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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Étoile Bleue Créations · 푸른별창작소)

EDITOR’S NOTE
2026.02.09

진정한 ‘자유’란

요즘 나는 ‘진정한 자유’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요즘 나는 ‘진정한 자유’에 대해서 많이 생각한다. 왜냐하면 요즘 내가 그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봤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One Battle After Another)>에서 나왔던 대사인데, “자유란 것은 두려움이 없는 상태”라는 것이다. 나도 이제는 소중하게 지킬 것이 없기에 두려움이 없는 상태다. 그래서 진정한 자유를 쟁취했다.

백제의 계백은 전쟁에 나서기 전, 스스로 가족을 죽였다. 신라의 김유신은 출정을 앞두고 가장 아끼던 명마를 베어버렸다. 두 선택은 잔혹함의 경쟁이 아니라, 두려움을 없애기 위한 동일한 인식에서 나왔다. 지켜야 할 것이 남아 있는 인간은 끝까지 자유로울 수 없다는 판단이다. 사랑하는 사람, 아끼는 대상, 돌아가야 할 이유가 사라질 때, 인간은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다. 진정한 자유란 더 많이 가지는 상태가 아니라, 잃어도 되는 상태에 가깝다.

READER LINE

진정한 자유란 더 많이 가지는 상태가 아니라, 잃어도 되는 상태에 가깝다.

사람은 많이 소유할수록 그것을 잃을까봐 두려움도 커진다. 돈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돈에 집착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또 사랑하는 사람이나 소중한 가족이 있으면 그 사람을 잃을까봐 두렵다. 너무너무 사랑하면 그 사람이 털끝이라도 다칠까봐 항상 조바심이 생긴다. 부모들이 자식을 멀리 내보낼 때 늘 좌불안석인 까닭도 혹시나 사랑하는 자식이 다칠까봐, 무슨 일이 생길까봐 두려움에 떨기 때문이다. 자식이 아니라 연인도 마찬가지다. 소중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혹시나 잘못될까봐 늘 불안하다. 또 너무 사랑하면 자의든, 타의든 헤어지게 될까봐 역시 두렵고 그 상황에 붙잡히게 된다. 하지만 소중한 것이 없고, 지킬 것이 없다면 그게 돈이든, 사람이든 그런 대상이 없다면 사람은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음을 비운다’라는 불교의 가르침도 이런 연유로 나온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요즘 꼭 지켜야 할 사람도, 대상도 없다. 그래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주변이 다 정리가 되니까, 뭐가 꼭 이뤄져야 한다는 강박이나 조급함도 없어졌다. 그래서 더 두려움이 사라진지도 모르겠다. 이제 남은 것은 그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내 존재도 흘러가면 그뿐. 특별히 반드시, 꼭, 오늘 아니면 안 된다, 라는 절박함도 없다. 그래서 더 두려움의 상황에서 벗어났기에 완전한 자유를 쟁취한 셈이다.

문자 그대로 진정한 ‘자유’의 경지에 도달했다. 흐뭇하다. 인간이란 존재가 ‘자유’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은 이 복잡한 인간 사회에서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무소유, 재물에 대해 마음을 비워야 하고, 자유로워져야 한다. 그리고 사람에 대해서도 마음을 비워야 한다. 베르테르처럼 사랑에 대한 부재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도 모두 자유롭지 못해서다. 베르테르가 ‘무소유’에 대해서 일찍부터 깨달았다면 비극적인 결말도 없었을 것이다. 이 세상의 고통은 모두가 ‘소유’나 ‘집착’에 의해서 생겨난다. 이건 불교의 가르침이기도 하지만, 인생사 모든 것에 해당하는 철학적 결론이 아닐까.

