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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Étoile Bleue Créations · 푸른별창작소)

EDITORIAL NOTE
2026.01.19

경유지, 광교에서

요즘 근래에 내가 새롭게 꽂힌 영화 감독은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이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주요 장편 영화 필모그래피를 일단 먼저 말해보자면, 《내가 있는 곳》(2000) · 《볼프스부르크》(2003) · 《유령들》(2005) · 《옐라》(2007) · 《예리코》(2008) · 《바바라》(2012) · 《피닉스》(2014) · 《트랜짓》(2018) · 《운디네》(2020) · 《어파이어》(2023) 등이다. 최근작은 2025년 칸 감독주간에 공개된 《Miroirs No. 3》로 이어진다.

크리스티안 페촐트의 수상 이력을 살펴보면, 베를린국제영화제를 중심으로 오랫동안 축적된 신뢰의 기록에 가깝다. 그는 초기작 《볼프스부르크》(2003)로 국제비평가연맹상(FIPRESCI)을 받으며 비평가들의 주목을 받았고, 이 수상은 상업성과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영화적 언어를 구축해온 감독이라는 첫 공식 인정이었다.

전환점은 《바바라》(2012)였다. 이 작품으로 그는 베를린국제영화제 감독상(은곰상)을 수상한다. 이는 특정 작품의 완성도를 넘어, 연출자로서의 미학과 방법론이 성숙 단계에 도달했음을 의미하는 상이다. 이 시기 이후 페촐트는 역사, 정체성, 유령 같은 존재들을 현재의 시간 속에 겹쳐 놓는 독자적인 방식을 확고히 한다.

《트랜짓》(2018)은 수상작은 아니지만 베를린국제영화제 공식 경쟁 부문에 초청되었다. 경쟁부문 초청은 영화제 측이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을 동시대 영화 담론의 중심에 위치시켰다는 뜻이며, 이 작품에서 페촐트는 과거를 재현하는 대신 현재에 불러오는 방식을 가장 급진적으로 밀어붙인다.

이어 《운디네》(2020)는 다시 국제비평가연맹상을 수상했고, 동시에 주연 배우 파울라 베어가 여우주연상(은곰상)을 받았다. 이는 페촐트의 연출이 영화 전체의 구조뿐 아니라 배우의 연기까지 함께 완성시키는 단계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최근작 《어파이어》(2023)는 베를린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은곰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감독상과 더불어 영화제 내에서 가장 무게감 있는 트로피 중 하나로, 페촐트가 더 이상 ‘주목받는 감독’이 아니라 베를린영화제와 함께 성장해온 핵심 작가로 자리 잡았음을 분명히 한다.

정리하면, 페촐트의 수상 경력은 화려한 다관왕의 목록이라기보다 하나의 영화제가 반복적으로 신뢰를 보내온 작가성의 누적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언제나 상보다 작품으로 기억되지만, 수상 내역을 차분히 들여다보면 그 위치와 무게는 분명히 드러난다.

나는 사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을 최근에야 알았다. 그의 진가를 말이다. 물론 그의 작품 중에서 SK브로드밴드에 올라와 있는 《트랜짓》(2018), 《운디네》(2020) , 《Miroirs No. 3》 세 편 정도를 봤다.

이 중에서 《트랜짓》(2018), 《운디네》(2020)는 이전에도 봤던 적이 있다. 하지만 감독의 존재를 모른 채, 시간의 간격을 두고 따로 봤던 작품이다. 하지만 근래에 최근작 《Miroirs No. 3》를 보다가 다른 두 편도 이어서 같이 봤다. 그랬더니 이제 감독이 지향하는 세계관의 흐름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감독에게 꽂혀서 이동진 영화 평론가가 한국에 방문했던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을 인터뷰하는 영상도 SK브로드밴드에 올라온 것을 봤다. 이 코너는 SK브로드밴드 영화 메뉴 중 하나다. 나는 딱히 이 메뉴까지는 챙겨 보지 않는 편인데, 이번만은 일부러 찾아봤다. 내가 느꼈던 이 감독에 대한 정체가 과연 어느 정도 맞을까 하고 말이다. 이동진 평론가는 이런저런 영화적 질문을 했는데, 내가 궁금해하던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다.

