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행을 위한
‘정리’
지난 며칠 동안 그동안 몇 년째 미뤄두었던 일을 했다. 바로 문서를 디지털화하는 작업. 이 이야기를 하자면, 오래전 일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리빙 박스 하나를 거의 가득 채우는 분량의 종이에 담긴 텍스트. 이 자료를 나는 오래 전,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포항집을 정리하러 갔다가 건져왔던 물건이다. 아주 예전에 가족끼리 주고받았던 편지며, 일기장들이었다. 차마 버릴 수가 없어서 갖고 왔는데, 이제 파리행을 앞둔 시점에서 그 박스를 그대로 들고 갈 수 없는 노릇이라, 벼르고 벼르던 디지털화 작업을 했다. 그 동안 몇 년째 너무 바쁘고, 경황도 없고, 마음의 여유도 없어서 미루고 미루었다. 사실 시간도 없었다. 방송대 수업 받고 바쁘고, 여러 일들도 처리를 해야 해서, 이제야 그 박스의 뚜껑을 오픈했다.
디지털화, 과거를 짐에서 데이터로 바꾸는 일
디지털화 시대에 발맞춰 팩스, 프린트, 그리고 스캔이 되던 복합기마저 당근에 처분해 버리고, AI가 알려준 대로 어도비 스캔 앱을 켜서 한 장씩 스캔 작업을 해나갔다. 정말 좋은 시대다. 오히려 스캐너에서 스캔할 때보다 훨씬 간편하고 잘 스캔이 되었다. 문서, 사진, 다 스캔이 된다. 나는 며칠 동안 그 문서 스캔 작업을 다 마쳤다. 그리고 그 색이 바랜 오래된 문서들을 잘게 찢어서 버렸다. 개인의 스토리가 담긴 문서라서 이름 부분은 확실하게 찢어서 버리는데, 그 작업만 하는 것도 꽤 중노동이었다. 큰 리빙 박스 하나였지만, 하나씩 해체하고 찢어 버리다 보니, 양이 엄청났다. 원래 짐이란 것이 풀어 놓으면 더 많아지는 법이니까.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그리고 다시 이쪽으로 이사 다니면서도 늘 그 박스를 끌고 다녔는데, 이제 파리행을 앞두고는 기어이 정리를 해야 했다. 물론 파리를 내일, 모레 당장 가는 건 아니었지만, ‘언제라도’ 떠날 준비는 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빠르면 반 년, 늦어도 일 년 안에는 움직여야 하는 시점이 된 거라서 말이다. 그리고 짐을 줄이는 것은 정말 ‘쾌감’을 느끼게 하는 일이다. ‘당근’에 정말 감사를 해야 한다. 이번 참에 침대마저 없앴다. 파리 갈 동안 ‘좌식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몇 십년 동안 침대 생활만 해왔던 터라, 사실 큰 용기가 필요했다.
가장 큰 짐을 비우는 순간, 생활이 바뀐다
하지만 사실 이동을 위해서 제일 큰 짐이 ‘침대’다. 다른 큰 가구는 다 정리했는데, 침대만 남겨두었다. 침대 이외의 자리에서 자는 걸 상상해본 적이 없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난 이번에 마음이 동하여, 침대마저 당근에 무료 나눔을 했다. 올리고 나서 5분 만에 나갔다. 사용한 지, 6년 정도쯤 지났는데 정말 새 제품에 가깝게 깨끗한 상태였다. 매트리스나 프레임이나. 작은 흠집 하나 없었다. 사진에서도 그게 드러났는지 금방 거래가 성사되었고, 그날 이사를 한다는 분이 당일에 가져갔다. 정말 ‘속전속결’이었다. 난 정말 ‘실행력’이 상당하다는 걸 또 한번 느꼈다.