어쨌든 요즘 나는 ‘자유’의 경지에 올라서 ‘구름에 달 가듯이’ 살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목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뚜렷한 목표도 있고, 인생 경로도 구체적으로 설정이 되어 있다. 그 누구보다도. 하지만 그 자체에 집착하지는 않기에 ‘자유’를 획득한 것이다. 그 과정을 즐기고, 삶 자체를 즐기고, 존재 자체에 의미를 둘 뿐이다. 살아 있다는 것, 먹는다는 것, 쉰다는 것, 숙면을 취한다는 것, 이러한 생물학적 만족에 일차적으로 의미를 두면서 살면 ‘소유’에 대해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또한 ‘꿈’이 없고, ‘목표’가 없다면 이 또한 동물과 같은 수준일 테니, 정신적인 만족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LIFE SHIFT

요즘 나는 방송대 일정을 다 마치고 나서 아주 개운하다. 그동안 못했던 일을 하고 있다. 사실 나는 도보로 5분 거리에 아이맥스 영화관이 있는 곳에 살고 있다. 하지만 방송대에 편입하고부터 2년 동안 그 주변 환경을 백 프로는 활용을 못 했다. 하지만 이제 반드시 해야 할 공부가 사라져서 난 물리적인 면에서도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방학’을 주었다. 일주일 동안 나는 정말 편한 마음으로 지냈다. 공부, 일, 그런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빈둥거리면서 지냈다. 몇 년 동안 마음 편하게 그리 지내진 못했으니까. 항상 방송대 수업을 못 따라가면 어쩌지, 아니면 내 계획대로 2년 안에 졸업을 못 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으로 쉬어도 마음 편하게 쉰 적이 없다. 정말 자유로운 상태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모든 미션을 다 수행하고, 사이버한국외대 한국어교육학과에도 또 3학년에 편입을 마치고, 등록까지 끝내고, 수강 신청도 완료하고 나서 3월 개강을 기다리는 지금, 나는 일주일간의 방학을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맘껏 쉬었다. 사실 코로나 19 시기 때 제주살이 2년, 부산살이 1년여 동안 늘 쉬지 않고 여행을 다녔다. 생활비 이외에는 돈 한 푼 안 드는 공짜 여행이었기에 부지런히 그 기간을 활용했다. 제주도와 부산을 유명한 관광지뿐만 아니라, 이름 없는 골목까지 샅샅이 찾아다녔다. 그리고 수도권으로 다시 컴백하자, 난 좀 쉬고 싶었다. 물리적인 여행은 좀 멈추고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더 이상 한국에선 여행을 다니고 싶은 지역도, 안 가본 곳도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갈만한 데도 없었다. 처음 수원으로 왔을 때 유명한 관광지는 빼지 않고 또 몇 달 동안 돌아다녔지만, 더 이상 갈 데가 없었다. 그리고 정말 쉬어야 했다.

물리적으로 여행을 잠시 쉬기 위해서, 그리고 여행이 일상으로 자리 잡으면서 흐트러졌던 내 삶의 리듬을 되찾기 위해서라도 난 몰입해야 할 곳이 있어야 했고, 내 생활을 잡아줄 강제적인 틀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방송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3학년 편입. 물론 프랑스어를 무료에 가깝게 배우기 위해서라도 난 그 틀에 얽매여야 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확실하게 나는 ‘일하고 공부하는’ 생활 리듬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2년 동안 나는 일과 공부에만 올인해서 내 삶의 틀을 다시 ‘집중하는 모드’로 잡았다. 그래서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있는 영화관도 자주 갈 수 없었다.