만일 내가 인터뷰했다면 난 이런 질문을 하고 싶었다. 세 편의 영화를 봤는데, 그 작품들 속에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일관된 구성이 있다. 하나는 여자 주인공의 남자 친구가 꼭 영화 초반부에 죽거나 헤어진다. 여주인공의 가장 가까운 존재의 결여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특별히 의도된 것인가. 그리고 또 하나는 꼭 사건 사고가 초반에 터진다. 교통사고라든지, 수족관의 파괴라든지, 뭔가 폭발적인 사건이 터진다.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항상 시작된다. 또 작품들 속에서 기술자가 꼭 나온다. 자동차 수리공이라든지, 엔지니어의 존재가 부각된다. 이것 역시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인생에서 그 부분이 중요한 부분이었나. 나는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영화를 보고 이런 질문이 떠올랐는데, 그 해답을 얻지 못했다.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꼭 물어보고 싶다.

그런데 이번에 내가 특히 꽂힌 영화는 《트랜짓》(2018)이다. 이 영화는 이번에 보면 세 번 정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맨처음에 봤을 때는 너무 심정이 복잡할 때 봐서 제대로 작품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몇 년 후에 다시 봤는데도 기억에 잘 남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Miroirs No. 3》를 먼저 보고, 그다음에 《운디네》를 이어서 보고 난 다음에 보니까, 이 감독의 성향을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감독의 영상 문법을 알고 보니까, 참 많이 꽂힌 작품이 되었다.

이 영화의 제목, ‘트랜짓(Transit)’은 경유지를 뜻한다. 경유지에 머무는 인간의 상태를 가장 날것으로 드러내는 영화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삼지만, 화면 속 도시는 명백히 현대의 마르세유다. 시대는 뒤섞이고, 인물들은 과거의 문서를 들고 현재의 거리 위를 걷는다. 주인공 게오르크는 죽은 작가의 신분을 대신 짊어진 채 출국 비자를 기다리며 ‘떠나기 직전의 삶’을 반복한다. 이 영화에서 이동은 목적이 아니라 보류 상태다.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떠나지도 못한 채 사람들은 항구와 카페, 영사관을 맴돈다. 트랜짓은 이동의 서사가 아니라, 이동 이전의 시간을 붙잡는다.

나 역시 요즘 ‘경유지’에 머무르기 때문에 더 이 영화가 지금 팍 꽂힌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게다가 방송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에서 배웠던 프랑스 역사와 지리 등의 배경지식이 장착되고 나서 이 영화를 보니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프랑스나 유럽 분위기를 더 잘 알아서 예전보다 이 작품의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파리’와 ‘마르세유’ 도시의 위치와 거리를 대략 알고 보니까, 영화적 현실감이 더 다가왔다. 또 요즘 내 위치가 딱 ‘경유지’에서 떠날 날짜만 기다리는 주인공의 심정과 비슷해서 역시 몰입이 더 잘되었던 이유도 있다. 그리고 예전에 이 영화를 봤을 때의 내 심리적 혹은 물리적 상태보다 지금이 훨씬 여러 모로 정리된 상태라서 영화에 더 집중할 수 있기도 했다.

크리스티안 페촐트는 독일 현대 영화에서 가장 일관되게 ‘유령 같은 인물들’을 다뤄온 감독이다. 그는 역사극을 재현하지 않고, 과거를 현재에 겹쳐 놓는 방식을 택한다. 트랜짓에서도 나치는 화면에 거의 등장하지 않지만,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권력은 배경이 되고, 개인은 행정 서류와 대기 번호 속에서 점점 투명해진다. 페촐트에게 트랜짓이란 단순한 경유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 그리고 언제든 우리도 같은 줄에 설 수 있다는 불편한 자각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난민 영화이면서 동시에, 지금을 사는 모든 사람의 초상처럼 읽힌다. 즉, ‘나의 초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더 끌렸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영화에서와는 달리, ‘경유지, 광교’에서 보다 평안한 기다림을 하고 있다. 요즘 나의 일상은 뭔가를 반드시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은 많이 사라졌다. 파리행을 위한 중요한 준비 단계로 방송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도 예정대로 2년만에 졸업하게 되었고, 내 의지 밖의 일들은 종결이 되었다. 나를 압박하는 시험도, 과제도 이젠 사라졌다.

