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이 맞다면
길이 아니면 자꾸 막힌다. 그런데 정말 내 길이라면, 세상은 놀라울 만큼 척척 문을 연다.
4월이다. 올해부터 나는 4월에 있는 내 생일을 다시 찾았다. 한동안 4월은 참 슬픈 달이라서 생일조차 잊고 살았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시구만 떠오를 뿐이었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다시 4월이 그냥 봄날일 뿐이다. 더 이상 과거에 매여 살지 않기로 했다.
살아 보니 모든 것이 뜬구름 같기도 하다. 이 말은 단순히 ‘시간이 약이다’라는 뜻은 아니다. 시간이 흘러서 내가 4월을 평범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정리가 끝났기 때문이다.
운명이란 것은 사람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두가 각자 자신의 판단과 선택을 따라 인생의 길을 가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인생은 매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그리고 선택 다음에는 결과가 따라온다.
요즘 내가 느끼는 것은, 그 선택의 길이 맞다면 문이 저절로 열린다는 사실이다. 물론 ‘저절로’라는 말은 조금 어폐가 있다. 하지만 쉽게 말하자면 다른 선택을 했을 때보다 일이 훨씬 잘 풀린다는 뜻이다.
내가 파리로 유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하고 나서부터 그 길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일이 잘 풀린다. 방송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도 계획대로 2년 만에 졸업했고, 프랑스어 공부도 이제는 혼자서 해도 될 만큼 문법 등 기본 궤도에 올랐다.
사실 살아오면서 나는 정규 교육 시스템 안에서 착실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진심을 다해 따라가 본 적이 별로 없다. 늘 저항이 뒤따랐고, 금방 싫증을 냈다. 왜 내가 이 시스템을 따라야 할까, 늘 반문했다. 하지만 방송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에서는 그 시스템 안에서 충실하게 잘 따라가서 예정된 시간 안에 졸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프랑스어는 허들이 높다. 처음 입문할 때는 상당히 힘들었다. 어느 지점까지는 그렇다. 그 언어가 익숙해질 때까지 초입의 난이도가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단 그 두터운 막을 뚫고 나는 그 언어의 시스템 안으로 들어왔다. 이것도 놀라운 일이다. 나는 영어도 이렇게 뚫고 지나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 길이 맞다면’ 문은 저절로 열리는 것 같다.
법이 바뀌어서 열린 문
이번에 더 놀라운 사건이 생겼다. 문이 저절로 열리는 사건의 아주 적절한 사례다. 그것은 바로 법이 바뀐 것이다.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부 한국어교육 전공에서 교육실습 과목에 변화가 생겼다고 한다.
갑자기 주말에 특강이 잡혀서 줌으로 하는 온라인 실시간 수업을 들어가 보니, 2027년 내년부터 반드시 대면 참관수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이후부터 비대면 수업으로 바뀌었다가, 이제 팬데믹이 확실히 끝난 시점이라 원래대로 돌아간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그런 변경 지침이 내려와 학교에서 특강으로 알려주는 시간이었다.
사실 수도권에 살면 이 변화가 아주 큰 어려움은 아니다. 하지만 지방에 살거나 해외에서 이 수업을 듣는다면 아주 심각한 일이다. 지방에 살면 이 대면수업을 위해 서울로 올라와야 한다. 이게 아주 큰일이다. 그것도 두 번이나 올라와야 한다. 실습 당일 한 번 올라오는 것 이외에 대면 참관수업을 위해 두 번 더 올라와야 한다. 총 세 번 올라와야 한다. 시간대가 애매해서 숙박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지방에 살면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다.
더 심각한 것은 해외에서 이 과목을 수강하는 경우다. 근처에 참관수업을 할 만한 곳이 없다면 한국으로 들어와야 한다. 얼마나 놀라운 변화인가. 그런데 이 교육실습 과목을 수강하지 않으면 한국어교원자격증을 딸 수가 없다. 내가 정말 파리행을 늦춘 것이 얼마나 잘한 일인지 새삼 깨달았다.