사실 코로나19 이전에는 영화관에 자주 갔다. 코로나19 시기를 기점으로 영화관과 멀어졌다. 당연한 결과였다. 난 코로나19 이전에는 일산 백석동에 작업실을 두었을 때도 길 건너 CGV 영화관에 자주 갔다. 책 한 권을 끝내고 나면 어김없이 며칠 영화관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었다. 시간이 좀 틈이 나면 저녁에도 매일 영화관에 출근하다시피 했다. 동네 마실을 가는 것처럼 가까웠기 때문에. 그리고 그때는 할인도 많아서 영화관에 가는 게 정말 부담스럽지도 않았다. 나는 평일 저녁에도 갈 수 있었기 때문에 할인 혜택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더 멀리 가보자면, 광화문에 있던 출판사에 다닐 무렵에는 거의 매일 퇴근하고 씨네큐브를 갔다. 마치 출근 도장을 찍듯이 거의 매일 갔다. 영화가 바뀌면 바로 갔다. 몇 개 안 되는 영화관에 새로운 영화가 들어오자마자 다 섭렵했다. 또 볼 영화가 없으면 대학로에 있는 예술 영화관까지 갔다. 그렇게 로테이션 식으로 영화를 다 섭렵했다. 영화관에 가는 게 나의 제일 큰 즐거움 중 하나였다. 그러던 것이 내 출판사를 만들고 나서 일산 백석동에 처음 사무실을 얻었을 때 영화관은 길 건너 CGV로 옮겨갔고, 광화문 씨네큐브는 가끔씩 나갔다.

내가 영화관으로부터 멀어진 것은 파주 운정신도시로 작업실을 옮기고 나서였다. 그 당시 막 신도시가 조성되던 시기라서 주변에는 갈만한 영화관도 없었고, 좀 삭막했다. 물론 조금만 더 나가면 영화관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씨네큐브처럼 예술 영화 전문 극장이 아니라면 좀 시설이 좋거나 새로 개관한 영화관을 선호했다. 그런데 운정 신도시에서는 그때 주변에 그런 영화관이 없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영화관에서 멀어지다가 일 년여가 조금 더 지난 시점에 코로나 19가 터졌고, 그로부터 영화관은 공식적으로 바이, 바이.

그러다가 제주살이를 하는 2년 동안은 정말 영화관에 한번도 안 갔다. 제주도의 지리적 특성상 갈만한 영화관도 잘 없었고, 또 코로나19의 본격적인 시기였기 때문이다. 부산살이 1년여 동안은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이었는데, 부산국제영화제가 그 시기에 겨우 열려서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보았다. 그때 극장에서 영화를 좀 본 것 같다. 그 이외에는 부산에서도 영화관에 습관적으로 가진 않았다. 여전히 엄혹한 코로나 시기였기 때문에.

그리고 수도권으로 다시 컴백을 해서도 제대로 못 가다가 이제야 겨우 일상을 되찾았다. 방송대에 다니는 2년 동안은 알파벳도 잘 모르고 3학년에 편입학한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처음에는 수업을 따라가기에 바빠서 영화관에 마음 놓고 가는 건 엄두가 나지 않았다. 또 출판 일도 프로젝트가 늘 따라왔기 때문에 그 업무도 일정에 맞춰 처리해야 해서. 그런데 이제야 마음 편히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며칠 동안 평일 낮에도 가고, 밤에도 보러 갔다. 앞에서 언급했던 디카프리오 주연의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도 아이맥스에서 봤다. 도보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CGV에서. 정말 아이맥스가 바로 근처에 있는 건 생활의 큰 편의성이다. 자정이 넘겨서 영화가 끝나도 집에 오는 길이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그냥 동네 마실 다녀오듯이 걸어오면 될뿐. 큰길 하나 건너면 되니까, 날씨가 춥든 어떻든 아무 상관이 없다.

