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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Étoile Bleue Créations · 푸른별창작소)

EDITOR’S NOTE · Noblewithbooks
2026.03.09

끝과 시작

이번 주에는 방송대 졸업장을 찾아왔다. 진정한 마무리다. 그리고 학과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제 불문학 학사 학위를 가진 게 맞냐고. 그냥 확실히 해두고 싶었다. 내가 방송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에서 얻은 것은 많다. 프랑스어 기본 실력을 쌓았고, 독해도 중급 정도에 도달했고, 프랑스어 듣기도 어떻게 공부하는지 알게 되었다. 게다가 코로나 19시기에 쌓였던 모든 불균형한 시스템과 몸과 마음의 리듬을 되찾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했다. 방송대 편입학 2년 동안 나는 내 모든 불균형을 균형점으로 돌려놓았다. 참 고마운 시간이었다. 나는 국립방송통신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에서 보낸 2년 동안 확실한 치유를 끝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불문학 학사 학위를 원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방송통신대학교 학위가 현실적으로 큰 의미가 없을지라도 프랑스에 가면 이야기는 또 달라지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는 내가 불문학 학사 학위를 가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프랑스를 얼마나 사랑하고 프랑스어에 진심이며, 프랑스에 공부하러 오는 목적이 얼마나 뚜렷한지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돌다리도 두들겨 본다는 심정으로 마지막의 절차를 치렀다.

“제가 주변에 불문학 학사 학위를 가졌다고 이제 말해도 될까요?”

그러자 그건 당연한 일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난 안심했다. 나의 완벽주의적이고, 늘 확인하는 심리가 이번에도 발휘를 한 셈이다. 사실 누구보다도 난 이 사실을 확인하는 게 중요했다. 왜냐하면 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이 불문학 학사 학위라는 첫 번째 퍼즐이 어긋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한 축이 무너지면 몹시 흔들리는 스타일이라, 하나씩 완벽하게 퍼즐을 완성해가는 게 중요하다.

이제 정말 완전한 ‘끝’이다. 이 전화 한 통으로 방송대와는 ‘아듀!’이다. 내가 굉장히 성공해서 방송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출신이라고 홍보를 해주는 일이 생기지 않는 한, 내가 다시 방송대와 업무가 있을 일은 없어졌다.

새로운 시스템, 예상보다 거친 시작

그리고 ‘시작’, 이번 한 주는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수업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방송대와는 교수님과 입학식, 학교 분위기도 달랐지만, 시스템도 완전히 다르다. 정신을 잘 못 차릴 정도다. 일단 동영상 수업을 듣는 부분이 학점에 10%밖에 포함되지 않아서 전략적으로 학점을 관리해야 한다. 방송대는 원래 10%였는데, 우리 때는 30%로 늘어난 상태라서 좀 마음이 푸근했다. 그리고 수업도 보다 학구적이라고 할까. 내용이 추론이 가능한 그런 흐름이고 구성이었다. 그래서 집중하기가 좋았다.

그런데 사이버외대 수업은 일단 수강 신청 때부터 피가 튀겼다. 난 그냥 편안한 마음으로 첫 학기 12학점을 수강해 놓고 있었는데, 입학식날 학과 오리엔테이션 때 들은 정보로 수강 정정 신청이 시작되는 날, 딱 10시부터 컴퓨터 앞에 앉았는데 멘붕에 빠졌다. 반드시 들어야 할 과목들이 다 수강 신청 마감이 벌써 끝나 있었다. 부랴부랴 남아 있는 과목으로 겨우 다 18학점으로 채웠는데, 변경하고 나서도 웬지 그 불안감과 멘붕 상태에서 오래도록 벗어나질 못했다. 방송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마감’이었다. 방송대는 수강 신청에 제한이 없다.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그런데 현실적인 이익이 걸려 있는 자격증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어교육학 전공에서는 수강 신청 정정의 날, 그것도 딱 10시부터 시작인데도 그 시간에 남아 있는 과목이 몇 개 안 되었다. 아마 조금만 늦었어도 나는 내 계획대로 수강 신청을 못했을 것이다.

