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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Étoile Bleue Créations · 푸른별창작소)

EDITORIAL NOTE
2026. 03. 30

극장의 시간들

드디어 씨네큐브에 관한 영화가 나왔다. 그러고 보면 대한민국의 씨네필들에게는 씨네큐브가 마음의 고향인 듯하다. 며칠 전에 롯데시네마 경기인디시네마관에 <극장의 시간들>을 보러 갔다. 평일 대낮이라서 몇 명이 없었지만, 그래서 더 아늑하고 좋았다. 마치 극장을 빌려서 보는 듯이 편안했다.

<극장의 시간들>은 씨네큐브 개관 25주년을 기념해 탄생한 옴니버스 영화다.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의 세 편을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감싸안은 이 94분의 작품은, 한 극장을 오래 사랑해온 사람들의 기억이 어떻게 시간으로 남는지를 조용히 되짚는다. 2000년 광화문의 공기 속에서 맺어진 시네필의 우정, 어린이 배우들이 영화를 만들어가는 현장의 숨결, 그리고 극장을 매개로 다시 이어지는 재회와 감정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씨네큐브는 추억과 노동, 애정과 청춘이 켜켜이 축적되는 하나의 세계로 다가온다. 2026년 3월 18일 개봉한 이 영화는 한 장소를 오래 사랑해온 시간 자체를 돌아보게 만드는 다정한 헌사에 가깝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씨네큐브가 2000년에 개관했는지 처음 알았다. 나는 2000년 1월 2일 서울에 올라왔고, 씨네큐브는 그해 12월 2일 문을 열었다. 정확히 같은 날은 아니지만, 묘하게도 우리는 같은 해 서울에서 각자의 시간을 시작했다. 정말 묘한 인연이다. 나는 2002년부터인가, 2003년부터인가 광화문에서 출판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부터 퇴근 후 늘 씨네큐브에 가곤 했다. 특히 그때는 씨네큐브 건물, 그러니까 흥국생명빌딩의 지하에 세계 음식을 파는 푸드코트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저녁을 거기서 매일 해결하다시피 했다. 음식도 나라별로 선택할 수 있어서 맛도 다양하고, 가격도 저렴했다. 그리고 가격에 비해 음식의 퀄리티도 높았다.

나는 그 시절이 참 그립기도 하다. 서울에 와서 이제 직업적으로는 안착을 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서울로 올라와서 처음에 광고회사 기획자와 카피라이터를 하다가 그다음에는 신문사,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출판 일을 하기 시작한 무렵이 바로 광화문 시절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씨네큐브가 지척에 있어서 퇴근하면 가는 맛이 쏠쏠했다. 영화도 기다리고, 음식도 기다리고. 혼자 서울에서 자취하는 내게 그곳은 천국과도 같았다. 그 당시에는 지방에선 잘 접할 수 없었던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음식을 저렴하게 한 끼 식사로 편안하게 먹을 수 있는 것도 좋았고, 마치 집안에 극장을 둔 것처럼 안락하고 편안하게 씨네큐브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었다.

씨네큐브는 정말 특별한 공간이다. 나에게만 그렇지 않고, 수도권에 주거지를 둔 사람들 중에서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겐 일종의 성지 같은 곳인가 보다. 그러니 ‘극장의 시간들’이라는 제목의 영화도 나오지. 아, 이번에 영화를 보면서 나의 서울 생활 시작 연도와 씨네큐브의 탄생 연도가 같다는 데서 운명 같은 게 느껴졌다. 역시 씨네큐브는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자리를 차지한다. 그래서 내게는 이 영화가 무척 특별하게 느껴졌다. 사실 이 영화를 하는지도 몰랐는데, 롯데시네마에 경기인디시네마관이 따로 있는 걸 최근에 알게 되어 늘 어떤 영화를 상영하는지 앱을 들여다보곤 해서 알게 되었다. 평소 같으면 이 영화가 개봉하는지도 몰랐을 거다. 그리고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그냥 독립영화인가 했다. 씨네큐브와 관련된 영화인지 몰랐는데, 볼만한 영화는 다 보고 나서 이 영화가 걸렸다. 그래서 챗지피티에게 물어보니, 오! 씨네큐브에 대한 영화였다.

