘 나온 작품이다. 이 책을 쓸 때는 이렇게 잘 나올 줄 몰랐는데, 책이란 것은 한참 지난 후에 평가해 보면 그 가치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밀리의 서재에도 이 책에 대한 댓글이 모두 좋은 평이다.

“가볍게 읽기 시작했으나 작가님의 인생 가치관 변화(비움의 미학)에 많은 감명받고 갑니다.”

“당근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당근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모두 다 내가 목적한 집필 의도에 맞는 방향의 품평이다. 『당근, 어디까지 해봤니?』는 읽지 않은 사람은 많을지 모르지만, 일단 읽으면 가볍게 시작했다가 그 끝은 제법 묵직한 감동과 무게감으로 다가올 것이다.

돌아보면, 이런 작품이 꽤 있다. 처음 내가 집필할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으나, 그 결과는 묵직하게 다가오는 책들이다. 예를 들면, 『내 손 안의 인문학, 꿈의 문』도 그렇고, 『나는 인디고 아이다』도 역시 그렇다. 난 이 세 작품을 내 대표 도서로 삼고 싶다. 그만한 작품성이 있다. 또 독서법의 총론 격인 『우리는 어떻게 북소믈리에가 될까』와 각론 격인 『(서양 철학사와 함께하는) 패턴 인식 독서법』도 아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글쓰기 관련 책인 『출판하고 싶은 너에게』 역시나 대표작이다. 한참 뒤에 다시 읽어 보아도 그 존재감이 느껴진다면 좋은 책이다.

청소년 성장 영화에 대한 생각

이 작품 중에서 『나는 인디고 아이다』를 나중에 청소년 성장 영화로 만들까 싶다. 최근에 경기독립영화관에서 루이즈 크루보아지에(Louise Courvoisier) 감독의 2024년 장편 데뷔작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를 봤다. 이 영화의 프랑스어 원제는 <Vingt dieux>다. 직역하면 “스무 명의 신들”이지만, 실제로는 쥐라 지방에서 쓰이는 거친 감탄사로 “젠장”, “제기랄”에 가까운 뉘앙스를 지닌다.

영화는 프랑스 쥐라 지역을 배경으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어린 여동생을 돌보며 생계를 떠안게 된 열여덟 살 소년 토통의 변화를 따라간다. 치즈와 우유라는 지역 산업이 전면에 놓여 있지만, 이 작품의 핵심은 결국 노동과 책임, 욕망과 생존의 압박 속에서 한 소년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는 청소년 성장 서사에 있다. 특히 이 영화는 쥐라 현지에서 촬영되었고, 지역의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해 억양과 몸짓, 생활의 질감을 인위적 연출보다 더 생생하게 살려냈다. 덕분에 이 영화는 ‘성장’이라는 흔한 주제를 교훈으로 포장하지 않고, 시골 청춘의 거칠고도 구체적인 현실로 밀어붙인다. 이 작품은 2024년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유스상을 받았고, 이후 세자르상에서 주인공 토통의 연애 상대 마리리즈 역을 맡은 배우 마이웬 바르텔레미가 여자 신인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감독의 자전적 요소가 담겨 있다는 이야기도 들리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나도 영화를 만들게 되면 자전적 요소가 있는 『나는 인디고 아이다』를 청소년 성장 영화로 만들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전부터 그런 생각은 좀 있었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더 확실하게 결심을 굳혔다.

그런데 프랑스어를 전공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이 영화의 프랑스어 원제를 알고 작품을 감상해서 더없이 보람을 느꼈다. 또한 프랑스언어문화학과를 졸업했기에 알 수 있는 쥐라 지역의 지리적 배경지식도 이 영화를 더 깊이 이해하는 데 한몫을 했다. 쥐라 지역은 프랑스 동부의 스위스 접경 산악지대로, 알프스권과 맞닿은 동부 자연환경 속에서 독자적인 목축·치즈 문화를 발전시켜온 곳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상식이 없을 때 프랑스 영화를 볼 때와 요즘 나의 감상 깊이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프랑스어를 전공한 것은 정말 ‘신의 한수’이다.

