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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Étoile Bleue Créations · 푸른별창작소)

EDITOR’S NOTE
2026.03.02

광교에서 파리처럼

요즘 나의 근황을 말하자면, 평온 속에서 차근차근 파리행을 준비하고 있다.

방송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학위 수여식도 끝나서 이제 연휴가 끝나면 학위증을 찾으러 갈 것이다. 미금역으로 가서 경기지역대학 사무실을 방문하면 된다고 한다. 그리고 2월 28일에는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신편입생 입학식이 있었다. 나는 사실 중학교 이후로는 졸업식에 참여해 본 적이 없고, 입학식에도 아마 안 갔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설레면서 입학식에 다녀왔다. 그만큼 파리행을 향한 마지막 정식 절차를 위해서 내가 공을 많이 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분위기는 방송대와는 사뭇 달랐다. 방송대 입학식에는 물론 안 갔지만, 교수님들과 학우들, 학교 느낌이 정반대라고 할까. 방송대는 교수님들이 학구적인 느낌이 많이 났는데, 여기는 좀 더 실용적인 느낌이 났다. 아무래도 자격증이라든가, 사회로 한 발자국 더 내딛기 위한 과업을 수행하도록 푸쉬업을 많이 도와주는 분위기였다.

마지막 절차 위에 선 감정

국민의례를 하는데,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면서 이상하게 그런 도식적인 절차에도 감동이 올라왔다. 아무래도 나에겐 이 마지막 절차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될 거라서 그런가 보다. 여기까지 무사히 잘 도착했다는 그런 안도와 뿌듯함이 교차했나 보다. 이 사이버 외대의 한국어교육학과만 수업 일정을 잘 따라가면 내 마지막 퍼즐인 한국어 교원자격증을 얻을 수 있어서, 그 궤도 위에 안착했다는 점에서 울컥했나 보다. 그리고 오랜만에 국민의례를 하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며, 입학식의 분위기를 띄우는 장엄하면서도 진취적인 행진곡을 들으니까 이상하게 마음이 울렁거렸다. 마치 승리를 확신하면서 거대한 전쟁을 치르러 가는 출정식에 선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학우들의 전체적인 연령대는 방송대보다 훨씬 낮았다. 방송대에는 거의 노년층도 자주 보이는데, 여긴 20대가 주류를 이루고, 30대, 40대, 50대는 소수였다. 그리고 외국어대학이라 그런지 외국 학생들이 많았고, 한국어학과에도 한국어를 전공해서 통번역하려는 외국 학생들이 많았다. 정말 방송대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나는 이날 교수님들의 성향도 좀 파악하고, 중요한 정보를 들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입학식과 신편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했는데, 소기의 목적을 모두 충족한 셈이다. 특히 내가 알아낸 아주 중요한 사실이 있다. 교육실습을 반드시 마지막 학기에 받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난 교생실습처럼 마지막 학기에 이수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필수 과목을 다 수강하고 나야 교육 실습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정말 중요한 정보였다.

그럼 난 3학년에 편입했기 때문에 총 4학기에 마치려고 계획을 세웠는데, 1학기와 2학기 때 필수 과목을 다 듣고 나서 3학기 때 교육실습을 받으면 한국에서 마무리하고 갈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학기는 파리에 가서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으면 된다. 처음에는 4학기에 들어야 하는 줄 알고 파리에 가서 교육실습을 받으려고 했다. 하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고 보니, 과연 현지에서 수업을 내가 컨택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생겼다. 한국에서 그 교육실습을 하면 학교에서 정해주는 곳으로 가서 실습을 하면 된다. 그럼 간단하게 끝나는데, 파리에서 하게 되면 내가 컨택해야 하고, 상황이 매우 복잡하다. 그곳 사정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과연 내가 가자마자 그런 연출을 잘해낼지 확실하지가 않다.