물론 며칠 후에 발표될 사이버 한국외대 한국어학과 편입학 합격 발표가 내 의지 밖의 마지막 관문인데, 그것만 마무리되면 내게 압박감을 주는 일은 없다. 남은 것은 모두 내 의지와 노력으로 될 일이니까. 또 한국어학과에서의 수업은 방송대 과정을 마쳤기에 벌써 훈련이 된 사항이고, 프랑스어와 달리 한국어는 내 모국어이고, 또 거의 반평생 이상 한국어 관련 출판 일을 해왔기에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은 것이 사실이다. 물론 학문적 영역이라 좀 다른 분야라 할지라도 생판 처음 대하고 알파벳도 모르던 프랑스어 공부와 비할 바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파리로 향하는 ‘경유지’, 광교에서 남은 일상을 이어가면 된다. 요즘 나는 드디어 식단을 코로나19 시기 이전으로 다시 회복했다. 그때보다 더 업그레이드되고 완벽해졌다. 이번에 한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로 했다. 파리행 이전에 마지막으로 한식을 많이 먹으려고 했는데, 그동안 국물 메뉴, 추어탕이나 김치찜, 민물장어탕 같은 음식을 주로 먹다 보니, 너무 염분 섭취가 많이 된 건지 눈두덩이가 늘 부어 있었다.

영양 면에서는 그동안 코로나 시기 이후 불균형했던 영양 상태를 좀 보강했다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지속할 수는 없었다. 이젠 ‘이별 연습’을 해야 했다. 내가 요리할 여력은 안 되기에 아주 엄선된 제품을 섭취하긴 했지만, 한식의 국물 요리의 한계상 염분 섭취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아이쿱생협의 즉석밥을 주로 애용했는데, 이제 그마저도 단절을 하기로 했다. 물론 남아 있는 즉석밥은 코스트코 온라인몰에서 김을 주문해서 처리하기로 했다. 난 사실 구운 김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김밥의 김은 굽지 않은 김이라서 김밥은 먹지만, 구운 김은 딱딱해져서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즉석밥을 이제 처리하기 위해 꼭 필요해서 마지막으로 먹어보기로 했다. 가장 간편한 방법이니까. 일부러 또 다른 반찬을 주문하거나 구매하고 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되고 말이다. 요즘 국과 반찬을 끊었더니 며칠도 안 되었는데, 눈두덩이의 붓기가 빠졌다. 그리고 얼굴도 점점 돌아오고 있다. 그래도 두세 달 집중적으로 축적된 몸 속 염분을 다 빼려면 역시 몇 달은 걸리리라. 남은 즉석밥을 버터와 스파게티 소스로 볶아 보았다. 그랬더니 리소토풍 볶음밥이 되었다. 코스트코에서 김이 도착할 동안 이렇게도 먹어봐야겠다.


이참에 내가 요즘 새롭게 구축한 식단을 한번 공개해 보기로 한다. 역시 아이쿱생협을 끊고 코스트코에 의지한 장보기를 하니까, 식단이 아주 원하는 대로 정리가 되었다. 코로나 19 시기 이전으로 돌아간 듯하다. 난 사실 식단에 무척 진심이다. 그런데 코로나 19 이후부터 나의 식단이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주지를 옮겨 다니고, 극단적으로 ‘섬’으로 가다 보니, 코스트코가 제한된 지역이기도 하고, 그 지역의 음식을 먹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식단은 취향이 아니라 환경의 결과다.
내가 서 있는 장소가 무엇을 먹게 만드는지를 결정한다.

하루 두 끼 중에 일단 한 끼는 이제 고정이다. 역시 코스트코 온라인몰에서 구매하는 ‘한 끼 오트밀’을 2분 동안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캐나다산 귀리 순수 100%이다. 물 조절을 잘해야 한다. 처음에는 물을 좀 많이 했다가 별맛이 없었다. 그런데 살짝 찰랑거릴 정도만 넣었더니, 완벽하게 죽처럼 되었다. 물론 여기에 블루베리와 생아몬드를 넣는다. 요즘 코스트코에 100%블루베리 대신에 여러 베리류가 섞인 냉동제품으로 라인이 바뀌었는데, 의외로 그게 더 다채롭고 좋았다. 생아몬드 역시 코스트코에서. 대략 20알 정도 한 움큼 넣고 잘 저어주면 정말 질척한 죽처럼 변한다. 베리류를 먼저 넣고 젓고 난 후에 생아몬드를 넣는 게 더 좋을 수도 있다.