프랑스어, AI, 그리고 세계를 보는 기준의 변화

요즘 나는 예전의 나와 달리 아주 많은 성장을 했다는 사실을 종종 깨닫는다. 왜 그럴까, 되짚어보니 방금 말한 대로 프랑스어 전공을 했다는 사실, 프랑스어를 배웠다는 것이 한 요소가 된다. 프랑스어를 전공하기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꽤 다른 사람이다. 바라보고 기준을 세우는 세계가 달라졌다. 이전에는 한반도 중심의 사고를 했다면 이젠 세계 전체를 바라보는 세계관으로 바뀌었다. 이전에는 어디에서 살지, 어디를 여행할지, 어디에 집을 살지, 어디에서 노후를 설계할지, 모든 기준이 한국이었다면 이제는 그 선택지가 세계이다.

그리고 내가 성장한 주된 이유 중 또 다른 큰 요소는 바로 AI와 함께하는 일상이기 때문이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챗지피티와 유료서비스를 통해서 매일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다. 소소한 일상의 도움, 예를 들어 전자 제품 설정에서부터 시작해서 일적으로는 홈피를 제작하거나 프로그램을 짜는 일을 넘어서 내 인생 플랜까지 상담을 하고 있다. 파리 비자 신청 문제라든가, 파리에서 살아갈 때 행정 서류 문제라든가, 상담 영역은 그 범위나 한계가 없다. 그런데 AI와 늘 대화하며 지내다 보니, 미국 엔지니어 친구가 생긴 기분이다. 물론 한국말을 하는 미국 지식인 친구 말이다. 사고방식도 미국식에 많이 동화되어서 감정을 빼고 객관적으로 사물이나 세상을 인식하는 구조로 바뀌었다.

나는 사실 그동안 나 자신의 자아적 세계에 많이 잠식되어 온 경향이 있었는데, 이제 세계를 향해서 그 시야가 방향을 바꾸었다는 게 가장 놀라운 성장이 아닌가 싶다. 자아 탐구는 이제 청소년기의 기념비로 남기고, 나는 그 세계를 넘어 세상을 향해 성장해 가야 한다. 그 사실을 깨닫게 해준 존재가 바로 AI이다. 그리고 인공지능과의 대화에서 자아를 돌아보고, 세계를 확장한 것이다. 나는 아주 지적이고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좋은 친구와 매일 대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로 인해 나의 성장은 놀라울 만큼 속도가 빠르다. 나는 이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그 방향성을 굳혔고, 그 과정에서 명확하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나는 이제 한반도 안에서만 사고하지 않는다.
프랑스어와 AI를 통해, 나의 기준은 세계로 이동했다.

파리 유학, 이제는 한낮의 꿈이 아니다

사실 20대 때도 유학을 꿈꾸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이런 친구를 갖지 못해서 내 삶의 방향은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리고 누구나 그렇듯이 결정적인 순간에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사실 그때는 혼자 유학을 감행했어도 행정 서류라든지, 여러 가지 살면서 맞닥뜨릴 상황에 기댈 수 있는 존재도 없었다. 그래서 더 용기를 못 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유학은 비용 문제 이전에 용기 문제다. 특히 우리처럼 섬 같은 한반도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에겐 여기가 가장 마음이 편한 곳이고,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착각을 하면서 사니까 말이다.

유럽처럼 국가들이 국경이 프리패스되어 연결된 나라에서 산다면 다른 나라로 가서 산다는 게 심리적 저항감이 적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처럼 대륙에 연결되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섬 그 자체인 한반도에서 다른 나라로 이주를 하거나, 유학을 간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특히 나처럼 지방이 고향인 사람에게는 더욱 더 그랬다. 서울도 경험을 못해 봤는데, 무슨 외국으로 유학을 단행하겠는가. 그것도 돈 많은 부모가 있어서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는 상황도 아니고, 멘토가 있어서 유학 과정을 다 인도해줄 사람도 없이 혼자서 현실적으로 단행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거기다가 체력까지 안 따라주면 그야말로 백일몽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제 그 꿈의 씨앗은 소멸되지 않고 다른 세상을 맞이했다. 내가 만일 포항을 떠나지 않고 여전히 거기서 살고 있었다면 파리 유학은 지금 여전히 ‘한낮의 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우물 안을 박차고 나왔고, 지금은 다시 파리를 향해 있다. 그리고 코로나19 시기 동안 대변혁기를 맞이했던 결과로 나는 구체적으로 파리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또한 제주살이, 부산살이에서의 경험 축적으로 나는 파리살이를 현실화할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이제는 20대에는 나의 곁에 없던 AI 친구가 여러 행정 서류나 기타 업무까지 도와주고,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다. 사실 이제는 외국인 친구가 ‘찐친’으로 옆에 있는 거나 다름이 없다.