하지만 작품성에 대해서는 딱히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냥 제목만 보고 스쳐지날 때는 소품 같은 영화일 줄 알았다. 그런데 씨네큐브 개관 25주년을 기념해서 제작된 영화인 줄 알고는 감독 각각의 프로필을 찾아봤다. 한예종 출신들이었다. 사실 예전에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고 나서 나는 한예종의 힘을 조금 믿었다. 배두나 주연의 <고양이를 부탁해>는 정재은 감독의 2001년 장편 데뷔작이다. 작품을 다 찾아봤는데, 느낌이 상당했다. 그래서 그때부터 우리나라 예술 엘리트 집단이라고 부르는 그 학교의 힘을 믿어볼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결론을 말하자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그냥 정재은 감독이 훌륭했던 것이지, 학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모든 한예종 출신이 다 영화를 느낌 있게 잘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씨네큐브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해주긴 하는데, 그 연결성이 약했다. 그냥 씨네큐브의 풍경 장면을 끼워넣기만 했지, 작품 속에 잘 풀어놓지를 못했다. 난 좀 다른 걸 상상하고 기대하고 갔다. 그러니까 씨네큐브의 특별한 공간과 관련하여 각자가 풀어놓는 씨네필의 이야기와 역사. 이번 영화는 그냥 따로국밥 같은 느낌이었다. 밥 따로 국 따로. 씨네큐브 따로, 각각 다른 이야기들. 상관없는 이야기들. 그냥 물리적으로는 씨네큐브가 영화 속에 나왔지만, 뭔가 간절하고 긴밀하게 작품 속 이야기들과 연결되지는 못했다.

나라면 어떤 영화를 만들까

나라면 어땠을까. 내가 씨네큐브에 관련한 영화를 만든다면 어떤 이야기를 풀어놓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아쉽고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또 안 보면 안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2000년에 개관했다는 씨네큐브의 시초를 알았으니까. 차라리 나는 이 영화에서 앞뒤에 붙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느낌이 있어서 좋았다. 사실 처음 프롤로그가 시작될 때는 숨이 딱 멎는듯했다. 좋은 작품일 것 같은 느낌이 딱 왔는데, 본편으로 들어가니까, 이게 뭔가 싶었다. 허술했다. 구조도 빈약하고, 연결성도 허술하고, 게다가 이야기가 산으로 갔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왜 멋졌나 하면 실제의 그 씨네큐브 현장의 맛과 멋을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작위적이지 않고, 살아 있는 씨네큐브의 향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렇다고 내가 다큐멘터리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지만, 본편들이 대학교 졸업 작품보다 허술한 느낌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가 상대적으로 더 빛났던 것 같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결심했다. 나중에 내가 영화를 정말 만들게 된다면 씨네큐브에 관한 영화를 나도 만들어 봐야지 하고 말이다. 나는 더 감각 있고 진솔하고 작위적이지 않게 영화를 만들 자신이 있다. 구조도 더 치밀하게 말이다. 씨네큐브라는 아주 특별한 공간을 말하면서도 개인의 추억이 엮이면서도 씨네필의 성장을 녹여내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 나는 꼭 이 영화를 만들 생각이다.

