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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Étoile Bleue Créations · 푸른별창작소)

EDITOR’S NOTE
2026.02.02

한국 영화, 이대로 괜찮은가

요즘 영화가 볼만한 게 없어서 내 취향이 별로 아닌 영화들도 보게 된다. 그래서 최신 한국 영화들도 많이 본다. SK브로드밴드에서 월정액 메뉴 중 무료로 볼 수 있는 영화들. 그중에서 일부 돈을 내고 볼 수 있는 최신작도 있는데, <윗집 사람들>도 그중 하나.

하정우 배우가 감독을 한 작품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하정우 배우는 감독을 하면 안 된다. 앞으로도. 나는 하정우 배우를 참 좋아한다. 연기가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보면, 그것도 늘 비슷한 틀에 매여 있지 않나 싶다. 그래도 하정우 배우를 좋아한다. 매력이 있는 배우다. 우리나라 사람 치고 하정우 배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 정도로 매력이 있다. 나도 한국 남자 배우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좋아한다. 그래서 일부러 비용을 지불하고서라도 신작을 봤는데, “역시나!”였다.

사실 하정우 배우가 감독을 해서 처음에는 기대가 많이 되었다. 연기도 잘하는데, 그리고 영화판에서 그렇게 오래 굴렀는데 잘 만들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 설렘. 하정우 배우의 매력만큼 영화에도 그 매력이 묻어날 것 같았다. 그런데 거의 다 봤는데, 첫 작품에서부터 기대가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그래도 ‘처음이니까~!’라고 이해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다음 작품도 보고, 계속 봐도 아니었다. 중간 이상도 아니었다. 아니, 중간도 아니었다. 그러고 나서 <윗집 사람들>을 보는 순간, 하정우 배우는 더 이상 감독을 하면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본인이 들으면 섭섭할 수 있겠지만, 절대로 하면 안 된다. 그냥 배우만 하면 좋겠다. 롤러코스터 (2013), 허삼관 (2015), 로비 (2025), 윗집 사람들 (2025). 모두 다 봤지만, 설마, 설마, 하다가 결국 <윗집 사람들>에 이르러선 할 말이 없다.

<윗집 사람들> 소재가 거북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소재에 금기는 없다. 난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런데 작품성, 스토리텔링이나 재미, 감동, 구조, 어느 하나 잡은 게 없다. 최하의 작품이다.

한 공간에 머물면서 대사만으로 진행하는 영화라서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그건 감독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작품성이 있게 만들 수 있다. 그 영화의 대사를 보면 그 감독의 역량을 알 수 있다. 감독이 시나리오를 썼을 때. 이 영화 역시 하정우 배우가 시나리오를 썼다. 대부분 요즘 감독들은 시나리오도 본인이 쓴다.

그 ‘바닥’을 보았다. 대사에 밀도가 전혀 없다. 농담식으로 일부러 그렇게 썼다고 해도, 농담 역시 재미나 밀도가 없다. 그냥 논평하기조차 아무 가치가 없을 정도로 너무나 얕아서 왜 아까운 시간과 배우들을 투자해서 이런 작품을 만들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배우들은 친한 사람이 많은지 잘 끌어모았다. 그래 봐야 본인 포함해서 네 명. 저예산으로 제작해서 그냥 영화 만드는 걸 즐기고 싶어서 취미 삼아 만드는 것 같지만, 한국 영화를 생각하면 그런 식으로 흘려보내면 안 될 일이다.

손익분기점은 넘었다는 말도 있는데, 그건 하정우 배우의 유명세 덕분이겠지. 다들 댓글을 보니까 더 이상 감독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뿐이다. 이 작품을 보고 재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알바생 아니면 정말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 영화,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런 영화가 손익분기점을 넘긴다는 것도 참 웃기는 이야기고, 책이나 영화나 정말 우리나라 이대로 괜찮은지 모르겠다. K콘텐츠가 세계로 뻗어가는 이 시점에 전체적인 퀄리티는 너무 떨어진다.

마치 축구가 월드컵 4강에 올라서 우리나라 축구 실력이 굉장히 발전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가 K 콘텐츠의 여러 분야에도 적용된다.

퀄리티 착시와 공장제 제작

축구는 단지 월드컵 가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거고, 영화도 몇 편만 세계 무대에 올라 영광을 차지했다. 전체 영화판의 작품 퀄리티는 정말 손발이 오그라질 정도로 형편이 없는 상태다.