나는 교육실습을 파리에서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듣고 가려고 일정을 연기했는데, 정말 잘한 일이었다. 이 수업 참관을 위해 한국으로 다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이다. 시간과 노력까지 더하면 더욱 그렇다.
그런데 여기서 포인트가 있다. 나는 지금 수도권에 살고 있으니까 외대까지 가서 대면수업을 듣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지하철로 강남까지 24분이면 가고, 외대까지도 한 시간 남짓이면 간다. 비대면 참관수업에서 대면수업으로 바뀐 것이 조금 번거롭기는 하지만, 방송대 다닐 때는 매학기 출석수업도 있었고,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도 직접 치러 갔는데,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문이 저절로 열렸다는 말인가. 그것은 바로 이러한 변경 사항 때문에 올해만 한시적으로 방학 동안 계절학기, 사이버외대 표현으로는 ‘집중학기’에 교육실습 과목을 연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교육실습 과목을 수강 신청하려면 사전에 정해진 학점을 들어야 하고, 지정된 과목을 모두 이수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나는 올해 편입했기에 이번 여름방학에는 못 신청하고 겨울에는 신청할 수 있다. 그래서 교육실습 과목을 이번 겨울방학에 끝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원래는 계절학기 때 교육실습 과목이 없어서, 나는 그 과목을 수강하기 위해 내년 1학기까지 듣고 나서 파리로 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제도가 바뀌는 바람에 학교에서 배려를 해줘서 올해 비대면 참관수업으로 이 교육실습을 끝내라고 계절학기에 그 과목을 신설해 놓는다는 말이다.
이게 사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른다. 한 학기가 왔다 갔다 한다. 나는 교육실습 과목만 다 듣고 나면 한국에 더 이상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사이버외대에서 남은 1년, 2학기의 과정을 온라인으로만 이어가면 되니까 말이다.
신기하게도 지금 모든 일은 정확히 그 시점으로 수렴하고 있다.
내가 맨처음 방송대에 편입할 때 파리행의 목표 시점을 2027년 봄으로 두었다. 그냥 그 정도면 준비가 끝날 것 같아서 그렇게 잡았는데, 신기하게도 딱 그때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2026년 8월 말로 시기를 앞당겼다가 교육실습을 파리 현지에서 도저히 못할 것 같아서 2027년 8월 말로 일정을 늦추었다.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규정이 바뀌면서 생각지도 못한 계절학기에 교육실습을 마칠 수 있게 된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나는 전율을 느꼈다. 어떻게 이리도 저절로 문이 척척 열리는지.
물론 올해 겨울방학의 계절학기 때 교육실습을 신청하려면 내가 이수해야 하는 과목을 빈틈없이 잘 마쳐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다. 하지만 나는 첫 학기 때 실수하지 않고 반드시 들어야 하는 과목들만 구성해서 이번 학기에 6과목 18학점을 듣고 있다. 2학기 때도 잘 구성해서 들으면 문제가 없다.
이것도 사실 아슬아슬했다. 처음에는 모르고 다른 과목을 신청했는데,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이 중요한 정보를 듣고 재빨리 수강 신청 과목을 변경해 겨우 제대로 구성할 수 있었다. 정말 한 끗 차이가 굉장히 큰 차이를 만든다. 까딱했으면 모든 게 뒤로 밀릴 뻔했다.
나는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어떻게 이리도 문이 저절로 열릴까. 내가 맨처음 계획한 대로 2027년 봄에 파리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이 마법처럼 신기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길이 아니면 참으로 어려움이 많이 생기는데, 그 길이 맞다면 쉽게 문이 열리는구나 하고 말이다.
이 길은 나의 길인가 보다. 이번엔 제대로 길을 찾았나 보다. 파리행은 나에게 정답이다. 하나하나 별 어려움 없이 문이 척척 열리고 있다.