이번 <극장의 시간들>은 작품적으로는 허술했지만, 보기를 잘했다. 내게 또 다른 꿈과 책임을 갖게 해줬고, 씨네큐브라는 그 공간이 내 서울 생활과 같이 시작했다는 사실에 조금 전율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영화감독이라는 꿈을 꾸게 된 것은 씨네큐브에서 시작되었다. 그 공간이 갖는 특별함, 아마 우리나라 많은 영화감독들이 씨네큐브에서 영화에 대한 꿈을 키우지 않았을까. 씨네큐브는 그만큼 아주 특별한 공간이다. 영화를 사랑했던 사람들을 더 영화에 빠져들게 하고, 영화를 별로 의미 있게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도 씨네큐브에 가면 아주 특별하게 느끼도록 해주는 공간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동안 돌고 돌아왔던 그 길이 영화감독이 되기 위한 긴긴 여정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영화평론가도 되고 싶지만, 궁극적으로 되고 싶은 건 영화감독이다. 나는 영화를 비평도 하고 싶지만, 영화를 직접 만들고 싶다. 그게 나의 최종 꿈이다. 프랑스의 누벨바그의 문을 연 에릭 로메르 감독처럼 나도 영화평론가이자 영화감독이 되고 싶다. 나는 <극장의 시간들>, 이 작품을 보고 내가 지금 가고자 하는 ‘영화감독의 시간’을 더 진지하게 생각했다. 이전에는 막연하게 멀리 있는 꿈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더 가까이 좁혀진 것 같다. 이제 나는 파리 유학을 위해 이전의 준비 단계인 방송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도 졸업했고, 그 생활 전선의 최후 보루를 보험 들기 위해 사이버한국외대 한국어학부에 편입해서 다니고 있는 중이다. 파리 유학은 이제 눈앞에 있다. 한국어교원자격증은 이 학교를 졸업하면 따라오고, 나는 파리에서 자리를 잡기 위해 보험에 가입한 셈이다.

물론 출판도 있고, 컨설팅 같은 다른 다양한 일도 하겠지만 파리에 행정적으로 뿌리를 내리려면 파리의 세종어학당이나 시테대학교의 한국어학부에서 일하기 위해서 한국어교원자격증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한국 사람이 프랑스 가서 가장 내세울 게 뭐가 있나. 그들이 못하는 것을 해야지, 큰소리를 칠 수 있다. 다른 건 내가 그들보다 잘할 게 뭐가 있겠나. 한국어만큼 내가 그들보다 잘하는 영역은 없다. 또 나는 출판인이라 한국어 교재 제작이라는 프로젝트도 진행할 수 있다. 작가라서 프랑스 관련 책도 출판할 수 있다. 하지만 파리에서 세계인들에게 가장 강력하게 내세울 수 있고 내 자리를 탄탄하게 일단 만들 수 있는 것은 한국어 강사이다. 그리고 행정적으로도 그게 유용해서 영주권을 딸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서다. 혹자는 한국에서도 영화를 배울 수 있지 않냐, 영화 공부를 할 수 있지 않냐고 물을 수도 있다. 실제로 방송대 학우가 물었다. 처음에 프랑스언어문화학과에 편입했을 때, 다들 왜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은지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내가 파리로 유학 가서 영화를 공부하고 싶다고 했을 때 한 학우가 그걸 물었다. 그때 제대로 답해주지는 않았지만, 내 솔직한 마음은 그렇다. 나는 프랑스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에 대한 열정이 활활 타올랐기 때문에 반드시 파리에 가서 영화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또 이런 말 하면 실례가 될까. 하지만 팩트니까 말하겠다. 이번 영화를 봐도 그렇잖아. <극장의 시간들>. 영화의 꽃인 최고의 학부를 나와도 그렇게 소품처럼 졸업작품 정도의 영화를 제작하게 되니까 말이다.