이건 왜 그럴까. 관객의 잘못도 있는 것이다. 관객 수준에 맞춰 단순한 영화를 만들어야 그나마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제작자들. <7번방의 선물> 같이 아메바 수준의 감동을 주는 영화를 만드는 게 한국 영화가 나아갈 길인가.

오로지 단세포 같은 감동과 재미를 주기 위한 영화만 비슷한 형식으로 찍어대는 그 공장제 느낌의 영화 제작 방식이 문제다. 하나가 흥행에 성공하면 다 따라서 또 비슷한 형태의 영화를 만든다. 한국에선 다 왜 이 모양들일까.

음식점도 하나가 성공하면 다 따라서 비슷한 것들이 계속 나오다가, 다들 식상해져서 다같이 망한다.

콘텐츠도 마찬가지. 책은 안 그런가. 책은 더하면 더했지, 덜한 분야도 아니다.

정말 한국 영화, 이대로 괜찮은 걸까. 코로나19 이후로 더 상황은 나빠졌다. 정말 볼만한 한국 영화가 없다. 보고 나면 정말 시간 낭비한 느낌이다.

그래도 난 웬만한 한국 영화를 다 보았다. 우리 한국 영화는 그동안 솔직히 많이 과대평가되었다. 세계 무대에서 수상한 작품과 감독도 과대평가되었다.

후속작들은 그 감독의 역량에 대해 의심하게 만든다. 누구라고 콕 집어 여기서 말하진 않겠다. 그래봐야 뭐하겠나. 누워서 침 뱉기지.

내가 한국 영화에서 움찔할 정도로 좀 괜찮았던 영화는 <고양이를 부탁해>였다. 나는 항상 영화를 볼 때, ‘내가 나중에 영화를 만들면 저 작품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전제로 본다.

한국 영화 중에서는 ‘그렇지 않다’라는 대답을 할 만한 영화를 자주 볼 수 없다. 그런데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를 부탁해>는 처음에 살짝 긴장했다. 다 보고 나서도 또 다른 작품을 찾아볼 정도로.

그래서 <나비잠>도 봤는데, 이 작품도 괜찮았다. 그래서 좀 긴장했다. 나는 저 영화들보다 더 잘 만들 수 있나. 좀 고민이 되었다. 그 정도로 좋은 영화였다.

한국 영화 중에 내가 대답을 망설이게 되는 영화는 몇 안 된다. 그런데 두 작품을 다 보고 나니까, ‘그렇지만 내가 더 잘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왜냐하면 세계관과 철학의 밀도가 낮았다. 좀 더 세계적인 밀도가 부족했다. 전 인류에게 해당하는 실존적 사색의 밀도가 모자랐다. 개인적 문제의 사색에 그쳤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다른 한국 영화답지 않게 작품성이 꽤 있었다.

감독, 대사, 소프트웨어

정말 한국 영화는 괜찮은 작품을 찾고, 또 찾으려고 해도 드물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한국 영화 감독은 홍상수 감독.

하지만 최신작을 볼 때, 이제 홍상수 감독도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자기 복제가 너무 심하고, 확장이 없다.

그리고 영화란 영역이 이미지와 배우도 한 몫 하는데, 예전 작품과 달리 매력이 있는 배우들의 캐스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몰입도가 떨어진다.

영화를 제작할 때 배우도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배우가 매력이 없으면 작품이 살지 않는구나.

꼭 유명 배우가 아니라도, 인지도가 없어도 사람에 있어서 매력이 있는 배우를 잘 선택해야 한다.

그런데 좋은 배우가 출연했다고 해서 그 영화가 다 좋은 것도 아니다. 하정우 배우와 그 친한 유명 배우들이 출연해도 영화가 폭싹 품질이 떨어지는 걸 보면 배우만으로도 좋은 영화를 만들 수는 없다.

감독의 역량이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굳이 딱 한 가지를 꼽으라면 감독의 역량이 더 중요하다.

배우가 매력적이지 않아도 감독만 역량이 있다면 그 영화가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 완전히 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는 한때 영화판에서의 경험이 영화를 제작하는 데 큰 자산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한국 영화판에서 좀 굴렀어야 하지 않았나, 그런 경험을 가졌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다.