하여튼 요즘 나는 완벽한 한 끼 식단을 정착했다. 만족도는 최상이다. 처음에는 우유를 넣고 끓여 보기도 했는데, 조리 과정도 귀찮고 맛도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런데 챗지피티와 의논해 본 결과, 물을 넣고 전자레인지에 2분만 돌리면 되니까 아주 멋진 한 끼가 되었다. 맛도 최고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아주 훌륭한 한 끼로 정착하게 되었다. 영양면에서도 최고이고, 염분도 없고 여러 모로 좋다. 단가로 따져도 한식 한 끼 먹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 단가 총액은 3천 원에서 5천 원 사이일 듯. 아마 3천 원에 가까울 것이다. 이 정도 가격에 이토록 영양적으로나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식단이 어디 있을까. 재료도 순수해서 더욱 완벽하다. 가공된 과정이 거의 없으니까. 귀리나 압축해서 빨리 조리될 수 있을 정도의 가공 정도.

몸을 관리하는 일은
결국 시간을 관리하는 방식이 된다.

또 다른 한 끼는 여러 메뉴로 변화가 있다. 그중 하나는 파스타. 역시 코스트코 온라인몰에서 주문한 갈로팔로 유기농 파스타. 이건 짧아서 라면처럼 그냥 작은 냄비에 삶으면 된다. 5분 정도 삶다가 팬으로 옮긴다. 미리 냉동 새우(역시 코스트코 온라인몰에서 구입) 대여섯 마리를 버터로 볶다가 그 면을 넣고 이어서 볶으면 된다. 마지막에 역시 코스트코에서 구입한 소스를 넣고 마무리하면 된다. 이 메뉴를 일주일에 세 번 정도. 그런데 여기에 곁들이는 피클 같은 느낌의 사이드 메뉴. 역시 코스트코 온라인몰에서 구입한 레오나르디 오로 노빌레 화이트 발사믹 콘디멘토를 절반으로 자른 방울토마토 위에 티스푼으로 두어 번 뿌려 샐러드식으로 먹는다.

원래 컬리에서 유기농 화이트 이탈리안 콘디먼트를 가끔 사먹었는데, 역시 챗지피티 말로는 더 깊은 맛이 코스트코 그 제품이라 라인을 바꾸기로 했다. 또 이 사이드 메뉴에 사용하는 방울토마토는 1킬로그램 단위로 유기농 제품을 따로 온라인몰에서 주문한다. 우리 광교 호수공원의 과일채소가게도 신선하고 저렴하긴 한데, 요즘처럼 겨울에는 날씨가 추워서 산책을 안 나가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따로 주문한다. 또 거긴 유기농을 팔지는 않는다. 한편, 코스트코에서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제품만 주문할 수 있다. 채소 같은 경우는 대량으로 주문하면 보관이 힘들고 일인 가구라서 제때 소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다른 메뉴로는 라쿠치나 마스카포네 토마토 수프에 농협 두부 반 모를 넣어서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역시 코스트코에서 구매한다. 먼저 챗지피티가 알려준 대로 토마토 수프를 도자기 그릇에 넣고 2분을 돌린다. 그러고 나서 두부 반 모를 잘라서 수프에 잠기게 투하하고 나서 다시 2분을 돌린다. 그럼 멋진 한 끼가 나온다. 영양면에서도 좋고, 조리 과정도 아주 간편하다. 단가면에서도 역시 5천 원 이하다. 아마 3천 원에서 4천 원 정도 나올 것 같다.