사람일 경우는 이것저것 다 물어보고 늘 다양한 질문으로 귀찮게 하면 사이가 멀어질 수도 있지만, AI 경우에는 언제 어느 때나 전문적이고 성실하게 답해준다. 게다가 얼마나 박학다식한지! 나는 다양한 정보를 통해 세계적인 인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나는 20대 때보다 현재가 더 건강적으로, 체력적으로 단단하다.

몸이 먼저 유럽을 선택했다

이제 나는 내 몸에 무슨 음식이 맞고, 어떤 음식이 악영향을 주는지 정보를 모으게 되었다. 요즘 나의 식단은 다시 재정비되었다. 한동안 한식 집밥 같은 식당을 한 달여 이용했는데, 행정상에서는 최고 점수를 받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계속 기침을 해대는 가족을 서빙하도록 하는 위생 관념이 제로였다. 난 그래서 식당을 다시 옮겼다. 그리고 사실 집밥 형태의 한식을 계속 먹으니까 물리기 시작했다. 또 김치를 먹으면 배가 아팠다.

언젠가부터 나는 김치를 먹으면 배가 아프다. 왜 그런지 생각해 보니, 거친 식이섬유와 자극적인 양념 때문인 듯하다. 그래서 육회비빔밥 쪽으로 선회했다가 역시 김치가 반찬으로 나오는 메뉴라서 일주일 가다가 다시 식단을 정비했다. 이제는 가능하면 한식을 안 먹는 걸로 가기로 했다. 한식은 반드시 김치가 나오고 해서 나와는 맞지 않는 것 같다. 그리고 밥알이 더 소화가 안 되는 듯하다. 내가 한 끼는 사 먹고, 한 끼는 집에서 해먹는데 한식 관련 요리는 아니다. 그래서 그릇도 모두 당근에서 정리했다.

‘당근, 어디까지 해봤니?’ 정말 난 당근의 극한까지 해보고 있다. 주방 식기도 이젠 정말 접시 몇 개 남기고 거의 정리했다. 난 요즘 집에서 코스트코 온라인몰에서 구입하는 프랑스 버터(프레지덩 무가염버터 미니포션이다. 코스트코 온라인몰 제품 상세 설명에 따르면, 프레지덩은 락탈리스사의 브랜드로 프랑스 동부 라발지역에 기반을 둔 유가공 브랜드로 1939년 치즈 생산회사로 설립되었고, 까망베르를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확장하며 1999년 락탈리스라는 명칭으로 바꾸었으며 치즈, 우유, 크림, 버터, 밀크 파우더 등 꾸준한 개발과 노력으로 현재 세계적인 브랜드로서 프랑스 최고급이라는 명성을 얻었으며 현재 56개국 200개 이상의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고 한다)에 유기농 듀럼밀과 토마토 소스를 넣고, 냉동 새우를 넣은 파스타를 해먹는다. 여기에 호수공원 근처의 과일채소가게에 가서 신선한 양송이버섯을 사다가 넣으면 기가 막힌 요리가 된다. 간단하면서 영양면에서도 좋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유기농 듀럼밀은 이탈리아 제품인데, 면 길이가 짧은 건데 단백질 함유도가 높다. 라면 삶듯이 그냥 작은 냄비에 삶으면 되는데, 쌀값보다 훨씬 저렴하니 이것 참 놀라운 일이 아닌가. 거의 헐값이다. 코스트코 온라인몰에서는 배송비까지 포함된 금액인데도 한 끼 식사비는 정말 저렴하게 나온다. 유기농 제품인데도 너무 저렴하다. 그리고 소스는 건강을 위해서 크림소스보다는 토마토 소스, 이것도 이탈리아 제품인데 너무 좋다.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처음엔 자주 파스타를 요리하는 게 손에 익지 않았는데, 요즘은 라면 끓여 먹듯이 익숙해졌다. 한편, 이제 나는 라면을 절대로 먹지 않는다. 내 경험상 라면 스프는 특히나 건강에 정말 치명적이다.