‘컷오프’라는 현실

정말 피 튀기는 현장이었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걸 이날 깨달았다. 처음 편입학 때부터 정원이라는 게 있어서 컷오프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도 설마 했는데, 정말 한눈을 팔았다간 큰일날 일이다. 그냥 모국어라서 편안하겠지, 라는 마음에 낭창하게 있었는데, 웬걸! 이제는 프랑스어 수업 시간이 너무 그리울 정도였다. 프랑스어가 현재 내게는 더 가깝고, 친근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아무래도 교직 과목은 좀 딱딱하고 개념 위주의 수업이고, 예상했던 대로 암기가 많았다. 나는 청소년 시기로 다시 돌아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중고등학교 때 내가 집중하지 못했던 그 딱딱한 수업이 떠올랐고, 난 결코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단편적인 암기 위주로 하는 수업에서의 공부는 좋아하지 않는구나, 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프랑스어라는 외국어를 진심으로 배워본 학습자로서 이번 한국어교육학 수업들에서 배우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이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거다. 그 점이 신의 한수였다. 만일 내가 배우는 사람의 입장이 철저하게 되어보지 않은 채, 한국어교육 수업을 들었다면 더 힘들었을 것 같다. 그냥 이론으로서만 받아들인다면 훨씬 딱딱하고 나로서는 스트레스가 쌓이는 수업이다.

또 한편으로는 내가 프랑스어를 정말 사랑하는구나, 하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원래 나는 끈기 있게 앉아서 공부하는 것에 그렇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인데, 프랑스어 공부에 그토록 진심이었다는 것에 다시 한번 깜짝 놀랐다. 나는 나이가 들어 공부에 재미를 붙인 줄 알았다. 혹은 파리에서 너무 살고 싶어서 열심히 프랑스어를 한 줄 알았다. 그러나 한국어교원자격증도 파리에서 너무 살고 싶기에 준비하는 건데, 열정은 그때만큼은 아닌 걸 보니 내가 바뀐 건 하나도 없었다. 난 청소년 시기, 즉 중고등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단편적인 암기 위주의 한국식 교육 시스템과는 별로 맞지 않는듯 하다.

한국어교육학, 첫 인상

솔직히 말하면, 한국어교육학 수업이 재미있지 않다. 하지만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와는 다른 차원이다. 도움은 많이 될 것 같다. 그리고 아직 처음 시작 부분이라, 좀 적응이 안 되어서 그럴 수도 있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에 도움이 아주 많이 되는 건 알긴 알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정체되고 고정화되어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어를 좀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문득 수업을 듣다 보니,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한글을 사용한 게 불과 100년도 제대로 안 되었다는 것! 무슨 말인고 하니, 수업을 듣다가 알았는데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주시경 선생이 나중에 ‘한글’이라고 붙인 게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의 형태다. 이걸 예전에 국어 시간에 공부할 때는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게 그거지 뭐, 이런 생각이었다. 수업 시간에서 설명한 대로 훈민정음 창제 이후에도 주도적으로 한글을 사용한 적은 없고, 한자 중심의 사회였다.

한글을 다시 바라보다

이제 한글을 외국인들에게 가르칠 입장에서 전공으로 삼고 수업을 듣다 보니, 정말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쳤다. 또한 내가 불문학 전공을 마치고, 이 수업을 들으니 자연스럽게 프랑스어와 비교가 되었다. 아, 우리가 실제로 한글을 문자로 사용한 역사는 불과 100년도 안 된 거다. 이 놀라운 사실! 이게 무슨 말인지 실감이 잘 안 될 것이다. 자, 보자. 주시경 선생이 ‘한글’을 정립했지만,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거쳤다. 그 기간에는 한글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온나라가 정신이 없었고, 재건작업에 몰두했다. 그럼 실제로 한글을 제대로 사용한 기간은 100년이 아주 못 된다. 이런 일이 있나!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었다.

지금 우리가 완전체로 사용하는 한글, 이 역사가 가엾다.