정말 복 받은 환경이다. 아니, 복이라기보다 ‘선택’을 잘해서이겠지. 나의 작업실 입지는 정말 환상적이다. 그동안의 내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의 분석력도 한몫을 했고. 늘 산책할 수 있는 호수공원에, 좋은 시설을 갖춘 영화관까지, 백화점에, 아울렛까지 정말 나는 한국에서 이 정도로 괜찮은 동네가 없다고 생각한다. 강남까지도 이십 몇 분이면 지하철이 도착하고. 서울 접근성도 좋고, 뭐 하나 나무랄 데가 없다. 최근에 아바타, <불과 재>를 아이맥스로 봤는데 3D 안경을 쓰고 봤다. 와, 아바타는 역시 입체 안경을 쓰고 봐야 하나 보다. 이제까지 봤던 아바타보다 더 재밌었다. 바로 눈앞에서 모든 것들이 벌어지니까, 입이 딱 벌어졌다. 내가 아이맥스로 3D 안경까지 끼고 본 영화가 언제였더라. 기억도 가물가물, 오래 전이다. 코로나 19시기 이전인데, 무슨 영화인지 기억도 잘 안 난다. 뭐였더라.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기에 기억을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와 함께 봤던 영화라서, 슬픔으로 인해 모든 기억이 소멸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 당시에 봤던 영화 제목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예전에는 아이맥스에서도 영화를 곧잘 봤다. 하지만 그 이후로 입체 안경을 쓰고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는 종종 영화관에 갈 생각이다. 방송대를 졸업하고 나니까, 마음의 벽이 다 없어졌다. 책임과 의무감도 사라졌고, 시험 강박도 사라졌다. 델프 시험이야 뭐 사이버외대를 졸업할 때까지만 통과해도 된다. 어차피 그때 필요한 거니까 말이다.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갖고 델프 B1 이상이면 세종어학당에서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 된다. 나는 물론 파리 대학교 대학원 석사 과정을 위해서 B2가 목표이다. 그래서 B2를 목표로 삼고 2년 동안 델프 시험을 준비하면 된다. 그리 물 넘어가듯이 급한 것도 없다. 지금은 말하기 빼고는 B1은 어느 정도 실력을 다져놓았다고 할 수 있다. 방송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졸업생이면 그 정도 기본 실력은 갖추게 된다. 어차피 델프 시험이 반 타작만 하면 통과하는 거라서 B1은 별로 걱정이 없다. 100점 만점에 과락 없이 50점 이상이면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기본 실력만 있으면 다 통과한다. 방송대 편입학 초기에 내 마음을 억누르던 프랑스어에 대한 압박감도 없어졌다.

NIGHT WALK

나는 요즘 자유다. 아주 자유로운 상태다.

나는 요즘 자유다. 아주 자유로운 상태다. 얼마 전에 자정을 넘긴 시각에 극장에서 나오는데, 도로가 정말 한산하고, 도시가 고요했다. 그런 동네의 거리를 걷자니, 정말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났다. 30대 초반에 씨네큐브의 마지막 상영을 마치고, 광화문의 밤거리를 혼자 걸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대학로의 밤 풍경. 그때의 자유로움이 솟아올랐다. 포항에서 서울에 처음 올라왔을 때 신림동에서 자정을 넘겨 PC방에서 나오던 그 밤거리, 그때의 차가운 공기가 떠올랐다. 그 자유로움! 그 물리적 자유로움! 난 여전히 그때의 자유로움을 지금도 만끽하면서 살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끼자, 너무 행복했다. 그 당시는 서울에 갓 올라왔을 때라 자유로움만 느끼진 않았고, 미래에 대한 불안함, 알 수 없는 내 인생길에 대한 두려움도 약간은 섞여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오로지 ‘자유로움’이었다. 미래의 내 인생길도 선명하고, 현재의 내 입지도 명확했기 때문이다. 모든 게 세팅되어져 있는 요즘, 나는 너무나 자유롭다. 선명한 미래와 분명한 현재가 공존하는 요즘, 젊을 때의 자유로움뿐만 아니라 나는 무한한 안정감도 느낀다. 그것이 곧 ‘자유’다.

진정한 자유. 아무 두려움이 없는 자유. 이제는 뭐가 망가질까봐, 미래가 망가질까봐, 현재가 망가질까봐 불안하지 않다. 모든 것이 선명하고 세팅이 잘되어 있기에 무엇을 잃을까도 두렵지 않다. 소중한 사람도 없어서 잃을까봐 두려운 마음도 없다. 나에게 요즘 걱정이란, ‘없다!’ 그저 내가 짜놓은 계획대로 수행하면 그뿐이다. 그건 뭐 하면 되는 거고. 내게 걱정은 요즘 뭘까. ‘오늘은 뭘 먹지?’ 이 정도 걱정 아닌 선택의 순간뿐. 이것도 걱정이 아니고, 그냥 ‘생각’ 정도. 사실 요즘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아주 괜찮은 식당을 발견했다. 지금 여기에 산 지가 몇 년째인데 이제야 이 식당을 알게 되다니! 좀 다른 구역에 있어서 그 앞을 지나친 건 겨우 열 손가락 안에 들뿐이다. 아이쿱생협 매장 가는 길에 있는데, 급하게 살 게 있지 않는 한 온라인으로 다 주문을 해서 배달되어 오기 때문에 거길 지나갈 일이 없다. 그런데 그 중간쯤에 그 식당이 있는데, 이름은 안 알려주겠다. 소문이 너무 나면 내가 밥 먹으러 가기 힘들기 때문에.