영화의 기술은 배울지 모르지만, 영화를 만드는 서사와 세계관이 담겨 있지 않는 듯하다. 그건 개인이 쌓아야 할 것이지만, 그래도 환경도 큰 몫을 한다. 난 기술적으로만 충실한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 형식만 있는 영화, 아, 이게 영화니까 너네들 봐라.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하는 영화는 예술 작품이어야 하고, 그 작품 안에 감독의 세계관이 녹아 있어야 하고, 서사가 구조적으로 잘 잡혀 있어야 하고, 대사가 치밀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영화나 한국 영화들에서 대사의 비중이 너무 낮다. 영화 대사는 정말 치밀한 계산 아래에 구조적으로 잘 짜여야 한다. 한 대사, 한 대사 하나하나가 날실과 씨실처럼 잘 엮여 있어야 하는데, 너무 의미 없는 대사들 천지다. 영화는 장면 하나, 하나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하고, 대사도 그러해야 한다. 그리고 그 대사들은 입체적이어야 하고, 언어적으로 의미가 있어야 한다. 영화는 이미지의 세계이어야 하지만, 대사의 조밀도를 잘 맞춰 넣어야 한다. 그런데 소품 같은 영화들은 영화 만들기에만 급급하다. 영화라는 기술적 틀만 갖춰 놓고 대강 때려 넣은 느낌이다. 대사의 존재적 무게감이 하나도 없다. 과연 생각하고 저런 대사를 넣었을까, 계산하고 넣었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을 잘 수행하기 위해선 일단 감독의 세계관이 잘 확립되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작품이 완결성을 가질 수 있다. 이게 안 되어 있으면 만드는 작품마다 소품의 무게감처럼 가벼울 수밖에 없다.

‘감독의 시간’ 앞에서

나는 영화를 잘 만들 자신이 있다. 나에게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지난 시간이 내 안에 모든 걸 채워 넣었다. 난 프랑스어만 잘 익히면 된다. 파리 시테대학교 영화학과에 가서 수업을 잘 들을 수 있는 실력만 되면, 나머지는 다 준비되어 있다. DELF C1이 나의 최종 목표다. 그 정도 되면 내가 생각하는 걸 말로 논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는 난 다 이미 갖췄다. 따로 역량을 쌓을 필요도 없다. 물론 프랑스 파리에서 더 깊이 모든 걸 흡입하겠지만, 지금도 난 충분히 갖췄다. 하지만 파리에서 영화학 석사 과정을 마치고, 혹은 중간에 영화를 만들 것이다. 난 뭐든 하면 ‘제대로’ 하고 싶다. 특히 진짜 좋아하는 일은 정말 제대로 하고 싶다. 그래서 난 파리로 가는 것이다. 파리에서 영화 공부를 하고 싶은 거다. 이게 나의 정확한 답변이다.

감독의 시간, 그래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감독의 시간’을 위하여 움직이고 있다. 내 삶의 방향은 아주 구체적으로 그 방향을 조준하여 나아가고 있다. 혹자는 왜 이리 늦게 영화감독의 길을 가느냐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생이란 ‘제때’라는 것은 없다. 운명이 허락해주는 시간이 있다. 그때가 진정한 ‘제때’일 것이다. 나는 이제야 영화감독이라는 구체적 꿈에 가까이 가도 좋다는 운명의 허락을 받았다. 그래서 이제 제대로 가고 있다. 내가 짜놓은 시간표대로 잘 가고 있다. 시간은 조금 더 빠르거나, 늦어질 수 있지만, 길은 제대로 가고 있다. 영화감독이 되어서 10작품을 만들든, 몇 작품을 만들든 평생에 만들 수 있는 걸 만들면 된다. 그걸 일찍 시작해도 한두 작품밖에 못 만드는 사람도 있고, 늦게 시작해도 다수의 작품을 만들 수도 있다. 그건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중학교 때 헤르만 헤세 같은 작가가 되고 싶었다. 일단 ‘작가’는 된 듯하다. 여러 작품을 썼으니까 말이다. 나는 앞으로 파리에 가서 시나리오도 직접 프랑스어로 쓸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 정부에서 제작 지원하는 영화 사업에 신청할 것이고. 거긴 문화 선진국답게 제작 지원 사업도 많아서 제도권 안에만 들어가면 기회도 많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프랑스어를 잘하는 것, 그것 하나뿐이다. C1까지만 가면, 델프 자격증보다 실력이 그 정도만 가면 내가 원하는 걸 다 해낼 수 있다. 난 그 이외에는 다 갖추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실 파리 노숙자도 나보다 프랑스어를 잘한다. 하지만 내가 가진 철학적 통찰, 세계관, 영화에 대한 열정, 영화를 구조적으로 짤 수 있는 역량은 없지 않는가. 나는 프랑스어만 잘하면 된다. 나머지는 다 있다.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그냥 파리만 가면 된다. 한국어 교원자격증 하나 따가지고 파리에 가면 된다. 파리에서 살면서 현지 어학원 다니면 C1은 가까운 목표이다. 물론 꾸준히 프랑스어를 공부해야 하지만, 그건 당연한 일 아닌가. 어쨌든 난 프랑스어만 가지면, 모든 걸 가질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걸 가질 수 있다. 그걸 알기에 이 길이 참 편안하다. 내 인생에서 요즘처럼 뭔가 안정감이 느껴진 때는 없었다. ‘영화감독의 시간’, ‘영화감독의 길’, 이 길이 나의 길이다. 제일 편안한 느낌이 들고, 만족감이 들고, 이 길에 최선을 다할 마음가짐이 있다. 그리고 그 길을 위해 준비하는 것도 착착 잘되고 있고.