한국 사람으로서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어떤 막연한 슬픔이 밀려왔다. 모든 것에, 한국의 역사에, 한민족의 역사에, 한글에, 모든 게 슬퍼졌다.

그리고 수업을 들으면서 또 알게 되었는데, 아직 첫주차였지만 한글 이론과 사상의 학설도 정치적, 현실적 입지에 따라 그 주장자의 이론이 중심으로 세워진다는 사실이었다. 분위기는 다 파악이 되었다. 한국의 여러 정치적, 사회적 상황이 한글이라는 학문적 토대에도 그대로 그 구조가 적용이 된 셈이었다. 그래서 어쩌면 더 재미가 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한글의 사상과 이론의 중심이 그런 흐름에 따라 세워지고, 그걸 내가 공부해야 한다는 게 심리적 장애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또 6과목의 수업을 첫주차에 들으면서 이론 부분은 역시 미국이나 외국의 언어 이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한글이라는 언어도 역시 언어학 개론 등 외국학자들이 세워 놓은 기본 바탕에 그 구조를 두고 있다는 것. 언어학을 배우면 역시 그것부터 세우고 한글의 특성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러니까 보아하니, 거의 절반 이상을 외국 언어 이론을 배우는 셈이다. 그 부분은 내가 어차피 이제 언어에 관심이 많다 보니, 반가운 일이긴 했다. 그리고 한국의 어떤 특정 정치 세력이나 사상가에 의해 휘둘리는 내용보다 세계에서 언어학의 일반적인 개론이기 때문에 또 심리적 저항감도 없었다.

도움은 많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재미는 없다. 이것이 나의 첫주차 수업의 소감이다. 그리고 자격증이 걸린 수업이다 보니, 정말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과제를 빈틈없이 잘 준비해야 한다. 내가 중고등학교 때 정말 싫어하던 그런 시스템으로 가야 해서 좀 힘들기는 할 것 같다. 하지만 이번은 딱 3학기만 정신 차리고 하면 모든 게 지나간다. 마지막 학기는 교육 실습 과목을 마친 상태이고, 지금 예상으로는 파리에 가 있는 시기고, 또 3학기 동안 익숙해져서 마지막 학기는 쉬울 것이다. 딱 3학기만 좀 최선을 다하도록 해야겠다.

중고등학교 때의 그 답답함이 전해오는 한주였다. 나는 변한 게 없지만, 이번 3학기는 그때와는 다르다. 이번에는 마지막 기회이고, 인생에서 그 시기에 실수했다면 이제는 다시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잘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그리고 중고등학교처럼 6년이 아니고, 3학기, 일 년 반이다. 그리고 학교에 나가는 시스템도 아니고 수업만 들으면 되니까 그때와는 다르다. 또 내가 대학교 때 이미 교직 과목을 듣고 이수하고 교사자격증도 따지 않았나. 오히려 그때보다는 더 쉬울 테니, 정말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했다. 교직 과목은 이론적 수업이라서 나와는 잘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안 맞는 것도 이제 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딱 한 번, 이 과정만 거치면 나는 한국 교육 시스템에서 졸업이다.

솔직히 말해서, 두루두루 책들을 읽고 깊이 그 전공을 파고들어서 논문을 준비하는 수업 방식이 내겐 더 맞을 것 같다. 그건 근데 파리 가서 대학원에 들어가서 하면 되고, 이번이 딱 마지막이다. 한 번만 더 힘을 내면 좋겠다. 너무 수업에 매몰되지 말고, 내가 목표로 세운 것만 생각하고 가자. 전략적으로 공부하고 움직이는 것보다 나는 정도를 걸으면서 깊이, 광대하게 공부를 하는 게 좋다. 하지만 자격증을 따는 일은 좀 다른 구조라서 난 마음이 부담스럽긴 해도 열심히 할 생각이다. 상대평가라서 긴장되는 건 분명하다.