‘나비 효과’처럼 나는 침대가 공간에서 떠나자, 집안의 물건들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된 것에 또 꽂혔다. 눈높이가 달라지자, 필요 없는 가구가 눈에 띄었다. 침대에서 생활하면 TV 받침대도 필요하다. 하지만 좌식 생활을 하면 그 받침대 높이 때문에 TV 높이가 맞지 않는다. 이사 오면서 새로 계약한 SK브로드밴드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50인치 LG 스마트 TV가 바닥에 누워서 보니까 이전보다 더 선명하고 색감이 좋게 느껴졌다. 침대에서 볼 때와 완전히 달랐다. 오리고 토퍼는 꽤나 두툼하고, 침대 매트리스를 대체할 정도로 쾌적했는데, 좌식 생활이 이런 의외의 효과가 있는지 몰랐다. 바닥에 누워서 받침대 없는 TV 화면과 눈을 맞추고 보니, 영화관에 온 것보다 몰입감이 더 있었다. 특히, 캄캄한 밤에 TV만 켜놓고 볼 때 다른 건 하나도 들어오지 않고 오로지 영화 영상만 들어왔다. 2009년작 아바타를 다시 보았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영상인지 미처 몰랐다. 필이 땡겨서 최신작도 이어서 보았다. 정말 ‘횡재’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더 달려서, 나머지 몇 가지 소소한 가구들도 다 정리했다. 거의 나눔 수준으로 내놓으면 몇 시간 안 지나서 다 나간다. 그렇게 나는 물건들과 소품 가구를 다 정리했다. 이제 정말 남은 거라곤 내 컴퓨터가 놓인 책상과 듀오백 의자(이것도 근래에 큰 사무용 듀오백 의자는 당근에서 정리하고, 간단한 의자로 교체했다), 이 정도가 제일 큰 가구인 셈이다. 나머지는 다 빌트인이고, 내가 파리로 가기 직전에 정리할 것이라곤 컴퓨터와 책상, 그리고 의자, 이 정도가 될 것이다. 이제 그 많던 리빙박스도 하나도 남지 않았고, 빌트인 옷장과 벽장 속에 있는 물건들이란 모두 다 소모품들이다. 휴지와 세제, 그리고 기타 소모품들. 그건 늘 사용하는 것들이고, 나머지 소소한 물품들은 가기 전에 다 버리고 가면 되는 물건들이다. 그마저도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던 것들은 이제 조금씩 다 버리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참 물건이 많이 필요하다는 걸 이번에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지만 또 정리하면 다 정리가 되어진다. 정말 최소한만 남겼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도 느낌상 엄청난 양을 정리했다. 왜 그렇게 자꾸 물건이 나오는지.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 물건과 잡동사니들을 끼고 살아가는지. 없어도 다 살아지는데, 왜 그렇게 이것저것 다 갖고 살아가는지. 싹 다 정리하고 나니까, 공간이 훨씬 넓어 보였다. 느낌상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넓어진 거다. 없으면 불편할 거라고 생각했던 물건들과 가구도 막상 치우고 나니까 오히려 장점이 더 많다.
이번에 큰 앨범도 몇 권 정리했는데, 앨범의 무게는 정말 장난이 아니다. 그걸 다 갖고 파리를 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그래서 해체 작업을 시작해서 사진을 다 따로 모았다. 그리고 앨범은 종이와 비닐 부분을 따로 분리 배출했다. 그것도 역시 큰일이었다. 왜 그리 사진이 많은지. 난 그나마 사진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인데도 살아온 세월만큼 사진이 많았다. 다 디지털화 작업을 하고 싶었지만, 양이 너무 많아서 그냥 종이 사진 그대로 갖고 가기로 했다. 앨범의 무게를 빼고 나니까, 그나마 갖고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종이 사진을 갖고 있다가 필요할 때마다 디지털화 작업을 그때그때 하면 될 듯했다.
내가 파리 이주를 계획하고 있으니까, 이렇게 과감한 정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군데 붙어 사는 사람이 이 정도의 밀도로 정리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 기회로 ‘심플라이프’가 정말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캐리어 하나에 다 담을 수 있을 만큼 짐을 정리하면, 어디든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는 사실을 말이다. 파리에 가서도 굳이 물건을 사 모을 일은 없을 것이다. 꼭 필요한 것만 두고 생활하고, 또 거기에서도 빌트인에서 살면 가구를 살 일도 없을 테지. 매트리스만 구입하면 될 것 같다. 유럽은 매트리스가 언제나 교체가 쉬운 생활용품이라, 구입하기도 쉽고 가격도 저렴하고, 품질도 라돈 같은 유해 물질을 걱정할 필요도 없이 평균 이상의 엄격한 시스템을 갖고 있어서 브랜드 안 따지고 구입해도 국내에서 최고의 브랜드를 구입하는 이상의 제품을 쉽사리 살 수 있다고 한다.
