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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Étoile Bleue Créations · 푸른별창작소)

EDITOR’S NOTE
2026.03.23

신의 한 수,
광교 작업실

요즘 나의 일상은 요일별로 일정이 나뉜다. 잠시 소개를 해보자. 월, 화, 수는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부 한국어교육학과 수업을 듣는다. 물론 영상 콘텐츠로 듣는 수업이다. 사이버 강의실(LMS) 시스템에서 듣는다. 그리고 목, 금, 토, 일은 출판 작업 중에서 집필 작업을 주로 한다. 그리고 그중 하루는 쉬는 날이다. 내 마음이 가는 날, 쉰다.

잠시 또 하소연을 하자면, 한국어 문법 정말 어렵다. 다 아는 내용인데, 어렵다. 일면 모순처럼 들릴 수도 있다. 나는 직업 특성상 한국의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한국어 문법을 잘 알고 있는 축에 속한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국어를 정말 사랑했고, 아꼈고,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 사랑이 지나쳐서 예전부터 문법 공부, 띄어쓰기, 맞춤법에 강박적으로 매여서 살았고, 덕분에 직업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다. 그런데도 한국어 문법은 어렵다. 이 말이 이해가 되는가. 실상 그렇다.

한국어 문법이라는 낯선 미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주 쉬운 것도 참 어렵게 포장해 놓았다. 그게 한국인들의 교육적 시스템의 장기인가. 이 말은 비튼 말이다.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기를. 재능이 많다. 본질보다 형식에 치중하는 것은 한국인들의 재능이다. 사실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 이런 문법을 만든 것도 아니고, 후대에 한글 학자들이 만든 문법이다. 그것도 시시때때로 뜯어고치고, 이 세력, 저 세력이 잡을 때마다 정치색에 따라 이 학자, 저 학자들이 또 뜯어고친다. 용어도 참 어렵다. 그것도 한자 범벅에.

알고는 있었지만, 오늘 수업 시간에 한국어의 70%가 한자라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많다는 건 알았지만, 교수님이 말씀하신 거니까 정확하겠지. 이젠 영어 천지이고. 북한에서 온 사람들, 즉 새터민들이 말하길 영어가 범벅이라서 같은 한국어를 사용해도 처음엔 못 알아들었다고 한다. 문득 텔레비전에 나와서 말하는 사람들의 한 문장을 뜯어보니 정말 그렇다. 그럼 한글은 한자어와 영어 범벅인 말이다. 과거에는 중국의 영향으로 한자어 범벅, 그 위에 다시 미국 영향으로 영어 범벅.

한때는 나도 한글 순수주의, 한글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많이 다르다. 현실도 그걸 반영하고 있고. 사회적으로 실제 생활에서 이미 쓰이고 있는 단어를 어떻게 하겠는가. 내가 한국어교육학을 전공하고 나서 깨달은 건 한글 자체가 개념을 담을 수 없는 언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자어가 꼭 필요하고, 영어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순수 우리말만 사용하자고 이젠 주장할 수 없다. 그냥 현재 쓰고 있는 언어가 사회적 언어로 생존해 있는 언어다.

참 알고 나니, 세상 모든 게 많이 사실과 다르다. 진실은 그 너머에 있다. 언어도 이토록 얼기설기 얽혀 있는 줄 누가 알았을까. 세종대왕이 처음 훈민정음을 창제할 때 백성들이 문법에 이토록 고통받을 줄 알았을까. 모국어 문법도 이렇게 어려운데, 이걸 외국인들에게 가르친다, 참 힘든 일 같다. 한국어는 정말 어렵다. 세종대왕이 백성들에게 정말 쉽게 사용하라고 만든 말인데, 후대의 설명 방식은 오히려 그것을 어렵게 만들어 놓았다.

나는 이 어려운 한글을 정말 쉽고 외국인들의 사고 구조, 뇌 구조에 맞게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낼 계획이다. 구조를 세우는 데 재능이 있는 나는 그게 가능할 거라고 본다. 그리고 프랑스어를 전공으로 공부하면서 외국인들의 언어 구조에 관심이 많이 생겼고, 그 구조에 맞춰 한글을 설명해주면 외국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한국어교육학 수업이 프랑스어 수업만큼 재밌지 않아서 나는 한 과목 듣고 나서 다른 일을 한다. 그러고 나서 또 다른 과목을 듣는다. 월, 화, 수, 사흘 동안 매일 두 과목씩 듣는다. 그럼 이번 학기에 6과목 신청했기 때문에 다 임무를 완성하는 것이다. 오늘은 사실 수요일이다. 지난주부터 수요일에 편집자 노트를 쓴다. 발행일은 매주 월요일이지만, 한국어 수업이 끝나는 수요일에는 사실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 재미 없고 어려운 수업을 다 끝내고 난 뒤, 글을 써서 스트레스를 푼다. 잡지 감각처럼 발행하는 <편집자 노트>라서 실제로 쓰는 날과 발행일이 같을 필요는 없다. 어차피 잡지도 기자들이 미리 원고를 쓰고 준비하기 때문이다. 나도 잡지를 만들어 봤지만, 기획 기사 원고 같은 건 일찌감치 써놓는 편이다. 이 <편집자 노트>도 그런 맥락에서 쓰는 날과 발행일에 차이가 있는 건 상관이 없다.