영화감독의 역할을 출판에서 보자면 편집장 같은 거다. 책이라는 작품을 만들 때 다 전체적으로 주도권을 잡고 배열하고 실행하는 작업 포지션. 그게 영화라는 작품으로 옮겨가서 감독의 역할을 해내면 된다. 나는 내가 쓴 책을 만들어 봤다. 영화도 시나리오는 내가 쓸 생각이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이미 다 내 머리 안에 들어 있다. 이번에 또 본 영화가 있는데, <센티멘탈 밸류>이다. 이 영화도 롯데시네마 경기인디시네마관에서 봤다.

이 영화는 요아킴 트리에가 연출한 가족 드라마로, 2025년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공개되어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오래 집을 비웠던 영화감독 아버지가 새 영화를 들고 돌아오고, 그 과정에서 두 딸과 다시 얽히기 시작한다는 설정만 보면 단순한 재회담처럼 보이지만, 이 영화가 끝내 붙잡는 것은 화해보다 그 이후에도 남아 있는 감정의 잔여물이다. 한 공간에 눌어붙은 기억,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오래 봉인되어 있던 상처, 그리고 예술이 타인의 삶과 감정을 어디까지 가져다 쓸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차갑고도 섬세하게 교차한다. 그래서 <센티멘탈 밸류>는 가족을 다룬 영화이면서도, 결국에는 기억의 무게와 감정의 값을 다시 묻게 만드는 작품으로 남는다.

그런데 이 작품도 소재로 보면 영화감독과 영화 이야기다. 나는 이 영화에서 영화감독인 아버지가 자신의 영화가 소개되는 칸 영화제에 간 그 장면이 인상 깊었다. 칸의 해변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이상하게 부산국제영화제가 떠올랐다. 아마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칸이 크루아제트와 해변을 영화제의 일부로 끌어안은 도시라면, 부산 역시 해운대를 배경으로 영화와 도시의 공기를 섞어온 시간이 있다. 정확히 같은 결은 아니어도, 바다를 곁에 둔 영화제만이 풍기는 어떤 감각은 분명 서로 닮아있다.

내가 코로나 19 시절에 제주살이 2년 후에 해운대살이를 1년 선택한 것도 부산국제영화제에 가보는 게 내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걸 해냈다. 마침 코로나 19의 끝물인 시기라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릴 수 있었다. 난 그 당시의 가슴 뛰는 흥분과 감격을 잊을 수 없다. 그냥 관객으로 참여해도 그토록 흥분이 되는데, 내가 영화감독으로서 그 자리에 있다면 얼마나 황홀할 것인가. 어쩌면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막연한 동경이 아니라, 현실의 타임라인 위에 서 있으니까 말이다.