파리행을 위한 정리 단계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고 있다. 오늘부터는 소소한 것들, 잡동사니 중에서 또 버리고 정리할 만한 게 있는지 하나씩 찾아봐야겠다. 정말 버리는 일도 분명 ‘노가다’이다. 굳이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떠올리지 않아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정말 편하고 좋은 것 같다. 요즘 같은 AI 시대에는 디지털 자산만 소유하면 될 듯하다. 데이터는 갖고 있는다고 큰 짐이 되는 것도 아니고. 특히 이번에 내가 디지털화 작업한 데이터는 사람의 순수 언어로 작성된 데이터라서 아주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일기장 같은 경우는 한 사람의 어릴 적 사고부터 자랄 때까지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거라서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는 꽤 쓸모가 있다. AI에게 데이터 실험을 할 때 투입해도 되고, 여러 가지로 유용하다. 그런데 손글씨가 스캔된 것이라, 요즘 기술로는 손글씨가 자동으로 텍스트화가 완벽하게는 되지 않는다고 한다. 좀 더 기다렸다가 기술이 좀 더 발전하면 스캔 자료를 텍스트로 다 뽑아내서 완벽한 디지털 데이터로 만들어서 AI와 좀 갖고 놀아야겠다. 그럼 여러 가지 건설적인 실험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여튼 이번에 여러 날에 걸려서 작업을 하여 박스 정리를 하고, 가구를 나눔하고, 당근에 팔고 해서 완전히 획기적인 정리 작업을 마쳤다. 코로나 19시대에 제주도 이주 때부터 정리해온 작업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거다. 그때도 종이로 된 수많은 문서를 파기하고 정리하고, 옷들과 가구들, 집기들을 당근에서 넘길 때, 사람이 살아가는 데 이토록 많은 물건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부산, 또 이곳까지 오면서 계속 당근을 해왔는데 그 양은 물론 현저하게 줄었지만 아직도 계속 당근을 할 만한 물건이 있다는 게 새삼 놀라울 뿐이다. 이번 정리 때는 데자부를 체험했다. 제주도 이주 때와 같은. 그리고 여전히 많은 양을 정리해야 하는 데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정리가 끝나고 마법 같은 새로운 공간이 생기니까 역시나 신기했다. 매번 신기할 뿐이다. 물건이 나간 자리가 이렇게 크다는 것이 너무나 놀랍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에는 소소한 물건들도 빨리 정리해 나가야겠다. 끝없이 정리해야 하는 이 작업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 서두르는 것이다. 이젠 그냥 정원에 잡초를 뽑아내듯이 그렇게 잡동사니들을 소소하게 버리거나 하면 된다. 캐리어, 그래 그 정도 들어갈 짐만 남기고는 모조리 다 정리해야 한다. 언제가 될지 확실한 날짜는 아직 잡히지 않았지만, 길어야 일 년, 빠르면 반 년, 나는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해놓아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편하다. 사실 침대 같은 가구는 타이밍이 잘 맞아야 빨리 처분된다. 이번에 그런 편이다. 정리가 계속 미뤄지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그래서 미리미리 다 정리해 두는 게 속이 편하다.
정리의 끝에서, 계획이 손에 잡히는 순간
그냥 캐리어와 여권을 들고 떠나면 될 수준으로 다 자유로운 상황으로 정리를 해두는 게 파리행을 위한 진정한 준비이자 정리 단계인 셈이다. 공간이 더욱 더 넓어지고 쾌적해진 덕분에 남은 기간 동안 공부와 일에도 더 집중이 잘 될 듯하다. 확실히 심플 라이프는 여러 모로 도움이 많이 되는 듯. 이번에 파리행을 위한 준비 단계로 마지막 관문인 ‘사이버한국외국어대학교 한국어학부’ 3학년에 편입학 합격한 것도 나의 이번 정리에 더 지렛대 역할을 한 것 같다. 내 의지 밖의 일은 이제 다 정렬이 되었다. 세상 일이 모든 게 ‘끝나야 끝나는 법’이라서 이번 합격자 발표도 사실 내심 초조하게 기다렸다. 확정되지 않은 일이란, 늘 사람을 좌불안석으로 만드는 법이다. 그리고 이번 편입학 합격은 내겐 ‘파리행’과 긴밀한 연관이 있기에 더 그렇다.
이번 편입학 합격 결과가 어떤 사람들에겐 그저 사이버 대학교에 편입학한 것 뿐일 수 있지만, 내겐 향후 나의 파리 생활에 대한 소위 ‘안전 장치’의 역할도 하고, 안전지대를 확보한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또 ‘세계에 단 하나뿐인 창의적인 한국어 교재’를 계획하고 있는 나의 ‘큰 그림’에 이 마지막 퍼즐은 진짜 중요한 부분이다. 절대 빠질 수 없는 결정적 퍼즐 조각이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방송대 입학과는 달리, ‘정원’이라는 것이 있고 특히 요즘처럼 K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흐름에 비춰 볼 때 한국어 교육 전공은 인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졸업하고 나면 외국인을 가르칠 수 있는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받을 수 있어서 현실적인 수익이 달려 있는 이번 편입학 합격 결과는 방송대 편입학 합격 때와 또다른 느낌이다. 내가 준비하는 파리 이주에 있어서 향후 계획하고 있는 ‘영주권’과도 긴밀한 연관이 있어서 더욱 초조하게 결과를 기다렸다.