다시 한국어 수업으로 돌아가 보자. 사실적으로 말하면 다 아는 내용이긴 하다. 그런데 어렵다. 이 모순. 내가 중고등학교 때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다 공부했던 내용이다. 그때 열심히 이해해서 다 아는 내용이지만, 왜 어려울까. 왜 재미가 없을까. 다 아는 내용이라서 재미가 없나. 그래서 지루한가. 지금 모두 기초 과목을 들어서 더 그럴지도. 단어의 이해, 기초 한국어 문법, 이런 걸 들어서 그럴지도. 하지만 열심히 듣고 있다. 다 알지만, 다시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기 위해서. 다 아는 것과 시험은 또 다른 문제일 수도 있고. 그래서 열심히 잘 챙겨 들어야 한다.

엉킨 규칙들 속에서 다시 구조를 찾다

그래도 이제 내가 한국어 문법의 허점을 파악할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하고 즐겁다. 이제 나의 지식과 식견이 그 수준에 올라선 것이. 아마 재미가 없는 이유는 ‘이건 아닌데’ 이런 생각 때문에 방어막이 형성되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수업을 들으면서 굳이 이걸 이런 식으로 용어를 붙이고 설명을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내가 볼 때, 지금 한국어 문법은 엉망진창 같다. 다 엉켜 있다. 일관적이지도 않고. 뭔가 딱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뭔가 딱 떨어지는 것을 좋아하는데, 프랑스어 문법은 변화형이 많지만 뭔가 규칙이 있다. 딱 떨어지는 규칙이 있고, 일관적이다. 그런데 한국어 문법은 여러 학자가 짜깁기한 듯이 뭔가 아귀가 맞지 않다. 일단 용어도 그렇고, 규칙도 그렇고, 자기들 마음 가는 대로 짜맞춘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고. 물론 언어가 다른 데 어떻게 같은 특색을 가지냐고 하겠지만, 내 말뜻은 그게 아니다. 내가 어릴 때는 왜 한국어 문법 기준이 만날 바뀌나 싶었다. 몇 년 가면 또 바뀌고, 또 몇 년 가면 바뀌고. 그런데 이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역사가 짧아서 기준을 계속 바꿔가며 다시 교통 정리를 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한국어 수업에 마음과 재미를 몰입하기 위해서 ‘게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잘 가르치기 위해 게임판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 전초작업을 지금 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게임판을 잘 만들기 위해서 나는 이 수업을 잘 들어야 한다. 일단 현재의 엉망인 문법을 알아야 뭘 어떻게 고치고,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하는지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철학과를 선택한 시간이 남긴 것

그런데 이건 또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내가 국문학과에 안 간 것은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오늘 들었다. 매번 난 살아오면서 돈이 안 되고 어려운 길을 선택한다. 사실 학교에 다닐 때 다들 내가 국문학과에 갈 줄 알았다고 한다. 날 조금 아는 친구들은. 왜냐하면 내가 교외 글짓기 대회에 나가서도 상도 타고, 글도 잘 쓴다는 소문도 있고, 그래서 국문학과에 갈 줄 알았다고. 하지만 난 철학과에 가고 싶었고, 철학과에 갔다.

살아오면서 한편으로는 국문학과에 갔으면 사는 게 좀 더 쉽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밥벌이하기엔 국문학과가 더 낫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확실하게 든 생각은 국문학과에 갔으면 참 재미없었겠다는 것. 철학과에 가길 정말 잘했다는 것. 국문학과에 갔으면 이 재미 없는 문법을 억지로 또 배우고 공부해야 했겠지. 그때는 또 이게 잘못된 건지도 모르고 그냥 배웠을 것 아닌가. 철학과를 졸업하고 세상을 구조적으로 통찰하는 안목을 갈고 닦았으니, 이게 잘못된 것이 눈에 보이지 않나. 그래, 그동안 참 잘 선택해 왔다.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파리행도 준비할 수 있는 거다.