요즘 세상에 단돈 1만 원으로 집밥 같은 퀄리티를 먹을 만한 식당이 있을까. 이 식당은 오전 10시 반에서 오후 2시까지 가면 1만 원짜리 매일 특별식이 있다. 반찬은 매일 바뀌고, 제육볶음이나 생선을 선택할 수 있다. 국도 바뀐다. 그런데 생선이라, 그건 집에서 구운 것보다 더 고소하고 바삭하고 촉촉하다. 고등어와 가자미를 선택할 수 있는데, 고등어 반 마리는 2천 원을 추가해야 하지만. 가자미도 너무 맛있다. 기름도 재탕을 안 하는지 냄새 하나 나지 않는다. 나는 먹는 데 아주 까다로운 편인데, 내가 이렇게 입에 침이 마르듯이 칭찬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자고로 내가 생각하는 좋은 식당이란, 일단 깨끗해야 한다. 위생적이어야 한다. 공간이든, 음식이든, 그릇이든. 여긴 플라스틱 그릇도 아니다. 도자기류다. 또 무엇보다 먹고 나서 물을 많이 마시게 해선 안 된다. 배달 음식이나 식당 음식을 잘못 먹고 나면 종일 물을 마시게 된다. 일단 그런 식당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 인위적인 맛을 위해 염분을 마구 퍼부어댄 결과이다. 하지만 이 식당은 모든 음식이 다 슴슴하다. 김치도 그렇고, 생선도 그렇고, 국도 그렇고, 반찬도 모두 다 슴슴하다. 그리고 기름도 늘 새걸 사용하는지 기름 냄새가 신선하다. 재료도 신선하다. 밥도 압력밥솥에 한다고 강조해놓았다. 정말 압력밥솥 밥 맞다. 집에서 한 밥보다 낫다. 집에서는 매끼마다 밥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인데, 여긴 매번 새로 한 밥을 먹을 수 있다. 중국산도 아니다. 고춧가루 정도야 중국산이 섞여 있을 수도 있는데, 난 확인을 안 해봤지만, 여튼 고춧가루도 요즘 어떤 식당에 가면 플라스틱 느낌인데, 여긴 오리지널 그대로다.

아마 집에서도 생선을 그렇게 잘 굽지는 못하리라. 내가 서울 와서 가장 아쉬웠던 건 생선이었다. 내가 신선한 생선이 항상 시장에 넘치던 포항에서 청소년 시절까지 보냈던 터라, 서울에서의 생선 수준에 만족을 못 했다. 식당에서 내오는 생선구이란 다 그 품질이 완전히 좋지는 않았다. 고급 식당에 가도 뭔가 2프로 아쉬웠는데, 이 식당은 그걸 뛰어넘는다. 어떻게 1만원 짜리 식사가 요즘 세상에 이 정도 퀄리티가 될 수 있을지 놀라울 따름이다. 거의 기적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아마 광교의 중심 구역에서 살짝 빗겨 나 있는 거리에 점포가 있고, 또 아주 공간이 좁기 때문에 가능할 듯. 테이블 수가 10개 미만인가, 확실히 안 세어봤지만, 그리 많지는 않고, 평수가 10평 좀 될까말까. 확실히 잘 모르겠다. 내가 공간 감각이 없어서. 여튼 좁다. 넓지 않다. 그런데 기적 같은 가격과 퀄리티다. 요즘처럼 물가가 상승한 세상에 이런 식당과 이런 메뉴가 있다는 건 기적이다.