등록금까지 가볍게 열린 길
사실 사이버외대 한국어학부 등록금도 꽤 크다. 내가 3학년에 편입했지만 그래도 4학기를 다녀야 하는데, 매 학기마다 몇백만 원의 등록금은 부담스럽다. 4학기를 다니면 거의 1천만 원 가까이 등록금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국가유공자 장학금으로 전액 면제이다. 그것도 한 번 등록하면 졸업할 때까지 다른 추가 서류 없이 쭉 면제다. 물론 두 번째 학기부터는 몇 학점 이상의 전제 조건이 있지만 허들도 매우 낮아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것도 얼마나 쉽게 문이 열리는 일인가.
사실 이런 장학 제도가 있는지도 몰랐고, 내가 해당되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도 방송대를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아주 깊게 설명하진 않겠지만, 어쨌든 그것도 일정 시점에 법이 바뀌어서 가능해진 일이다. 예전에 대학을 다닐 때는 이런 혜택이 없었고, 우리 형제들이 아무도 이 유공자 장학금 혜택을 못 받았으니까.
하여튼 길이 막 열린다. 어려워 보이던 일들이 다 쉽게, 쉽게 해결된다. 파리로 가라는 신의 계시, 운명의 허락처럼 보일 정도다. 다른 길로 갈 때는 그렇게 안 풀리던 일들도 파리행과 관련된 일에는 그냥 술술 풀린다. 그러니 파리행이 내 인생에서는 정답이다. 그 길이 맞다. 나는 지금 맞는 길을 가고 있기에 잘 풀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남은 허들은 거의 없다
앞으로 사실 넘어야 할 허들은 별로 없다. 내 앞에 기다리던 허들은 이미 거의 다 넘은 상태다. 여기까지 오는 데 아슬아슬했을 뿐이다. 나는 처음 배우는 프랑스어를 2년 만에 졸업할지 그것부터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한국어학부에 편입은 잘될지, 등록금은 정말 장학금으로 다 갈무리되는지, 기타 등등 다 조마조마했다. 한 번도 안 가본 길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모든 걸 다 통과하고 나서 요즘은 정말 제 궤도에 올라온 느낌이다. 그래서 이제 남은 허들은 거의 없는 셈이다. 학부에서 일정 학점 이상만 받으면 졸업과 동시에 교원자격증도 나오고, 델프 시험은 프랑스 비자 신청 때 반드시 필수 전제 조건도 아니다. 물론 델프 시험은 치고 갈 생각이지만 말이다.
요즘 한국어교육전공 수업을 따라가는 것도 이제 아주 익숙해졌다. 한 달이 지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이달 말, 그러니까 4월 말쯤부터 중간고사다. 과제물도 과목별로 슬슬 공지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 이 사이버외대에서 처음 맞이하는 과제 제출과 중간고사만 무사히 치르고 나면 완전히 이 시스템에 적응하는 것이다.
순응해야 비로소 가르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어교육 수업을 듣다 보니, 요즘 내가 그 시스템 안에 동화되는 느낌이다. 그래서 교사가 된다는 것은 순응적인 사람이 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교육학 수업은 사람을 어떤 틀 안에 들어가게끔 설계되어 있는 것 같다. 내가 예전에 철학과를 다닐 때 교직을 신청해 들었을 때는 딱히 정말 현실적으로 교사가 되어 보겠다고 생각해서 교직 과목을 수강했던 게 아니다. 철학 혹은 도덕과목 중등교사자격증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나을 것 같았고, 또 대학교 성적도 그 교직을 수강할 범위 안에 들어갔기 때문에 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내가 교사가 되겠다고 결심하고 미래 계획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자격증 하나 가지면 좋지 뭐, 이런 생각으로 수업을 들었다. 그래서 별 감흥도 없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지 않은가. 실제로 파리에 가서 한국어 강사를 하려고 이 사이버외대에 들어와서 한국어교육학을 전공하고 있잖은가. 아니면 내가 이 봄날에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을 리가 없다.