광교 작업실, 뜻밖에 발견한 영화의 입구

내가 참 잘 선택한 건 또 하나 있다. 바로 광교 작업실. 여기서도 살면 살수록 그 선택이 ‘신의 한 수’라는 생각이 든다. 늘 말했듯이, 바로 건널목만 건너면 광교호수공원이 있고, 백화점과 아울렛이 걸어서 오분 거리에 있다. 요즘 나에게 또 광교 작업실의 선택이 탁월한 판단력이었다는 깨달음이 든 것은 바로 독립영화관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광교 작업실에 이사 오자마자 방송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3학년에 편입했기 때문에, 2년 동안 알파벳부터 프랑스어 공부와 수업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어서 독립영화관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졸업한 올해부터는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극장에도 간다. 길 건너 갤러리아백화점의 CGV를 갔는데, 대형화면과 쾌적한 시설이 참 좋다. 그런데 어쩌다가 웹서핑을 통해서 롯데아울렛 안에 독립영화관이 따로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여기 이사 오고 3년만에 안 사실이다. 경기도에서 지원을 해줘서 영화를 5천 원에 볼 수 있다는 사실! 아, 이 놀라운 혜택을 이제야 알다니! 그만큼 내 지난 2년이 참 바쁘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다.

파리로 향하기 전, 다시 시작된 씨네필의 시간

마치 프랑스의 문화 정책을 닮은 느낌이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처음으로 독립영화관을 방문했다. 딱 광화문의 씨네큐브가 생각나는 규모였다. 거기 작은 영화관 크기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올리베르 라세 감독의 <시라트(Sirât)>를 보고 왔다. 이 영화는 2025년 스페인·프랑스 합작 영화로, 제78회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서 심사위원상 공동수상작이다. 또 이 영화는 설명으로 관객을 설득하지 않는다. 대신 사막, 소음, 리듬, 불안 같은 감각을 끝까지 밀어붙이며 인간을 문명 바깥의 한계 상황으로 몰아넣는다. 그래서 LA 비평가협회상에서 음악상을, 팜스프링스국제영화제에서 국제비평가협회 장편영화상을 받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객의 감각과 신경을 직접 시험하는 영화다.

만일 내가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느낌을 못 받았을 것이다. 나는 대형 화면은 아니지만, 극장에서 영화를 보니까 특정 장면에서 몸이 움찔할 만큼 놀랐고 정서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다. 몰입해서 볼 수 있어서 그럴 거다. 음향도 극장이라 달라서 이 영화의 특징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었다.

내가 몇십 년 전에 서울로 올라와서 광화문에서 출판사에 다닐 때 매일 퇴근하고 가는 곳이 씨네큐브였다. 그 당시가 떠오르게 하는 영화관이었다. 물론 씨네큐브만큼 프랑스 영화를 자주 상영하진 않지만, 그래도 좋은 영화를 많이 올려주는 곳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국제 영화제에서 수상한 이 귀한 작품을 오히려 5천 원에 저렴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오히려 명작이 가격이 더 낮다는 게 참 한편으론 씁쓸한 일이다. 나에겐 정말 좋은 일이긴 하지만. 이제 틈만 나면 이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볼 생각이다.

광교에서 누리는 뜻밖의 문화적 호사

SK브로드밴드에는 이 영화가 신작으로 11,000원에 올라와 있다. 집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저렴하게 극장에서 이 명작을 영접할 수 있다는 건 대박인 사건이다. 정말 광교에서 사는 건 파리에서 사는 느낌 그대로다. 경기도에서 이렇게 지원을 해주는 게 정말 잘하는 정책이다. 나는 빨리 걸으면 3분만에 롯데아울렛 안의 롯데시네마에 갈 수 있다. 느긋하게 걸어도 5분만에 갈 수 있다. 그래서 유럽 영화 마니아인 내게 얼마나 단비 같은 소식이냐.

