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키 데이 인 파리
FILM NOTE
배우의 국적과 대사의 언어가 달라져도, 영화의 색은 감독이 속한 세계의 감각을 닮는다.
오늘의 기록은 한 편의 영화에서 시작해, 감독의 감각을 따라가다가, 결국 ‘우연’과 ‘운명’이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는 쪽으로 흘러간다. 과연 '운명'은 존재하는 걸까?
우디 앨런 감독의 최신작, <럭키 데이 인 파리>를 이번 연휴 때 SK브로드밴드로 봤다. 원제는 Coup de Chance이며 2023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된 그의 50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파리를 배경으로 프랑스어로 제작된 이 작품은 우연(coup de chance)이 인간의 삶과 관계를 어떻게 비틀어 놓는지를 탐구하는 드라마·스릴러로, 오랜 기간 ‘운’과 ‘선택’이라는 주제를 반복해 온 우디 앨런의 문제의식이 가장 응축된 형태로 드러난다.
우디 앨런 감독 작품은 공통점이 소재는 ‘불륜’이 자주 들어가 있고, 또 ‘운’을 존중한다는 점이다. 우디 앨런 감독의 사생활 논란에도 그의 작품이 영화적 의미에서는 아주 놀랍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소위 ‘천재적 감독’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있다.
나는 우디 앨런 감독을 가장 좋아하는 감독들 대열에는 넣지 않지만, 그래도 나름 그의 영화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보고 나서 거의 실패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적으로는 완성도가 꽤 있다.
이번 영화도 깔끔한 구성과 빗나가지 않는 인물들의 대사들이 목적지를 향해서 잘 굴러간다. 그리고 스릴러물답게 쫄깃한 구석도 잠시 있다. 미국 할리우드 영화의 특성은 그대로 간직한 채.
그런데 영화의 국적은 종종 배우의 언어가 아니라 감독의 감각으로 귀착된다. 내가 그 사실을 목도한 영화는 우디 앨런 감독의 <럭키 데이 인 파리>뿐만 아니라,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프랑스 배우들과 프랑스어로 만든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 같은 작품들이다.
“영화의 국적은 종종 배우의 언어가 아니라 감독의 감각으로 귀착된다.”
이 작품들은 표면만 보면 프랑스 영화지만, 관계를 바라보는 거리감과 윤리는 분명 미국 사람인 우디 앨런 감독과 고레에다의 일본적 리듬을 각각 따른다.
<럭키 데이 인 파리> 같은 경우, 배우들은 분명히 프랑스 사람들이고, 대사도 프랑스어이지만, 그 대사의 속도나 영화의 문법은 미국식이다. 프랑스 영화는 영어 대사처럼 그렇게 속사포처럼 빠른 대사를 넣지 않는다. 천천히 쉬어가는 식의 사유가 만드는 빈틈이 프랑스 영화에는 거의 들어 있는데, <럭키 데이 인 파리>는 그냥 미국 영화 문법대로 흘러간다.
또 내가 예전에 봤던 박찬욱 감독의 <스토커>는 영어권 배우와 대사를 쓰면서도, 응시의 집요함과 도덕의 균열을 파고드는 미학은 한국 영화의 긴장으로 수렴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디 앨런의 <럭키 데이 인 파리> 역시 프랑스어와 파리의 풍경을 입었지만, 우연과 선택을 냉소적으로 배치하는 세계관은 그의 미국적 작가성으로 귀결된다.
여기서 잠시, 몇 가지 질문과 답을 던져본다.
우디 앨런 감독은 여전히 ‘운’을 믿는가?
그렇다. 그는 천재적 통찰력과 사유를 지닌 아주 노장이다. 지금은 인생의 끝자락에 도달한 시점인데도 여전히 ‘운’을 믿는 모양이다. 다만, 우디 앨런이 믿는 것은 고전적 의미의 운명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의지로는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의 축적이 결국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는 냉소에 가깝다. 오히려 그 지점에서 그의 문제의식은 더 선명해진다.
과학자들은 합리주의자 아닌가?
아인슈타인 역시 세계적 천재 과학자인데도 ‘운명’을 믿었다. 『운명의 바람 소리를 들어라』를 보면, 많은 위대한 과학자와 사상가, 예술가들이 신지학을 믿고 ‘운명’이 있다고 생각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렇다면 ‘운명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운명은 없다’거나 운명을 믿는 건 바보 같은 일이라고 단정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중간치의 사람들인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아주 못 배운 사람들도 미신과 운명을 찰떡같이 믿고, 아주 위대한 천재들도 운명이 정해져 있다는 운명론을 신봉하니까 말이다.