하다못해 스태프나 엑스트라라도 해서 영화판의 분위기를 좀 익혀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하정우 배우가 연출한 영화들을 보면서 굳이 그런 경험이 영화 제작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정우 배우는 얼마나 오랫동안 영화판에서 속된 말로 ‘굴렀나!’ 그렇지만 영화의 작품성에 전혀 기여를 하지 않는 걸 보면, 굳이 그 경험의 부족을 약점으로, 혹은 채워야 할 갈급한 요소로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쨌든 한국 영화, 정말 이대로 괜찮을까? 한편으로는 앞으로 내가 한국 영화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에 다행으로 생각해야 한다.

여백이 많으니, 내가 채울 수 있는 부분도 많으리라. 하지만 이건 그냥 ‘위로’일 뿐이고, 한국 영화가 많이 질적으로 발전을 해야 세계 속에 그 흐름이 의미가 있어진다.

솔직히 수상이 국력 문제가 아닌 듯하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못 사는 중남미 쪽 나라의 영화감독도 수상을 곧잘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내가 심사위원이라도 우리나라 영화에 평점을 높게 매길 수 없다.

어느 영화라고 콕 집어 말하진 않겠지만, 최근에도 뉴스에서는 수상 가능성을 점치더만, 난 보고 나서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틀리지 않았다. 수상을 못했다. 어느 영화제에서도.

무엇이 문제일까. 일단 감독이 시나리오를 쓸 때 그 감독의 세계관의 역량과 철학의 부족이 큰 원인이다.

그 구성이 치밀하고 조밀하지 못한데, 영화가 어떻게 그런 구조로 만들어질까.

그리고 대사를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대사는 텍스트다. 그 텍스트의 품질은 그 감독의 사고의 질량이다.

나는 솔직히 몇 마디만 들어보면 그 감독의 역량을 체크할 수 있다.

그건 내가 수없이 많은 원고를 다뤄온 편집자라서 더 감별을 잘한다.

그 대사의 구성을 보면 짧은 문장이라도 그 감독의 ‘바닥’을 알 수 있다.

문장의 품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설사 욕설이 나오는 문장이라도 다르다.

감독의 정신적 밀도가 다르면 욕설마저 다른 톤을 가지게 된다.

어쨌든 한국 영화, 걱정스럽다.

지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는데 도대체 뭐가 나아졌을까.

영화 촬영하는 기술? 그래, 그건 많이 발전했겠지.

하지만 소프트웨어가 얕고도 얕은데, 무슨 세계적 영화제에서 수상을 바랄까.

간혹 수상하는 소수의 작품이 한국 영화를 대표하지 않는다.

그건 마치 축구 실력이 세계적 수준으로 탄탄하지 않는데도 월드컵에서만 가끔 좋은 성적을 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 깊게 쓰고 싶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이만큼만 말하겠다.

그리고 더 깊이 말하면 뭐하겠나. 나 역시 한국 사람인데 누워서 침 뱉기밖에 더 되겠나.

어쨌든 결론은 한국 영화는 소프트웨어적인 측면에서 발전해야 한다. 그래야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관객의 가치관과 수준도 올라가야 한다.

우리나라 요즘 출판 시장이 자기계발서나 정말 그렇고 그런 얕은 책들만 잘 팔리는 수준으로 추락한 것처럼 문화 상품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시장에 그 작품의 수준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좋나. 이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알 수가 없다. 해답이 없다.

그냥 외국에서 수상해 와서 다들 보게 하는 수밖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평소 책을 안 읽어도 노벨문학상이나 유명 문학상을 받으면 줄을 서고, 금방 품절되고 난리도 아니다.

너무 단순하고 얕다. 취향들이.

그냥 외국에서 영화상을 받아오면 그뿐이다.

그게 제일 간단한 방법이다.

한국에서 단번에 내가 만든 영화를 보게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다.

어쨌든 한국 영화, 정말 이대로 안 괜찮다. 결론은 그것이다.

개인이 어쩔 수 없는 문제다. 출판 시장도 마찬가지고.

그냥 독자 노선을 걸어갈 수밖에.

그런 얕은 수준을 맞춰 살고 싶지는 않다.

그런 책이나 영화를 제작하고 싶지도 않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 갈 길을 갈 뿐이다.

그게 최선이다.

내가 궁여지책으로 내린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