칸영화제의 시간

이번에 <센티멘탈 밸류>를 보면서 칸의 해변을 보고 미치는 줄 알았다. 뭔가 느낌이 왔다. 나도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확실한 느낌을 받았다. 일단 칸국제영화제에 관객으로 가보는 건 확실할 것 같다. 부산국제영화제에 갔을 때도 너무 흥분되었는데, 칸국제영화제에 가본다면 얼마나 더 행복할까. 나는 이번에 확실하게 결심했다. 빨리 가자고. 칸국제영화제에 빨리 가보자고 말이다. 파리에 자리잡자마자 칸으로 달려가야지. 부산국제영화제도 내가 부산으로 작업실을 옮기자마자였나, 시기가 그렇게 맞았다. 내가 9월쯤 제주에서 부산으로 갔고, 영화제도 그맘때쯤 10월쯤 열렸던 것 같다.

파리에 가게 되면 칸 국제영화제에 꼭 빨리 가봐야지. 이번 영화에서 그 풍경을 보니, 예전과 달랐다. 해운대와 미묘하게 교차되는 느낌, 그 영화제 깃발이 펄럭이는 그 광경이 분위기가 너무 닮아있었다. 내가 갔던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배경이 딱 그 느낌이었으니까. 해변을 뒤로 하고 깃발이 펄럭이는 그 분위기. 아, 만일 내가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지 않았다면, 또 해운대살이를 하지 않았다면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 장면의 묘한 기시감을 난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많은 다른 사람들도 내가 느끼는 이 느낌을 못 받을 거다. 사람의 경험이란 것은 하나의 장면을 같이 봐도 훨씬 넓은 영역의 느낌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그 파장은 굉장한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사람은 어디에서 사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진짜 중요하다. 평생을 다양한 경험으로 자신의 삶에 퇴적층을 쌓아 올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만든 작품은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사고의 퇴적층도 물론 깊이 있게 쌓아 올려야 한다. 그것은 책만 많이 읽어서 될 일도 아니고, 깊이 있는 사고로 자신을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 난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 두 영화를 보고 말이다. <극장의 시간들>, 그리고 <센티멘탈 밸류> 두 작품 모두 내가 영화감독으로서 가야 하는 그 길에 구체적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그렇다. 이젠 선명하게 다가온다. 아주 구체적으로 ‘영화감독의 시간’이 느껴진다. ‘영화감독의 길’이 눈앞에 놓여 있는 걸 본다. 내가 출판인으로 살아온 것도, 작가로서 훈련한 것도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드는 데 좋은 거름이 될 것이다. 물론 난 출판인이기도 하면서 영화감독이기도 할 거다. 그런데 앞으로 책의 미래는 영화와 어쩌면 경계가 애매모호해질지 모른다. 지금 그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은가. 오디오북은 듣는 영화처럼 되었고, Epub3는 동영상을 넣는 구조로 간다. 자, 책과 영화의 경계가 어디쯤일까. 내가 영화감독으로서의 길을 가는 건 출판의 역사 위에서 미래로 연결이 되는 구조다. 이것도 운명인 것 같다. 나의 운명.

그런데 여담이지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 정말 그럴만 하더라. 칸영화제에서 수상한 작품은 이제까지 실패한 적이 없다. <센티멘탈 밸류>, 이 영화 너무 추천한다. 국제영화제 수상작은, 특히 칸은 그 짜임새가 확실히 다르다. 이런 짜임새 있는 영화를 보고 오면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다. 경기인디시네마관에서 수상작들을 자주 상영해줘서 좋은 작품들을 영화관에서 많이 만나는 날들이 즐겁다. 5천 원의 행복, 너무 좋다. 이런 작품을 보고 나오면 세계가 완성되는 느낌이다. 그리고 배우는 것도 많다. 영화 기법도. 이번 작품에서도 하나의 기법을 배웠다. 작품 속의 작품. 현실과 작품이 연결되는 그 장면들. 그런 기교. 보면 알 것이다. 뭘 말하는지.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더 그런 테크닉이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렇게 매끄럽게 이어붙이는 기술, 그건 장인의 손길이다. 이건 기술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감독의 역량을 말하는 것이다.