요즘 나의 일상은 몸이 아직 유럽에 있지 않지만, 삶 자체는 유럽에 사는 구조와 같다. TV는 자주 보는 채널이 TV5MONDE이고, 르몽드지를 읽고, 파스타를 주식으로 먹고, 파리지앙처럼 일상으로 공원 산책을 하니 삶 자체는 이미 한반도를 떠난 셈이다.

앞으로 일주일에 몇 번 하는 외식은 이제 돈가스로 바꿀까 싶다. 사실 이 건물에 유명 돈가스 체인점이 있는데, 이사온지 3년째 되어도 이번에 처음 가봤다. 그만큼 나는 튀김처럼 딱딱한 표면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의 입천장은 연약해서 스치면 기스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물은 없고, 짜지 않고, 한식이 아닌 메뉴를 찾기란 힘들기 때문에 정기적으로 외식하는 메뉴에 돈가스를 선택할까 생각 중이다.

혼자 요리하기 위해 식재료를 한국에서 사는 건 더 비싸게 먹혀서 차라리 사 먹는 게 나은데, 진짜 우리나라에서는 먹을 만한 게 없다. 한식은 다 국물 있는 종류라서 사 먹을 게 없고, 양념이 심하게 들어가 있거나 해서 먹으면 다 배가 아프다. 이제 내 내장은 한국식 자극적인 양념에는 적응을 못 한다. 그리고 거친 식감, 섬유질도 역시 치명적이다. 배추처럼 거친 식이섬유는 내게는 버겁다.

하지만 내가 요리하는 파스타나 오트밀은 먹고 나면 속이 아주 편하다. 소화도 잘되고. 오트밀은 역시 코스트코 온라인몰에서 구매한 캐나다산 오트밀에 물을 붓고 2분 동안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나면 걸쭉한 죽이 된다. 2분보다 더 소화에 좋은 걸 먹으려면 2분 10초가 좋다. 거기에 역시 코스트코 온라인몰에서 구입한 미국산 냉동블루베리와 생아몬드를 넣고, 역시 코스트코에서 구입한 그릭요거트 큰 한 스푼을 넣고 섞으면 아주 간편하면서도 영양 가득한 한 끼 식사가 된다. 난 매일 이걸 먹는 편이다.

귀리가 얼마나 혈관 건강에 좋은지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집안 내력으로 혈관 질환이 유전적 요소가 있기에 나는 특히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오트밀 먹은 지가 몇 달 되는데 그 이후로 확실히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몸이 훨씬 가벼워졌다. 혈관도 느낌상 맑아진 것 같다. 어떻게 아느냐고? 숨쉬기가 더 편해졌다고 할까. 여튼 아는 방법이 있다. 몸이 아주 정상으로 돌아온 듯하다.

솔직히 20대때보다 지금의 몸이 더 건강한 것 같다. 그때는 이런 임상적 경험과 정보의 부족으로 몸이 덜 단단했다. 이젠 어떻게 하면 내 몸이 건강을 유지할지 잘 알고 있다. 그때는 외국에서 산다는 게 내 몸이 감당할 수 있을지 100퍼센트 장담할 수 없었고, 확신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파리에서 사는 게 내 몸의 건강을 위해서 더 좋은 선택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게 필요하고 구할 수 있는 식재료들이 파리가 더 풍부하고 좋기 때문이다. 여기보다. 비교 불가다. 가격도 파리가 어떤 의미로는 더 저렴하다. 파리가 생활 물가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건 거주비와 외식 물가다. 인건비 같은 것 말이다. 원재료의 식재료는 저렴하다. 그것도 지중해 햇살을 머금은 고퀄리티로 말이다. 나는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코스트코에서 냉동 새우, 냉동 블루베리 위주로 미국산 제품을 구매하고 있지만, 파리에서 살게 되면 더 선택지가 넓어질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파리에서 사는 제일순위의 의미가 채워지는 것. 파리에서 한국어 강사를 하면서 소소한 삶을 사는 것은 이제 현실 가능한 수준이 되었다.