한편으로는 진도가 더 나가면 이론과 사상적 부분이 많이 나와서 더 재밌어질 것 같기도 하다. 지금은 좀 단편적인 내용 같고 암기가 많아서 낯설어서 그럴 수 있고. 근데 프랑스어가 더 만만하게 지금은 느껴진다. 그만큼 프랑스어를 열심히 해왔고, 프랑스어가 내 취향에 맞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프랑스어를 현재 수준급으로 잘한다는 말이 아니라, 그냥 프랑스어는 공부할 때 너무 재밌다는 것이다. 그런데 모국어가 오히려 더 부담스럽고 어렵게 느껴진다. 물론 모국어가 배경지식도 훨씬 많지만, 교직 과목의 특성상 너무 딱딱하다는 것. 내가 나중에 이 모든 지식을 다 쌓고,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취득하고 나서 외국인을 가르친다면 좀 더 다른 구조로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한국어 교사가 배워야 할 구조와 외국인 학생이 배워야 할 구조는 엄연히 다르다.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나는 외국인 학생들에게 아주 찰떡같이 전해질 창의적 한국어 교재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한다.

언어와 나의 취향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 누구보다 한글을 사랑했다. 그래서 한때는 영어도 제국주의의 도구라서 절대로 공부를 안 해야겠다는 치기를 부린 적이 있었다. 중학교 1학년 1학기 때 영어 점수는 그래서 엉망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현실을 깨닫고 다시 정상적으로 공부를 했지만, 영어에 애정을 느낄 수는 없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외국어 공부에 그다지 능동적으로 대처를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 문화로서 접근하게 된 프랑스어는 우리나라와 아무런 악연이 없던 탓에 나는 쉽게 빠져들었고, 이제는 그로 인해서 외국어에 대한 마음의 벽을 다 허물어뜨렸다. 그러나 아직도 일본어에 대해서는 그리 애정을 못 느끼겠고, 중국어도 썩 마음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마음은 그저 유럽에서 사용하는 외국어에 더 간다. 왜냐하면 내가 어릴 적 읽었던 동화와 청소년기에 접했던 외국 문학과 사상이 주로 유럽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때 생긴 동경심이 아마 심리 중에 무의식적으로 남은 게 아닌가 싶다.

어쨌든 이제 그 덕분으로 나는 한글을 모국어로서만 인식하지 않게 되었다. 한글은 이제 나에게 세계의 많은 언어 중 하나로 보인다. 물론 내가 한국 사람이라서 완전히 심리적 균형감을 가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할 것이고, 언어의 하나로서 통찰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한글에서 소위 ‘국뽕’을 빼고, 객관적 시선으로 바라볼 때 더 진정한 한글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고, 또 외국인들에게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끝과 시작의 경계에서

끝과 시작, 나는 딱 그 지점에 섰다. 마음이 가볍지는 않고, 이제 모국어라서 낭창하게 대했던 나의 마음가짐도 제법 긴장한 상태다. 방송대 프문과 졸업에 이어서, 한국어교원자격증의 이 마지막 공식적인 체제 안의 퍼즐을 무사히 제시간에 다 맞출 것이다. 또 다른 퍼즐인 프랑스어 능력 시험 즉 DELF B1, 더 나아가 B2 통과는 그리 걱정이 되지 않는다. 그건 정해진 시스템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준비해서 치면 되는 거라서 아마 그럴 거다. 시간과 틀에 구애를 안 받아서. 그리고 프랑스어 공부가 좋고 계속하고 있기에 결국 제때 패스할 거라는 사실을 알아서 별로 걱정이 안 되나 보다.

파리로 가기까지 넘어야 할 허들이 많지만, 또 그래서 더 멋진 일이 아닌가. 아무나 쉽게 준비를 못 하는 일이라서 더 값진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한국어교원자격증 하나다. 입학도 했고, 필수과목도 듣고 있어서 열심히만 하면 되는데, 여튼 나의 첫인상은 그렇다는 것이다. 끝인상은 또 어떨지 나중에 2년 후쯤, 혹은 1년 후쯤 알게 될 것이다.

끝과 시작, 파리에 처음 발을 딛고 나면 난 첫 마디로 이렇게 외칠지도 모르겠다.

“보고 싶다!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다!!”

너만을 생각했다! 이제야 마음 놓고 말한다. “네가 참 많이 그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