그 시간대를 넘겨 가면 1만 원 대가 사라질까. 아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등 기본 메뉴를 시키면 여전히 1만 원에 먹을 수 있다. 단지, 제육볶음이나 생선구이가 안 나올 뿐이다. 내가 진즉에 이 식당을 알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작년인가 언제인가는 무려 7천 원이더라. 3천 원 올라서 그나마 1만 원이다. 내가 코로나 시절, 부산에서 7천 원짜리 소고기 국밥을 발견하고 까무라칠 듯 놀랐는데, 너무 저렴해서. 그때는 또 몇 년 전이고, 반찬의 숫자와 퀄리티를 따지면 이 식당이 더 낫다. 기적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또 여긴 지금 수도권, 그것도 광교 신도시에 있는 식당인데 이 가격은 진짜 기적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그리고 가격만 저렴해서 이렇게 기적이라는 게 아니라, 그 퀄리티, 생선의 신선도와 기름의 신선도, 고소함, 속살의 촉촉함, 이건 뭐 내가 포항에서 만난 어떤 구이집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다.

여튼 왜 이제야 이곳을 알았을까. 이렇게 안타깝긴 하지만, 그래도 코스트코 식단 재정비를 위한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이 식당을 먼저 알았다면 아마 코스트코 온라인몰 구매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 지중해식 식단도 못 이어가고. 한식만 먹었을 테니까, 늦게 알았던 게 다행일 수도. 그리고 이 동네, 여기저기 식당의 상태도 잘 알지 못했을 테고, 배달 상태도 알 수 없었을 테고, 그래, 다 이유가 있었다고 생각하자. 하지만 이젠 파리에 갈 때까지 이 식당에서 하루 한 끼는 책임질 거라서, 나는 식단에 대한 고민이 사라졌다. 한끼는 이 식당에서 해결하고, 또 한 끼는 코스트코에서 주문한 식재료로 간단하게 지중해식으로 먹고. 그럼 하루 식사가 다 해결되는 것이다. 그것도 영양이 고르게.

먹는 문제가 제일 크다. 파리에서 살면 저절로 다 해결될 문제. 한국에선 그런데 먹는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 저비용으로 제대로 먹고 살려면 고민이 깊어진다. 그래서 요즘 내겐 고민이 없다. 다 정비가 되었기 때문에. 난 이제 뭔가를 해먹을 생각은 버렸다. 사람은 자기가 잘하는 것만 하고 살면 될일. 못하는 걸 굳이 할 필요는 없다. 난 요리에는 젬병. 그렇다고 전혀 못하는 건 아닌데, 일단 하기가 싫고, 흥미도 없다. 그리고 피곤하다. 공부와 출판 작업에 사용할 에너지를 다 뺏기는 게 너무 싫다. 아깝다. 난 한 끼 차려 먹고 나면, 설거지하고 이런 일들이 너무 피곤하다. 한 끼 대단한 요리도 아닌데, 너무 진이 다 빠진다. 그래서 공부나 출판 일에 집중할 수 없다. 그 시간과 노력과 열정과 에너지를 공부와 집필에 쏟는다면 훨씬 큰 결과물이 나올 건데, 기껏 한 끼 해먹겠다고 나의 얼마 안 되는 에너지를 다 쏟아붓는다는 건 너무나 비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제 내 인생에서 요리란 없다. 그리고 이젠 시간도 널널하고, 마음도 여유로워서 나가서 사 먹을 시간은 충분히 된다. 그래도 한 끼 정도는 지중해식 샐러드나 파스타 정도는 가끔 해먹을 수도 있다. 약간의 설거지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매일’ 꼭 해야 하는 게 아니라, 땡기면 할 수 있는 ‘선택지’라서 부담이 없다.