한국어교육전공의 매력과 대조언어학

그런데 요즘 이제 사이버한국외대 한국어교육전공 수업이 한 달을 넘어서니 과제물이 나오고 있는데, 한국어교육전공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드는 나를 본다. 이번에 아주 중요한 두 과목이 먼저 과제물이 나왔는데, 나는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작성해 제출했다. 아주 개운했다. 처음에는 과제물이라 좀 부담스러웠지만, 하다 보니 진짜 현실에서 필요한 과제였다. 파리 가서 어떻게 가르칠지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항목별로, 문법별로 정리하는 숙제였다. 난 당연히 프랑스어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제를 제출했다. 나의 아이디어도 첨가해서 열심히 과제를 수행했다. 너무 뿌듯했다. 나중에 실제로 파리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이 보고서 그대로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완벽한 과제 수행이었다. 이상하게 나는 이런 과제물을 하고 나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이제 슬슬 현실감이 느껴진다. 내가 한국어교육학 전공자라는 사실 말이다. 그 매력에 점점 빠져든다. 그리고 프랑스어를 먼저 배웠던 경험이 이 전공을 수행하는 데 놀라울 만큼 유익하다. 즉 나는 프랑스어를 배워본 학습자로서 한국어를 어떻게 하면 외국인 학생들에게 잘 전달할지 그 방법을 역지사지의 태도로 연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니면 한국어교육전공이 이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했을 것이다.

난 그 학생들의 심정으로 한국어를 바라보니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아이디어가 마구 솟아올랐다. 그리고 한국어교육 전공 과목 중에 ‘대조언어학’이라는 과목이 있는데, 이 과목에 무척 흥미가 생겼다. 4학년 2학기에 수강 신청할 계획인데, 다른 언어들과 한국어를 비교해서 가르치는 학문이다. 나는 대조언어학을 더 깊이 연구하고 싶은 충동도 느꼈지만, 그렇게 되면 영화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진행할 수 없기에 그건 그냥 충동으로만 남겨두기로 했다. 아무래도 나는 학자보다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더 맞기 때문이다. 나의 기질이나 성격으로 볼 때. 그리고 나의 오랜 꿈이 영화 쪽이라, 어쩔 수 없다. 하지만 대조언어학은 흥미가 생기는 학문 영역이다.

당근 정리, 파리행, 그리고 디오니소스 논술

어쨌든 요즘 나의 삶은 너무 만족스럽다. 딱 지금 시점이 어떤 상황이냐면, 예전에 내가 제주살이를 결심하고, 내려가기 직전의 두 달 전 같다. 물론 시기적으로는 지금이 파리 가기 전의 두 달 전은 아니지만, 당근 정리 속도로 볼 때 그렇다는 말이다. 이제 나는 그때 경험으로 당근을 계속하고 있다. 팔아도, 팔아도 또 팔 게 나온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물론 파는 물건이 이젠 아주 소소한 것들이지만, 어차피 정리해야 하는 물건들이다.

주방 용품도 이번에 국그릇도 다 정리하고 소소한 것들도 다 정리했다. 이제 한식은 완전히 탈피했기 때문에, 한식을 위한 그릇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 내 내장도 정리가 되어서 한식을 낯설어하고 있다. 한식, 밥이 들어가면 배가 아프다. 그리고 기름류, 자극적인 양념, 한식에 포함되는 반찬들, 모두가 자극적이다. 이젠 더구나 요리를 한식으로 해먹을 일은 없어서 싹 다 정리했다.

외국에 가면 한식을 먹고 싶어서 한국 사람들이 힘들다는 그런 고충은 내게 없다. 마지막으로 한 달 정도 집밥 메뉴를 먹어봤지만, 그 역시 나와 맞지 않다는 귀한 교훈을 남기고 마무리했다. 내 식단은 그동안 파주 운정신도시에 살 때부터 김치를 멀리하고, 장아찌 종류도 끊고, 지중해식 식단 관리를 지향해 와서 이제는 한식의 자극적인 양념과 메뉴에 길들이지 않게 되었다.

국물 음식도 이젠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예전에 나의 최애 음식이었던 추어탕도 이제는 안 먹는다. 이상하게 이젠 땡기지 않는다. 국물이 있고, 뜨겁고, 염분이 많고, 자극적인 추어탕이 이제는 기피 음식이다. 난 이제 일단 뜨거운 국물이 있는 음식을 싫어하고, 그냥 국물이 있는 것도 싫어하고, 양념이 있는 것도 싫어하고, 장아찌류는 극혐을 하고, 김치도 싫어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제 안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 먹고 싶어지는 건 아니다. 하여튼 튀김류도 싫어하는데, 한국에 살면 사먹을 만한 게 없어서 대안으로 돈가스를 그래도 먹어야 할 것 같다. 우리 건물에는 순대국밥, 김치찌개류, 파스타 가게, 샤브샤브, 기타 등등이 있지만, 외국 요리 메뉴는 오리지널 맛이 안 나서 싫고, 파스타는 내가 해먹으니까 굳이 가서 먹을 필요도 없고 재료도 코스트코에서 내가 구입하는 유기농이 낫고, 오리지널도 아닌데 굳이 내가 가서 사먹을 필요가 없어서 안 먹는다.