사실 갤러리아 백화점의 CGV에서도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왕과 사는 남자>를 보고 왔다. 솔직히 말하면 정말 이런 영화가 천만 영화가 되는 한국 영화 생태계가 참 안타까울 뿐이다. 너무 평범하고 단조로운 영화인데, 이게 왜 이렇게 뜨는지 참 볼 게 없는 한국 영화판이다 싶다. 하긴 뭐 <7번방의 선물> 같은 영화도 그때 굉장히 화제가 되고 관객이 많이 들었지. 내가 한국에서 영화를 안 만드는 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늘 ‘우리끼리’ 하는 것에 몰입해 있다. 그 안에서 뭐가 제대로 되어 있고, 안 되어 있는지 기준도 없고, 평가할 사람도 없고. 다들 좋다고 하면 그게 좋다고 말해야 되는 줄 안다. 내가 사실 이번에 갤러리아 백화점 안의 CGV보다 시설이 상대적으로 안 좋은 롯데시네마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지금 CGV에 다 이 <왕과 사는 남자>만 걸려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좀 보고 싶어도 볼 게 없다. 모든 영화관에 그 영화만 걸려 있다. 정말 돌아버릴 정도다. 어떻게 이렇게 획일적인 사회에 살고 있나. 그래서 롯데시네마를 기웃거렸더니, 이런 독립영화관 제도가 시행되고 있던 거다. 정말 우리나라의 문화적 획일주의,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런 나라에서 영화를 안 배우고 파리 가서 영화 공부를 하게 되어 다행이다. 내가 살아오면서 왜 바로 영화학과에 가지 않았을까, 후회를 한 적도 있었는데, 안 가길 잘했다.

지금 이 선택이 훨씬 나은 듯. 철학을 먼저 기초로 닦고 나서 다른 학문을 하겠다는 나의 전략이 잘 맞아떨어진 듯하다. 파리에 가서 난 꼭 영화를 공부할 생각이다. 영화평론가와 영화감독의 길을 가겠다. 남보다 오래 살면 될 일이다. 그런데 지나온 시간들, 돌아, 돌아온 시간들이 의미가 있다. 나의 출판 경력, 작가로서의 훈련, 그리고 철학적 통찰력, 세상을 보는 시각, 모든 것들이 퇴적층처럼 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동안 봐왔던 수 천편의 영화들, 그 모든 것을 준비한 시간이었다. 사실 영화를 보는 건 큰 저축이다. 내가 영화학을 전공하게 된다면, 지금까지 봐온 영화들은 이미 충분한 자료이자 공부가 되어 있을 것이다. 그건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그동안 충분히 해왔기 때문에 영화학을 전공하면 스폰지처럼 그 이론들을 빨아들일 수 있을 거다.

어쨌든 광교 작업실의 선택은 정말 ‘신의 한 수’이다. 나는 광화문 시절로 돌아간 듯이, 씨네큐브에 가던 그 가슴 뛰는 시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제 나는 독립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극장에서 맘껏 봐야겠다.

그런데 안 좋은 점도 있었다. 하필 첫날, 어떤 청년이 그날 뭘 잘못 먹었는지 삶은 달걀이 썩는 냄새를 풍기면서 방귀를 뀐 것이다. 그 순간, 토할 것 같았다. 숨을 못 쉴 뻔했다. 비위가 약한 나는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순간, 영화관에 온 걸 후회했지만, 영화가 너무 훌륭해서 참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청년들이 안타까웠다. 먹는 게 얼마나 부실했으면 장이 그 정도로 안 좋아졌을까. 화학조미료가 잔뜩 섞인 음식을 마구 섭취하다 보니, 대장 상태가 그토록 안 좋지. 대한민국 청춘의 건강이 참으로 안타까운 순간이었다. 한편, 독립영화관이라서 혼자 보러 오는 청춘이 많았다. 그래서 영화관 분위기도 씨네필 느낌으로 가득했지만, 앞으로 영화관에 가서 독가스 수준의 공격은 안 받았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다.

빛의 공간에서 다시 선명해진 방향

광교 작업실, 아, 그러고 보니, ‘광화문’과 같이 빛의 공간이군. 이곳에서 파리행을 준비하는 나의 선택은 정말 잘한 결정이다. 파리 같은 느낌이 정말 많은 곳이다. 문화적 공간도 그렇고. 이제 독립영화관도 발견해서 더 기쁜 광교의 나날들이다. 영화광인 나에게, 또 앞으로 영화를 전공할 나에게 독립영화관은 축복과도 같다. 아무리 대형 스크린이 아니더라도 50인치 TV보다는 낫지. 그리고 씨네큐브 딱 그 느낌이라 추억도 돋고, 참 좋다. 영화관에서 역시 영화를 봐야 한다. 하늘과 땅 차이다. 내가 집에 와서 이 영화의 예고편을 봤는데, 아, 그 느낌이 아니더라. 아마 집에서 봤으면 절대로 이 영화에서 받았던 같은 느낌을 못 받았을 것이다. 앞으로 열심히 롯데시네마 앱을 들여다보면서 좋은 영화가 오는지 체크를 잘해봐야겠다. 우리집 안방처럼 영화관을 들락거릴 수 있게 되어 기쁘다. 영화광에게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