그런데 수업을 들으면 들을수록 내가 이 시스템 안에 순응해야 한다는 자각을 했다. 결국 내가 한국어를 가르칠 외국 학생들도 한국어능력시험을 쳐야 한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 Test of Proficiency in Korean)은 외국인과 재외동포를 대상으로 한국어 실력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공인 시험으로, 영어의 토플(TOEFL)이나 프랑스어의 델프(DELF)처럼 해당 언어 능력을 공식적으로 증명하는 역할을 한다. 한국 대학 진학, 취업, 장학금 신청, 비자나 체류 관련 절차 등에서 활용되며, 한국어를 얼마나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보여주는 기준이 된다.
그런데 이 시험에 내가 가르칠 학생들이 제대로 붙으려면 나는 시스템 안에서 마련된 그 내용을 잘 전달해야 한다. 결국 나도 그 시스템 안에 순응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한국어교육학 수업을 들을수록 나는 순응하게 되었다. 최소한 한국어 수업에 있어서는 순응자가 되어야 했다.
앞으로 내가 새롭게 창조할 한국어 교재에 대해서는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제도권 안에서 내가 순응하고 정보를 흡수해야 내 학생들이 TOPIK을 잘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완전히 그 체제에 흡입되어 학생들을 TOPIK에 척척 붙게 해주고 나서, 그다음에야 현장에 맞는 새로운 한국어 교재를 만들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다르다.
내 학생들을 위해서라면, 나는 먼저 그 체제를 정확히 통과할 생각이다.
물론 처음에도 그렇게 생각은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다르다. 나는 사실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세종대왕이 쉽게 훈민정음을 만들었는데, 후대의 학자들이 너무 어렵게 한글 문법을 만들고 정리해 놓아서 정말 실망이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은 너무 덕지덕지 기워 놓은 듯하다. 문법도 수시로 바뀌고 해서 정말 새로운 한글 교재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수업을 해보고 나서 만들자고 결심했고, 이제는 일단 순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TOPIK이 있는데, 내가 어떻게 새로운 것만 말할 수 있을까. 물론 TOPIK을 잘 통과하기 위한 교재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교재를 만들어야겠지만, 일단 그것은 성과를 내고 나서의 일이라고 결심했다.
하여튼 그것이 옳든 아니든, 교육학은 사람을 어떤 틀 안에 순응하게 만든다. 이게 내가 깨달은 사실이다. 나는 내 삶을 어떤 틀 안에 가두는 것을 제일 싫어했지만, 한국어교육만큼은 내가 그 시스템 안에 순응해야 한다는 현실적 감각을 일단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요즘 수업 듣는 것이 괴롭지는 않다. 여전히 납득하고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는 문법 내용도 일단은 흡수하기로 했다. 저항 없이. 내 학생들이 TOPIK을 누구보다 잘 통과하게 하려면 나부터 일단 순응해야 한다. 왜냐하면 TOPIK은 제도권 안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일에 대한 기억
그런데 배우면 배울수록 한글 문법은 참 어렵다. 한글은 참 어려운 문자다. 누가 한글을 쉽다고 말했나. 이번에 수업을 들으면서 내가 잘 몰랐던 디테일한 부분도 알게 되었다. 한국 사람이라고 문법을 잘 아는 것이 아니다. 그나마 나는 어릴 때부터 국어 사랑, 한글 사랑에 목을 매던 사람이라 문법적인 부분이나 맞춤법에 강한 편이고, 직업 특성상 한글 지식도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인데도 한글은 어렵다. 배우면 배울수록 더 어렵다.
이 어려운 문자를 외국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게 참 힘든 일일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한글을 사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지난한 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나는 한글을 사랑하고 지식도 어느 정도는 있어서 다행이다. 아니면 이 어려운 한글을 어떻게 가르칠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익숙하게 사용하는 한글과 실제로 전혀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에게 가르치는 것은 천지차이다. 그래서 더 어렵다.