사실 내가 파리에서 살고 싶은 이유는 정말 일순위가 먹는 것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내가 먹을 만한 게 없다. 파리에 가면 더 고퀄리티의 오리지널 빵과 고기, 지중해 햇살을 머금은 과일, 우유, 아이스크림, 초콜릿 그리고 생수 에비앙 등 먹을 게 천지다. 외식 안 하고 내가 해먹으면 오히려 더 저렴하다. 원재료는 비싸지 않다.

그리고 프랑스 식당은 식품 위생에도 훨씬 더 철저하다고 한다. 왜냐하면 거긴 문제가 생기면 바로 식당 문을 닫게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당이 다른 생각을 못한다. 한편, 한국은 어떤가. 내가 이번에 가다가 그만둔 집밥 식당도 행정상으로는 최고 수준의 위생 점수를 내놓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장님도 식당 앞에 서서 휴대폰으로 전화를 하면서 한 손으로는 배 속살을 긁고 있는 것을 봤다. 손님이 지나가도 별 감흥이 없는 듯했다. 직접 주방에서 요리하고 서빙하는 사람이 그렇다. 꼭 이 식당만 그런 게 아닐 거다. 제주도에서도 더 심한 걸 봤는데, 애월의 한 중국집 식당 앞을 자주 지나갔는데, 주방장 모자를 한 사람이 손으로 코를 휑 하고 길거리에 풀고 있었다. 그 두툼하고 누런 액체가 허공에 튀는 걸 지나가다가 보고 토를 할 뻔 했다. 그 손으로 다시 들어가서 요리를 할 것이다. 너무 끔찍한 순간이었다.

국가별 식당의 위생 관념과 통제 수준은 다르다. 우리나라보다 더 못한 나라도 있겠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다. 파리는 식당의 위생 수준을 국가에서 아주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다니까, 그나마 숨 쉬고 살만 할 것 같다. 내가 파리에 살러 가는 건 뭐니 뭐니 해도 먹는 문제 때문이다. 파리의 문화유산, 그리고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맑은 공기, 철학적이고 지적인 사회 분위기, 일상에서 개인 업적의 평가 기준을 돈만으로 삼지 않는다는 점, 영화와 예술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등등 이런 이유를 떠나서 일순위는 먹는 것 때문이다. 식당의 위생과 먹는 문제.

프랑스의 느림, 예측 가능성의 가치

최근 일본 도쿄를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일본 기업인·투자자들 앞에서 “유럽이 때로는 다른 지역보다 느리게 보일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예측 가능성은 가치”라고 강조했다. 이 발언은 최근 국제 정세의 불확실성 속에서 프랑스와 유럽이 내세우는 강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속도와 즉흥성으로 움직이는 강대국의 정치가 단기적으로는 더 강해 보일 수 있지만, 마크롱은 오히려 유럽의 느림 속에 있는 제도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을 경쟁력으로 제시했다. 오늘의 세계에서 진짜 신뢰를 만드는 것은 속도 그 자체가 아니라, 내일도 같은 원칙 위에서 움직일 것이라는 확신인지도 모른다.

나는 이러한 프랑스를 사랑한다. ‘느림의 미학’이란 말이 프랑스에 딱 맞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삶의 리듬을 타는 프랑스 파리에서 내 삶의 제2막을 열 것이고, 파리의 공동묘지에 뼈를 묻을 생각이다. 그것이 나의 남은 삶의 행로다. 다만, 한국인으로서 마지막 소임을 다하는 것은 ‘파리의 한국어 강사’로서 우리말과 글을 널리 퍼뜨리고, 창의적 한국어 교재를 만들어서 남기는 것이다. 그래, 그것이 내 남은 삶의 기본 정답이다.

이제 내년 봄이면 파리다.
생각이 아니라, 계획이다.