그래서 파리행을 3학기 마치고 가야 하지 않나, 지금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그럼 아무것도 걸리는 게 없기 때문이다. 아직 시간이 좀 더 있기에 계속 고려를 해봐야겠는데, 마음은 벌써 안전한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광교에서의 하루 루틴

어떻게 보면, 요즘 내 생활은 사실 파리에서의 삶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나의 일상을 잠시 되짚어보자면 이렇다. 아침에 출판 발주 업무를 간단하게 하고 나서 오전 10시 반쯤 식사를 하러 간다. 요즘 내가 매일 가는 그 식당으로 말이다. 집밥의 느낌으로 아주 합리적인 가격대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11시 반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호수공원을 한 바퀴 산책하고 온다. 그리고 미세먼지가 없고 그리 춥지 않은 날에는 테이블이 딸린 벤치에 앉아서 시원스쿨 델프 B1 교재 한 강의를 풀고 온다. 요즘 독해부터 하는데 이상하게 공원에서 공부하면 집중이 더 잘된다. 대략 설명과 단어 풀이까지 합하면 8페이지 되나. 서너장 되는 그 독해 한 문제를 풀고 오면 기분이 개운해진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간식을 먹고 좀 쉬다가 챗지피티와 르몽드지의 메인 기사 한 단락을 공부한다. 곧 사이버외대 개강이니까 오후에는 수업도 들어야 할 것이다. 격일로 논술 교재 집필도 해야 하고, 매일이 바쁘다. 그리고 저녁에는 TV 예능을 보거나 프랑스 영화나 일반 영화를 본다. 좀 더 일찍 일어나면 아침에 어린왕자 원서를 한두 페이지 읽는다. 그러나 늦게 일어나면 건너뛴다. 그리고 주말에는 TV5MONDE를 시간 날 때 보고, 설거지나 집안일을 할 때 라디오 프랑스를 듣는다. 이렇게 프랑스어 공부는 시간이 되는 대로 감각만 안 잃어버리게 매일 해나가고 있다.

시간을 재설계하다

사실 지금도 델프(DELF) B1 정도의 실력은 된 것 같지만, 시험 치는 비용이 수십 만원이고 급하지 않아서 아직 시험은 좀 있다가 칠 예정이다. 내가 목표로 하는 건 최소한 B2이기 때문이다. 그냥 쭉 이어서 B2까지 공부해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사이버외대 수업이 익숙해지면 이제 동네 불어학원 델프 준비반에 등록해서 두 달 정도만 마무리하고 B1 시험을 치를 생각이다. B1만 치고 말 것 같으면 굳이 학원에 안 가도 될 것 같은데, B2와의 연속성을 위해 내가 원래부터 찍어 놓았던 그 학원에 등록하려고 한다.

B1을 마무리하고 나서 계속 B2를 위해 그 학원에 다닐 생각이다. 파리에 가는 게 좀 일정이 미뤄지면 이 학원에 다니면서 B2까지 합격하고 갈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파리 현지 어학원에서의 일정을 1년에서 6개월로 조정할 수 있게 된다. 생각해 보니 내 기질상 한 곳을 학교도 아닌데 일 년이나 줄기차게 잘 다닐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델프 B2 실력이면 6개월 정도 현지 어학원을 다녀도 현지 적응은 충분할 것 같다.

그러면 파리에 가서 6개월만 지나도 바로 세종어학당이나 다른 곳에서 한국어 강사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게 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일정이 달라진 건 없다. 교육실습을 위해 한국에서 좀 늦게 파리로 떠나지만, 실질적으로 파리 직업 현장에 투입되는 시기는 같아지도록 설계되기 때문이다. 전체 그림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덕분에 교육실습을 안전하게 마치고 갈 수 있고, 현지 어학원 일정도 6개월 단축할 수 있고, 어학원비도 절반 정도 줄일 수 있다.

광교에서 만나는 파리의 상징

요즘 내 일상은 평온하다. 이 광교라는 도시가 파리를 모델로 설계되었기 때문에 사실 파리 느낌도 좀 난다. 예를 들면, 파리의 콩코르드 광장 한가운데 서 있는 룩소르 오벨리스크가 광교에도 있다. 물론 모형이지만. 이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3세기, 이집트 룩소르 신전 앞에 세워졌던 석주로, 19세기 초 이집트 총독 무함마드 알리가 프랑스에 외교적 우호의 표시로 기증한 것이다. 한 쌍 중 한 기만이 옮겨져 1836년에 이 광장에 세워졌다. 혁명과 단두대의 기억이 남아 있는 파리의 중심에, 3천 년 전 고대 문명의 돌기둥이 수직으로 꽂혀 있다는 사실은 상징적이다. 시간은 겹치고, 역사는 교차한다.