이런 메뉴를 로테이션 식으로 먹는다. 일주일에 딱 몇 번을 먹자고 정해두진 않는다. 간식처럼 먹을 수도 있고, 정식 메뉴로 먹을 수도 있고. 그래서 하루에 간식처럼 세 끼를 먹을 수도 있고, 두 끼를 먹을 수도 있고, 속된 말로 ‘땡기는 대로’ 먹으면 된다. 그날의 몸 상태에 따라서. 그리고 가능하면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건물 안의 일인 샤브샤브 식당에서 외식을 하기로 한다. 이 메뉴도 국물이 역시 있어서 자주 먹으면 붓기를 유발할 수도 있어서 가끔 먹는 게 좋다. 하지만 한식은 아니라서 정통 국물이 있는 메뉴는 아니다. 그래서 포함했다. 싱싱한 채소와 고기 등을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새로 발굴할 메뉴로는 역시 코스트코 온라인몰에서 구입 예정인데, 최근에 발견한 제품이다. 밥을 완전히 끊으려고 하니까, 대체 탄수화물이 뭐가 좋을지 고민스러웠다. 유럽 사람들처럼 감자를 삶아 먹으려니 그것도 역시 귀찮은 일이다. 빵을 먹자니, 유럽처럼 순수한 빵을 구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 빵집에는 순수한 빵이 잘 없고, 뭔가가 다 첨가되어 있다. 그래서 대체물을 찾다가 코스트코 온라인몰에서 ‘바로 먹는 감자’가 있었다. 그냥 냉장으로 보관하다가 하나씩 뜯어 먹으면 된다. 그릭요거트로 샐러드 만들어 먹을 때 같이 넣어 먹으면 된다. ‘바로 먹는 고구마’도 있었다. 그것도 한번 나중에 구매해봐야겠다. 난 고구마는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일단 그 맛이 궁금하니까 먹어봐야겠다.

또 새로 발굴할 한 끼 메뉴로, 냉동부라타치즈가 있다. 이걸 앞에서 말한 감자에 얹어 먹으면 멋진 한 끼가 될 수 있다고 역시 챗지피티가 조언해 주었다. 단가도 얼마 하지 않는다. 개별 단가를 쪼개어 보면 한 끼 식사가 아주 저렴해지는 반면, 영양가는 알차다. 또 더 추가로 발굴할 메뉴로는 수지스 그릴드 닭가슴살이다. 코스트코에서 이미 유명한 제품이라고 한다. 순수하게 그냥 닭가슴살이다.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샐러드에 넣어서 먹으면 된다. 간편하고 영양가도 좋다. 염분도 적고. 이건 한번 시도해볼 생각이다.

그리고 달걀이 빠지면 안 된다. 한스팜 유기농 달걀을 역시 코스트코 온라인몰에서 구입한다. 유기농이라고 한다. 하루에 두 개씩 섭취한다. 유럽 사람들처럼 한 끼 식사가 될 수 있다. 버터에 프라이를 하면 된다. 그리고 다른 요리에 곁들여도 좋고. 이때 버터는 반드시 무가염을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염분 섭취를 줄일 수 있니까. 나는 역시 프레지덩 무가염버터 미니포션을 코스트코 온라인몰에서 구입한다. 10그램 단위로 개별 포장되어 있는데, 한번 구입하면 아주 오래 사용할 수 있다. 냉동실에 보관하면 오래 먹을 수 있다. 하나의 단가로 따지면 정말 얼마 하지 않는 가격이다. 내가 임상 실험을 해본 결과, 올리브유나 식용유, 콩기름 같은 경우는 얼굴 살을 처지게 한다. 하지만 버터는 오히려 얼굴을 단단하게 고정한다. 그리고 순수한 버터는 영양적인 면에서도 좋고.

식단은 몸을 만들고,
몸은 결국 삶의 방향을 만든다.

일단 ‘경유지’ 광교에서 내가 파리행을 기다리면서 식단을 구성하기 위해 최상의 선택은 코스트코 온라인몰에서 장보기 하는 정도다. 한국에서 쉽사리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지중해식, 혹은 유럽식 건강 식단을 위해서다. 하지만 파리로 가면 더 다양하고, 더 자연산에, 더 풍부한 유럽의 살아 있는 각종 재료를 더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해서 식단을 짤 수 있을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면서 최소한의 식단을 만들어 보았다. 그래도 이제 더 이상은 염분 과다 섭취로 눈두덩이가 늘 부어 있는 상태는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보통 나이 들어가는 한국 사람들 얼굴처럼 일그러진 피부 상태도 피할 수 있다.