영화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제일 흥분이 된다. 그리고 좋은 작품을 만날 때 제일 행복하다. 또 영화는 역시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 확실하다. 파리에 가면 나는 역시나 자주 영화관에 갈 것이다. 거기도 유학생은 학생 자격으로 지원을 많이 해준다니까 영화 보러 극장에 자주 가는 게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파리 가면 TV 없이 지낼 거니까 영화를 보려면 무조건 극장에 가야 한다. 사실 작은 화면에서 영화를 보는 건 제대로 보는 게 아니다. 느낌이 하늘과 땅 차이다. 그 작품을 만든 감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극장의 시간들>, <센티멘탈 밸류>, 이 영화들이 나의 감수성을 깨워 주었다. 씨네큐브를 소환해서, 나의 꿈과 추억을 구체적 시간표 위에서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나는 칸에 반드시 가야 한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제 파리가 너무 현실 위에 서 있어서 별 감흥이 안 느껴졌는데, 칸은 아직도 심장을 뛰게 한다. 사실 파리행을 몇 년 동안 준비하면서 너무 현실적인 준비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감수성이 좀 많이 말라버렸다. 프랑스어 공부를 뚫고 왔고, 또 이제는 한국어학부에서 공부하고 있다 보니, 또한 파리를 너무 영상으로 많이 소비하다 보니, 게다가 파리를 이제 현실적으로 맞부딪혀야 할 생활의 공간으로 시뮬레이션을 많이 돌리다 보니, 영화감독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좀 접어두고 있었다. 일단 파리에 가서 살아가는 전략에 중점을 두고 준비를 하다 보니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들로 칸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 칸에 가야지. 칸국제영화제에 참석해야지. 부산국제영화제가 내 버킷리스트였고, 난 그걸 달성했다면 이제 칸국제영화제에 가보는 게 또 다른 나의 버킷리스트다. 관객으로서 일단 그 분위기에 빠져보고 싶다. 부산국제영화제도 내가 상상한 그대로 멋있고 황홀한 축제의 장이었다. 아, 그 떨림. 밤늦게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정말 그 바닷바람에 섞여 오는 소금기, 바다의 내음, 그걸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그 떨림과 흥분을 알까. 그 영화제의 분위기가 주는 묘한 매력과 흥분을 알까. 칸국제영화제는 더하겠지.

아, 나는 이제 칸을 생각하기로 했다. 파리도 좋지만, 칸으로 가는 그 설렘, 영화에 대한 나의 열정, 그 만족감을 칸의 해변에서 내가 실제로 경험해 볼 걸 생각하니 너무 행복하다. 그리고 시테대학교 영화학과 석사 과정에만 들어가면 영화감독이 되는 길도 이어지리라. 나는 파리에 가서 인맥을 많이 만들 생각이다. 그러려면 일단 기관에 들어가야 한다. 사람이 그 집단의 구성원이 되어야 기회도 오고, 정보도 온다. 인맥도 연결이 되어서 길이 열린다. 사실 영화 공부도 공부지만, 난 제도권 안에 들어가고 싶다. 파리 영화의 제도권 안 말이다. 그 시스템에 연결되고 싶다. 그 인맥의 끈을 잡고 싶다. 그래야 나에게 기회가 올 것이니까. 뭐 독립영화로 나 혼자서도 만들 수는 있지만, 제대로 파리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 한국에선 나홀로 작업을 선호했지만, 파리에서는 인맥 만들기에 관심을 많이 가질 생각이다. 세계 친구들을 많이 사귀고 싶다. 영화는 어차피 함께 만드는 작업이니까 말이다. 파리는 내 인생의 제2막이 또 다른 색깔로 시작되는 공간이다. 지금까지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역량을 한반도에서 쌓아왔다면, 이제 파리에서 그 열매를 거둘 것이다. 이제 제대로 축제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