사실 기초 문법이나 기타 과목들에 나오는 수업 내용을 내가 모르는 것은 아니다. 거의 99퍼센트 아는 내용들이다. 우리가 다 배웠던 내용이고. 그래서 중간고사도 방송대 다닐 때처럼 긴장할 필요는 없다. 방송대 프랑스어 시험은 모르면 정말 모르는 것이고, 공부하지 않으면 찍을 수도 없다. 그런데 솔직히 한국어교육 과목들은 기본 배경지식이 있는 내용들이라 사실 중간고사 준비에 초긴장을 안 해도 어느 정도 맞출 수 있다. 성적을 낼 수 있는 내용들이다. 물론 준비는 철저하게 하겠지만 말이다.
이게 그래서 참 어렵다. 안다는 것과 가르친다는 것은 다른 영역이라 한국어교육학이 어려운 전공이라는 말이다. 쉬운 전공이 절대로 아니다. 어렵다. 내게는 프랑스어보다 한국어교육이 더 어려운 것 같다. 하지만 그 시스템 안에 잘 순응해서 잘 해낼 것이다. 이제 마음으로는 저항하지 않고 다 받아들일 생각이다. 그래야 내 학생들이 TOPIK을 누구보다 잘 통과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포항에 잠시 있을 때 고등학교 검정고시 반에서 성인반을 담당한 적이 있다. 그때 국어와 국사, 윤리, 사회 같은 과목들을 가르쳤다. 그런데 내가 맡은 학생들은 그해 검정고시 시험에서 숨겨진 국사 문제까지 다 잘 맞혔다. 내가 족집게처럼 문항을 잘 뽑아내서 보통 스치고 지나가는 부분까지, 다른 학생들은 알아서 다 틀리는 그 문제를 내 학생들은 맞혔다. 시험을 치고 와서 다들 나를 칭찬했다. 어떻게 그 문제까지 족집게처럼 집어냈느냐고.
그리고 그 무렵 내가 고등학생 국어 과외를 잠시 했는데, 다른 과목은 다 잘하는 학생이었지만 국어 과목이 전교 꼴지에 가까웠다. 내가 과외하고 나서 한두 달 만에 전교 50등까지 국어 성적이 올랐다. 내가 국어를 좀 독특하게 가르쳤기 때문이다. 문맥을 잡는 감각부터 익히게 했다. 그러면 기초가 쌓여서 어떤 문제가 나와도 잘 맞출 수 있었고, 그 학생 성적이 대번에 올랐다.
그러고 보면 내가 가르치는 일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그 무렵 또 동네 학원에서 중학생 국어 전담을 했는데, 내가 서울로 가기 위해 그만두었을 때 학생들이 송별파티를 해줄 만큼 나를 잘 따랐다. 내 수업 시간을 좋아했다. 학원 원장님도 그걸 인정해 줘서 내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서울행이 내게는 더 중요했기 때문에 큰 학원에서 국어 전담 강사가 되는 자리도 마다하고 다 그만두었다. 나는 사실 한국의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그것이 학교든 학원이든 모두 싫었다. 학교 다니는 것이 너무 싫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그 학교라는 공간, 시험이라는 시스템 안에 묶여서 평생 살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었으니까.
한국에서는 거부했던 길, 파리에서는 선택한 길
학교 선생이 되든 학원 강사가 되든 한국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면 그 안에, 그 시스템 안에서 그 규칙대로 돌아가야 한다. 나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었다. 그 당시 아르바이트처럼 잠시 강사 생활을 한 것은 서울로 올라오기 위한 기본 자금을 모으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그런데 이제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은 한국어 강사다. 물론 전업은 아니지만 어쨌든 가르치는 일이다. 파리에서 영화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다니기 위해 보험으로 한국어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려는 것이다. 한국어교원 자격증이 없어도 개인 간 과외는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어교원자격증이 있으면 과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고, 기관, 그러니까 세종학당이나 한글학교 같은 곳에서 좀 더 안정적으로 시간제 강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출판이라는 나의 본업이 있긴 하다. 하지만 파리에서 유로화를 직접 벌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길이 한국어 강사다. 원화의 가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세상일은 알 수 없다. 국제 정세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 한 치 앞도 모르는 게 인생사다. 그래서 보험을 들어놓아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담보를 만들기 위해서다. 파리 현지에서 끝까지 자생할 수 있는 보험 말이다. 그리고 그 점에서 파리는 생계의 도시일 뿐 아니라, 내 출판 작업을 더 창조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도시이기도 하다.