그 오벨리스크의 양옆에는 금빛 조각과 물줄기가 어우러진 두 개의 대형 분수가 원형을 이루고 있다. 흔히 돌고래 분수라고 불리는 ‘바다의 분수(La Fontaine des Mers)’와 ‘강의 분수(La Fontaine des Fleuves)’다. 청동 돌고래와 해신, 물의 여신 형상이 물을 뿜어내며, 오벨리스크의 직선과 분수의 곡선이 극적인 대비를 만든다. 그런데 광교에도 바로 그 오벨리스크와 돌고래 분수의 모형품이 있다. 나에겐 우연인지, 필연인지 광교는 파리를 모델로 설계되었다. 그래서 광교의 호수공원에서 산책하거나 거리를 걸으면 파리 분위기를 느끼는 게 우연은 아니다.

나는 아마 파리에 가서도 광교에서의 일상을 그대로 이어갈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판 업무를 좀 보다가 밖으로 나가 동네 카페에서 식사를 해결하고 파리 골목을 산책할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쓰고, 프랑스어 공부도 하고, 또 알바 자리가 구해지면 한국어도 가르치고. 대학원 석사 과정도 준비해서 들어가서 수업도 듣고. 요즘의 일상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사람이 학생으로 계속 산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이다. 그것도 대학교 이상의 학생 신분 말이다. 나는 원래부터 계속 학생으로 살고 싶었다. 대학원을 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하다 보니, 돌고 돌아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요즘은 계속 대학생으로 살고 있다. 방송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를 졸업하고 이제 다시 사이버외대 한국어교육학과 학생이니 말이다. 파리에 가서도 나는 한편으로는 한국어 강사로 활동할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영화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는 대학원생으로 살아갈 것이다.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출판인이라는 고정 포지션은 같지만 말이다.

나는 계속 학생으로 살고 싶다

요즘 나의 일상은 꽤 만족스럽다. 죽을 때까지 학생으로 살아가고 싶다. 물론 파리에서 석사를 마치고 박사까지 마칠 예정인데, 그다음은 또 다른 형태의 학생으로 살 수 있을 것이다. 배움은 끝이 없다. 나는 프랑스어를 달프(DALF) C1 단계까지 가게 되면 그다음에는 스페인어도 배워보고 싶고, 이탈리아어도 배워보고 싶고, 독일어, 영어까지 공부를 해볼 생각이다. 물론 프랑스어만큼 깊이 공부하지는 않겠지만, 각 나라의 주요 도시에 가서 석달이나 반 년 정도 어학 연수를 하면서 그 나라의 문화와 언어에 취해보고 싶다.

언어로 세계를 통과하다

예를 들어 독일은 라이프치히. 구 동독 지역이지만 비교적 생활비가 낮고, 출판·음악 전통과 오래된 대학을 중심으로 학술적 분위기가 살아 있는 도시다. 이탈리아는 로마. 로마제국의 유적과 가톨릭의 중심이 겹쳐 있는 공간에서, 역사와 현재가 동시에 숨 쉬는 공간이다. 스페인은 마드리드.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이자, 스페인어의 표준이 살아 움직이는 수도. 모두 다 최소 한 달에 2백만 원 안팎이면 생활할 수 있는 도시다. 영어는 파리에서 내가 확실하게 자리를 잡고 난 후에 뉴욕살이를 하면서 배우고 싶다. 아무래도 뉴욕은 물가가 비싸서 가장 나중으로 미뤄두었다. 일이 잘되어서 내가 파리에 집을 사게 되면 뉴욕과 파리의 집 교환으로 일년살이도 가능할 것이다. 그럼 미국 전국 투어도 생각하고 있다.

프랑스어만큼은 공부할 필요 없이 그냥 생활할 정도의 회화만 익힐 생각이다. 꼭 어학연수 학원에 다니는 게 아니라, 온라인으로 공부하면서 각 나라의 도시에서 여행하며 살아가는 그런 어학연수인 셈이다. 파리에 자리를 잡으면 너무 쉽게 가능한 일이다. 파리의 휴가 시즌은 학교일 경우 석 달도 가능해서 그 기간을 활용해 다른 도시에서 사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광교에서, 이미 파리처럼

광교에서 파리를 갈 때까지 나는 이곳에서도 파리처럼 느끼며 살 것이다. 그럼 준비하는 시간도 파리지앙의 감성을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의 모든 일상이 파리지앙의 감성과 여유를 닮아있다. 광교의 거리와 호수공원이 파리를 닮아있듯이 나의 감성도 파리의 일상을 머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