최근 기사에서 보니까, 한국의 김치 등의 음식 때문에 한국인에게 암이 많이 발생한다고 한다. 주변을 봐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한국 사람들은 불필요하게 약이나 병원에 기대어 산다. 대부분 병의 거의 많은 원인이 식단에 기인한다. 우리나라 식단으로 계속 평생 먹다 보면, 병원만 좋은 일을 시킬 뿐이다. 늘 가서 건강 검진을 받는 것보다 식단을 우선으로 잘 정비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까지 건강검진을 받는 일보다 식단에 매우 진심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해서 나의 일상도 많이 흔들렸다. 그래서 식단을 내가 원하는 대로 유지하기가 힘든 몇 년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다시 나의 식단을 정비하기로 한 것이다. 또 만병의 근원적인 원인인 다른 한 축은 스트레스인데, 이것 역시 한국 사회에서는 끊임없는 경쟁 사회로 몰고 가기 때문에 한국 사람들은 병에 노출되기 쉽다. 마음의 병이 곧 육체의 병으로 전이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남들의 시선과 기준에 휘둘리면서 평생 살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제일 중차대하고 유일한 목표가 바로 ‘자가’를 얼마짜리를 어느 동네에 가지고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 유럽이나 세계적인 관점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본다면 불쌍하기 그지없다. 인간이 태어나서 고작 집 한 채를 가지는 게 최고의 목표이고 가치의 우선이라는 게 참 슬프지 않는가. 하지만 비참하게도 우리는 그러한 사회에 살고 있다. 그리고 남의 시선과 기준에 미달하면 스트레스를 받으며 산다. 항상 경쟁, 경쟁, 또 경쟁을 향해 달리며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한 채 살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자살율이 높은 나라도 바로 한국이다.

돈이 없든, 집이 없든, 적은 돈으로 자신의 식단부터 우선 챙기는 게 소박한 삶을 위해 더 좋은 길이 아닌가 싶다. 건강하게 오래 살아남는 게 제일이다. 그리고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집 한 채, 그놈의 ‘똘똘한 한 채’만을 위해 인생을 송두리째 바쳐 나간다면 과연 그 삶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인생에는 그보다 훨씬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들이 많은데,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그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잣대에 휘둘려 평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이건 정말 독서 부족이고, 책을 읽는다고 해도 늘 ‘자기 계발’ 책만 냅다 읽으면서 독서를 많이 했다고 자랑식으로 인증하는 우리나라의 독서 생태계도 한몫을 한다. 그놈의 자기계발은 진정한 자기 발전이 아니라, 그냥 재산 증식이다. 늘 돈, 돈, 돈 타령을 하면서 평생 살도록 하는 이 사회, 과연 괜찮은 걸까. 이런 사회에서는 늘 삶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은 안으로 우울증을 안고 살거나, 밖으로 표출할 때는 분노 범죄자를 양산하게 만든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향한 무차별적 분노, 그걸 우리는 일상에서 언제 맞닥뜨리게 될지도 모를 불안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셈이다.

우리도 늘 진정한 책을 가까이 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탐색하며 정말 자신이 원하고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자신의 진정한 꿈이 뭔지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잣대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같은 공간, 같은 사회, 같은 문화 속에서 다른 가치, 다른 인생관, 다른 세계관을 갖고 자신의 순수한 꿈을 찾기란 참 힘든 일이다. 그래서 나는 ‘경유지’ 광교에서 파리행을 향한 탈출을 모색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영화 《트랜짓》의 주인공처럼.

나는 여기 경유지에서 내가 새롭게 재건한 식단으로 나의 몸을 채우면서 ‘그날’을 평안한 마음으로 준비하고 기다릴 것이다. 스트레스가 없고, 제대로 된 식단으로 일상을 채운다면 100세 시대는 남의 일이 아니다. 남은 반 평생, 그래야 억울하지 않게 유럽에서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는 더 이상 나의 꿈을 완성할 수 없고, 나는 평평한 운동장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 경유지, 광교에서 나는 오늘도 평안한 일상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