어쨌든 ‘그 길이 맞다면’ 문은 또 척척 열릴 것이다. 나는 이 길에 확신을 가진다. 파리에서 또 다른 길이 나타날 것이다. 유로화를 벌고 싶다. 사실 원화를 믿을 수가 없다. 생명줄은 하나쯤 따로 담보로 걸어두고 싶다. 그래서 나는 한국어교육만큼은 그 시스템 안에서 순응하고 있다.
그리고 파리의 한국어 교육 현장은, 비록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더라도 내가 거부해 온 기존의 한국 교육 시스템과는 다를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선생 노릇하는 삶은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파리에서라면 가르치는 일 역시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다.
사실 재밌는 이야기를 하자면, 예전에 철학관에서 사주를 보면 항상 내 직업으로 교육자가 첫 번째로 나왔다. 사업을 하더라도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라고 했다. 그리고 정다운 스님이 쓴 토정비결, 밀알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내가 고등학생 때 탐독했는데, 당시 나는 내 미래가 너무 궁금했다. 그때 내가 말년에 문필로 이름을 만방에 떨치고 재물과 복록을 쌓는다고 나왔다. 그리고 거기서도 아마 직업으로 교육자가 있었던 것 같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재밌고 신기한 것은 내가 결국 교육자의 길로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거부하던 길을, 전혀 다른 도시에서
나는 마침내 내 방식으로 선택하게 된다.
인생이 참 재밌다. 어떻게 이리로 오게 되었을까. 그리고 이 길로 오니까 일이 착착 잘 진행된다는 것이다. 높은 허들처럼 느껴지는 일도 저절로 해결된다. 파리도 2027년 봄에 가라고 규정까지 바뀌니 너무 놀랍다. 물론 나를 위해 그 규정이 바뀐 것은 아니겠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그런 기분이다.
이게 한 끗 차이가 정말 무섭다. 2027년 8월 말과 2027년 2월 말이 파리행에서 얼마나 큰 차이인지 생각해보라. 결국 내가 처음 예상했던 대로 가게 되면 파리 현지 어학원에 1년 다닐 수 있게 되어 더 넉넉하다. 그리고 그 1년 후에는 한국어교원자격증이 나오고, 나는 정식 한국어교육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
그리고 그다음은? ‘그 길이 맞다면’ 한국어 강사 자리도 좋은 곳에서 날 것이고, 누군가는 나를 뽑아줄 것이다. 세종학당이든, 또 다른 좋은 자리가 되었든 말이다. ‘그 길이 맞다면’ 세상은 알아서 나에게 맞춰 움직일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요즘 K콘텐츠 붐 덕분에 한국어를 배우려는 외국인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개인 과외 자리도 굉장히 많다고 한다. K콘텐츠의 약진 덕분에 내가 파리에서 생활하기가 더 쉬워진 셈이다. 시대를 잘 타고 있다. 지금 바로 이 순간, 바로 이때 파리를 가야 하는 것이다.
내가 20대때 파리에 갔더라면 이런 혜택은 없었을 것이다. 그때는 한국이라는 나라도, 한글도 프랑스 파리에서 지금처럼 익숙한 대상이 아니었을 테니까. 지금은 파리시테대학교에 한국어학과도 있을 만큼 한글은 이미 파리 깊숙하게 들어가 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 길이 맞다면’ 인생에서는 문이 활짝 열린다. 그 신호가 바로 제대로 가고 있다는 증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