아무리 쉬운 거라도, 또 뭐가 됐든 자기 손에 들어와야 안심을 할 수 있다. 단지 막연하게 사이버대학에 편입해서 한국어교육전공을 선택해서 한국어교원자격증을 따야지, 하고 생각만 하는 것과 직접 그 경로에 들어갔다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의 엄청난 차이가 있다. 손안에 잡힌 새라야 의미가 있다는 영어 속담도 있지 않는가. 그리고 내가 그 많은 사이버대학 중에서 왜 한국외국어대학교를 선택했냐면, 방송대에 편입학하기 직전에 오랜 인터넷 서치 끝에 얻어낸 정보인데, 이 학교 한국어학부만이 정식 한국어교원자격증을 준다는 것이다. 좀 복잡해서 자세한 것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 자격증도 여러 형태와 종류가 있고 급수가 있는데, 내가 검색한 결과로는 사이버한국외국어대 한국어학부를 졸업해야만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서 제일 안전한 한국어교원자격증을 얻을 수 있다는 거였다. 국가에서 정식으로 인정해 주는 그런 차원에서 말이다.
나는 이미 오래전에 대학교에서 교직 이수를 하여 국내 중등교사자격증을 갖고 있지만, 외국인을 가르치는 자격증은 따로 가져야 한다. 하지만 나중에 파리의 세종어학당이나 기타 기관에서 채용될 때 조금의 차별성을 띠고 플러스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또한 한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작가 활동과 출판 전문가로서 20년 이상 살아왔던 나의 이력도 채용 때 도움이 될 것이다. 어쨌든 나는 최선을 다해서 한국어교육학을 공부할 것이고, 어떻게 하면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잘 전달할 수 있을지 수업 시간에도 고민하면서 들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수업을 바탕으로, 그리고 나중에 외국인들을 직접 가르쳐서 나온 현장 경험을 토대로 해서 거기다가 나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발휘하여 최종적으로 한국어 교재도 새롭게 탄생하도록 할 것이다.
나의 이 계획에 아마 누구도 조그마한 토를 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의 내 출판 경력과 편집 경력을 따지고 볼 때 너무나 현실적인 계획이라서 말이다. 게다가 나는 이 일에 나의 인생을 걸 생각이고, 이게 내가 태어난 사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요즘 갖고 있을 정도로 내게 중요한 일이 되었다. 한국어 교재, 물론 좋은 교재들이 많지만, 여러 가지 관점에서 내가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통찰력을 발휘해서 내린 결론이다. 그 이유를 구구절절 늘어놓는 건 굳이 이 시점에서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내 인생이 왜 돌고 돌아서 이 구역으로 들어왔는지 ‘운명적’으로 확신을 갖게 되었다. 새로운 한국어 교재의 집필과 편집, 그리고 제작은 나에게 사명으로 주어진 듯하다. 그리고 항상 정답을 향해서 가는 길은 문이 저절로 열린다. 나는 살면서 그걸 느꼈다. 정답이 아닐 때는 항상 벽 앞에 마주 서야 했다. 하지만 정답일 때는 쉽게 문이 열리고, 여러 가지 혜택이 더불어 따라온다.
내가 쉽사리 그 일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늘이, 우주가 날 도와주는 길이 열리더라. 뭐 굳이 일일이 설명하진 않겠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도 나를 그 길로 쉽게 인도를 해준다. 이 길은 정답인 듯하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다 완벽하게 풀리는 경우가 없었는데, 하나하나 나의 노력 이상으로 다 우주가 날 도와줘서 그 길을 어려움 없이 걷도록 해준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파리지앙으로 사는 데 만족하고, 거국적으로는 한국과 한국어를 세계에 널리 ‘제대로’ 퍼뜨리는 데 소임을 다할 생각이다. 그리고 영원히 큰 가치로 남을 한국어 교재를 만들 계획이다. 나의 출판 인생이 이 사명을 뒷받침해 주는 이 인생의 역사를 생각할 때 놀라울 뿐이다. 나는 그저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그 길을 갈 것이다. 나라는 인간은 의미와 가치가 있는 일에는 전력을 다한다. 이제 그 대상을 제대로 찾은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길을 이어서 갈 것이고, 거국적으로는 이제까지 해오던 출판 일과 더불어 한국어 교재의 제작을 향해서 걸어갈 것이다. 개인적 소망과 사명감을 모두 충족해 줄 수 있는 공간, 그 도시는 바로 ‘파리’다. 곧 내가 이주해 갈 공간, 나는 그 길 위에 서 있다.
파리행의 준비는 물건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정리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