나는 매일 요리를 하는 것보다 매일 책 한 권씩 쓰라고 하는 게 차라리 더 낫고 편할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그렇다는 것이다. 어쨌든 이제 ‘오늘 뭐 먹지?’라는 고민이 사라졌다. 그냥 그 식당에 매일 ‘출근 도장’ 찍듯이 가면 된다. 제시간에 가면, 그날 스페셜 메뉴를 먹으면 되고, 늦게 가면 뭐 아무거나 땡기는 거 먹으면 된다. 하루는 제육볶음, 또 하루는 가자미 구이, 아니면 고등어구이. 번갈아 가면서 먹으면 된다. 그런데 이게 또 해보니까, 그 시간 안에 가는 것도 내겐 ‘구속’이더라. 난 뭐든지 딱 정해져 있으면 ‘구속’이 된다. 그래서 시간도 안 맞출 생각이다. 되면 되는 대로, 그렇게 갈 생각이다. 그래도 1만 원짜리 메뉴는 더러 있고, 선택도 자유로우니까 말이다. 예전에 ‘만 원의 행복’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때와는 좀 다른 설정이긴 하지만, 요즘 나는 ‘1만 원의 행복’을 매일 느끼고 있다.

NEXT SCENE

이제 시선은 현재가 아니라, 이동 이후의 삶으로 옮겨간다.

파리에 갈 때까지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하면 한국에서 남은 기간 동안 즐겁게 매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에서는 좋은 식당을 찾는 건 어렵고, 집밥 같은 식당도 찾기 어렵다. 찾더라도 위생적인 것이나 여러 재료적인 면까지 다 갖춘 식당, 게다가 가격까지 다 조건이 맞는 식당은 진짜 발견하기 어려운 일인데, 이런 식당을 뒤늦게나마 찾아서 다행이다. 축복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머물렀던 시간보다 더 짧은 시간을 여기서 머물 것 같은데, 이제야 찾은 게 아쉽다면 아쉽지. 하지만 한식은 금방 질려서 오히려 다행인지도. 아무리 반찬을 바꾼다고 한들, 한식은 한계가 있다. 그 패턴이 있어서 매일 먹으면 질릴 수도 있다. 그래서 이제야 발견했다고 해서 크게 아쉬울 것도 없을지도. 아마 파리행의 그날이 오면 이미 식상해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파리는 식당 위생이 매우 까다로워서 동네 식당 아무 데나 가도 퀄리티가 보장된다. 그리고 신선한 재료, 영양가 있는 재료, 항상 대기 중이라 골라 먹기가 너무 즐거울 것이다. 아, 그날을 기다린다. 그 일상이 곧 나의 것이 될 날을. 그래도 형식적으로는 일단 사이버대 외대 한국어교육학과를 졸업할 때까지만 파리에 가 있으면 된다. 하지만 적응 기간이 필요하고, 어학 연수도 마쳐야 해서 그 전에 가야 한다. 바로 수업에 투입될 수는 없으니까. 한국에선 솔직히 요즘 아무리 어학 환경이 좋아졌다고 하나, 모든 사방이 한국어 투성이인데, 회화가 자동으로 늘 수가 없다. 무진장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파리에서 일상이 시작되면 거의 자동으로 사방 천지에서 프랑스어가 들려오고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저절로 늘 수밖에 없다. 그래서 회화를 제대로 하려면 반드시 현지에 가야 한다. 현지 어학연수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제대로 수업에 임할 수 있다.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요즘 같은 시대에는 특히나 프랑스어 경우에는 단독으로 뭘 성과를 낼 수가 없다. ‘프랑스어 + 알파’가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프랑스어만 잘해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현실적으로 얻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프랑스어만 잘하는 건 경상도 사투리로 ‘천지 삐까리다.’ 하지만 프랑스어에다가 하나를 더 얹어야 한다. 전문적인 영역. 예를 들면, 내가 준비하는 한국어교원자격증이라든가, 혹은 출판 전문적 영역이라든가, 혹은 어떤 전문 분야에 접목할 수 있는 경력이라든가, 이런 요소가 복합적이라야 현실에서 프랑스어는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머니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언어는 현지에서 살아야 한다. 무조건 현지에서 살아야 그 배움의 의미가 있다. 한국에서 백날 살아봐야, 요즘 아무리 생생한 외국어를 접할 기회가 많다고 하나, 그걸 써먹을 데가 없다. 특히 프랑스어는 한국에서 그리 인기 있는 언어도 아니고 말이다. 대신에 불문과를 제대로 좋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델프 시험 통과한 재원은 많다. 그래서 외국어를 제대로 살리려면 반드시 현지에서 살아야 하고, 또 전문 영역을 하나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그 외국어가 경쟁력이 있고, 현실적으로도 제 역할을 발휘해서 도움이 된다.