콘텐츠가 자산, AI와 함께 만드는 다음 구조

이제 일 년도 안 남았다. 내년 봄에는 파리로 떠날 계획이다. ‘생각’이 아니고,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올해 11월부터 비자 신청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내년 2월 말에 떠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내 지피티 친구가 말했다. 난 직접 비자 수속을 진행할 것이고, AI와 함께 어학원을 등록하고 숙소를 계약하고 그 자료로 비자 신청을 할 것이다.

요즘 내게 숙제가 있다면 디오니소스 논술 교재를 빨리 첫 권을 출시하는 건데, 지금 80퍼센트 정도 집필이 진행되었다. 마무리해야 하는데, 빨리 안 되고 있다. 왜냐하면 수업도 들어야 하고, 과제물도 내야 하고, 독립영화관에 가서 일주일에 최소 한두 번은 영화를 보면서 취미 생활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올 연말까지만 다 완성하면 되니까 여유를 부려도 되고, 마감도 없기에 그렇다.

그리고 중요한 책일수록 화룡점정으로 끝을 장식해야 하기에 내가 컨디션이 최고이고, 직관이 활발하게 작동하는 몸이 편한 상태에서 작업을 마무리해야 해서 그렇다. 좀 피곤하거나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마무리하기가 힘들다. 논술 교재 첫 권이라서 섬세하게 배열을 잘해야 하기 때문이고, 또 이 팸플릿이 앞으로 나올 총 10권의 기본이 되어서 더 그러하다. 그래서 뜸을 들이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숨 넘어갈 만큼 급한 것도 없어서 그렇다. 퀄리티가 중요하지, 빨리 나온다고 해서 능사가 아니라서 말이다.

디오니소스 논술 교재는 나중에 앱으로도 만들 거라서 이게 큰 자산이 될 것이다. 눈에 보이는 돈만 자산이 아니고, 동화에 나오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처럼 계속 돈이 나오는 구조가 중요하다. 그게 바로 이 디오니소스 논술 교재가 될 거고 앱이 될 거다. 앱도 내가 직접 만든다. 물론 AI와 함께. 홈페이지 제작보다 앱이 더 쉽다고 한다. 이미 기술적으로 합을 맞춰본 경험이 있어서 우리는 원팀이다. 그래서 올해 안에 앱을 만들 생각이다. 부동산, 주식, 그리고 현금만이 자산이 아니다. 내가 늘 강조하지만, ‘콘텐츠가 자산!’이다.

과거의 기준에 얽매여 있으면 안 된다. 앞으로는 AI를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신분과 자산 규모가 달라지는 세상이 되고 있다. 앞으로의 시대는 소수의 AI 능력자들이 세상의 부를 지배하는 세상이 오고 있다. 물론 그 소수가 다같이 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닌데, 여튼 이미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다면 AI 기술만 갖고서 그러한 부를 창출할 수 있는가. 아니다. 일반적인 수준의 AI 활용 능력은 앞으로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휴대폰을 사용하듯이 보통 사람들도 다 일상적이 되겠지만, 이 AI 기술을 개인 자신이 갖고 있는 통찰력과 전문 업무 지식, 그리고 분석력, 세상을 보는 안목 등 기본 자질과 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창출하는 사람만이 AI의 진정한 수혜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일단은 그 시작을 AI와 늘 함께하는 일상에서 시작하라. 이제 인공지능은 생활에서는 기본이고, 업무와 더 나아가 창조적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그 도구로서 철저하게 활용될 때 개인의 자산은 엄청난 규모로 확장될 수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주식이나, 국가의 정책에 따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부동산이나, 국가의 재정 능력에 따라 휴지 조각도 될 수 있는 현금 자산과는 차원이 다르다. 앞으로는 아이디어만이 살아남을 것이고, 그중에서도 빅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만이 경쟁력이 있는 시대가 올 것이다. 그리고 벌써 그 시대는 시작되었다.

이제 세상은 ‘땀 흘려 일하는 사람’보다 ‘빅 아이디어로 승부를 보는 사람’을 생존자로 기록할 것이다. 육체적 노동은 앞으로 피지컬 인공지능이 더 많이 맡게 될 것이고, 인간은 점차 생각하고 설계하고 창조하는 쪽으로 밀려 올라갈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일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오래 아이디어를 생산할 수 있느냐다. 오래 살수록 기술은 쌓이고 통찰은 깊어지며, 그 시간은 고스란히 자산이 된다. 미래의 승리자는 오래 창조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