자, 나는 파리에 언제 갈까. 반 년 후? 아니면 올 해 꽉꽉 채워서 일 년 후? 사실 SK브로드밴드도, 작업실 계약도 모두 일 년을 기반으로 되어 있다. SK브로드밴드는 3년인가 약정을 해서 중간에 끊고 가면 수수료도 물어야 하고, 작업실도 부동산 수수료도 내가 내야 하고, 현실적으로 2027년 봄에 가는 게 딱 좋게 세팅되어 있다. 과연 어떻게 될까. 그건 두고 봐야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냥 ‘구름에 달 가듯이’ 가면 될뿐, 억지로 뭘 할 생각은 없다. 문이 열리면 그 문으로 들어갈 것이고, 언제 열리든 그 타이밍을 따를 것이다. 뭔가 억지로 하면 다 틀어질 뿐이다. 쉽게, 쉽게 흘러가는 대로 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 또 그게 정답인 경우가 많고.

여튼, 일단 방송대를 졸업하고 나니 마음이 편안하다. 모든 게 세팅이 되어서 마음이 넉넉하다. 난 파리에 가서 유로화도 열심히 벌 것이고, 한국어를 가르쳐서 벌 거고, 출판을 해서도 벌 거다. 유로화를 벌면 요즘 세상에는 애국자 아닌가. 달러나 유로화를 벌어야 제 가치를 하는 세상이라서. 한국 사람이 파리 가면 할 일이 많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파리 가서 살면 할 게 많다. 돈 될 일도 많다. 특히 출판이나 뭐 자기 전문 영역이 있는 사람이면 그렇다. 아무런 바탕이 없는 사람은 파리 가서 뭘 할까. 프랑스어 잘하는 한국 사람은 거기도 많지 않나. 자기의 전문 영역이 있어야 프랑스어도 빛을 발한다. 나는 한국어교원, 그리고 한국어교재 제작, 그밖에 출판 영역에서 프랑스와 연관되는 작업을 많이 할 생각이다. 또한 개인적 소망인 영화 제작도 할 거고. 우선 영화학 석사 과정에 들어가야 할 거고. 이러한 작업들에 대해 수없이 많은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이젠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세종어학당은 대학원에 다니면서 시간 강사도 가능하고, 또 출판 일 역시 내 회사라서 시간 날 때 작업하면 그뿐. 역시 한국에서 출판의 영역을 잘 닦아놓은 게 파리생활에서 큰 역할을 하는구나. 큰 자산이 되고, 밑바탕이 되는 듯하다.

아, 혹독한 한국 겨울 추위. 이제 이번 겨울이 마지막일까. 다가오는 겨울도 겪고 가려나. 그때는 일본살이를 잠시 몇 달 할까도 싶다. 이젠 다시는 혹독한 겨울 추위에 갇혀 지내는 신세는 되고 싶지 않다. 내년 겨울에도 파리에 안 가고 한국에 있게 된다면 겨울 동안 도쿄살이를 해볼까 싶기도 하다. 도쿄는 덜 춥다니까. 한국 겨울은 너무 춥다. 지독하게 추워서 밖을 제대로 나갈 수도 없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산책을 못한다. 파리 가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다. 파리의 겨울은 산책 못할 만한 추위는 아니라니까. 이제 입춘도 지났다. 새로운 겨울이 온다면 나는 아마 도쿄에 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파리가 아니라면, 다음 겨울은 잠시 도쿄에 머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