극과 극은 통하는 걸까.
이제 새해가 밝았다. 새해가 되면 재미로라도 신년 운세를 본다. 나는 어느 쪽 사람인가. 나는 우디 앨런이나 아인슈타인처럼 운명론자이다. 운을 믿고, 운명을 믿는다.
사실 생각해 보면, 부잣집에 태어나고 가난한 집에 태어나는 것 역시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정해진 운명 혹은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닐까. 우연일지라도 그게 운명이 된다. 자기가 선택한 결과가 아니라, 인간은 탄생한 순간부터 운명의 힘에 좌우되는 존재다.
그러니 무조건 인간의 노력만이 세상을 바꾼다, 라고만 부르짖을 수도 없고, 운명이 없다고도 말할 수 없다.
NOTE
나는 2025년부터 소위 삼재다. 그런데 이번 돼지띠 삼재는 첫해에 아주 전환점의 일이 생긴다고 했다. 난 그게 뭘까 하고, 작년에 신년 운세를 볼 때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편집자상 수상’이라는 획기적인 일이 생겼고, 그게 전환점이 된 건 사실이다.
또 올해 신년 운세를 봤다. 올해는 재물운이 확실히 큰 게 들어온다고 했다. 이제까지 미뤄왔던 재물이 제대로 들어온다는 것. 또 믿어볼까. 어쩐지 기대가 된다. 그런데 지금 내가 2026년 올해에 진행하는 여러 프로젝트를 보면, 그냥 지나칠 사안은 아니다. 아주 신빙성이 있는 내용이다. 올 한 해가 어떻게 흘러갈지 잘 지켜봐야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식의 운 신봉자는 무식한 사람들의 태도지만, 자기대로 갈 길을 가면서 운이나 운명을 믿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편이 진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정말 운명이 존재하는지, 아니면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인지는.
그런데 내가 살아보니까, 운이 존재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우디 앨런이나 아인슈타인처럼 그 의견에 동조한다. 인간의 세상에는 노력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합리적 인과관계가 적용이 안 되는 사례가 너무 많다.
그래서 사람은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제 갈 길을 가면서도 살짝 곁눈질로 자신의 운명을 한번씩 체크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야 일이 안 풀리면 운명 핑계도 댈 수 있고, 일이 잘 풀릴 때도 자신의 능력만으로 되었다고 자만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럭키 데이 인 파리> 이 영화에서도 정말 아주 좋은 우연한 사건이 결국 최악의 결과를 초래한다. 이건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실제로 우리 삶에서도 어떤 사람과의 만남과 선택이 최상의 행운처럼 다가오다가도 그 결말은 비극으로 끝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또 어떤 사소한 사건이 도미노처럼 큰 행운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큰 불행으로 마감하기도 한다.
인간사는 끝나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내가 늘 말하지만, 인생이란 관 뚜껑 덮을 때까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모든 일은 ‘끝나야 끝나는’ 법칙을 갖고 있다.
나는 이제 회사 홈페이지 제작을 기술적으로 다 완료했다. 처음에는 성공할지 확신은 100% 없었다. 왜냐하면 난 머리털 나고 홈페이지를 처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늘 그렇듯이 ‘그냥 해보자!’라고 일단 시도했다. 실패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또 얻는 테크닉이 생기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성공했다.
홈페이지는 아주 만족스럽게 잘 만들어졌다. 한뜸한뜸 내 생각대로 만들어갔고, 정리가 잘됐다. 이번에 새로 구축한 홈페이지는 내 출판 인생과 책읽는귀족의 주요 스토리가 전부 응집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어서 나는 또 오랫동안 품고 있던 ‘디오니소스 논술’ 프로젝트도 진행할 것이다. 완성은 분명한데, 그 결과에 대해서는 ‘운’도 한 숟가락 보태어져야 할 것이다. 그 시기가 정확하게 언제쯤일지는 모르지만, 행운이 함께하면 ‘소박’, ‘중박’, ‘대박’의 메뉴 중 어느 것이 선택될는지.
난 최선을 다해서 내 갈 길을 갈 것이고, 그 길에 하늘이 운명적으로 더 큰 그림을 그려줄지는 시간이 흐르면 알게 되겠지. 그러나 하다못해 최소한의 인간적 결과는 나오리라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나에게도 행운이 함께하길 바란다. 소위 ‘대박’이라는 걸 기대해 본다.
물론 그 시기는 론칭하자마자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운명이 동전만 넣으면 바로 음악이 나오는 주크박스도 아니니까. 하지만 언제 어느 때나 한 번쯤은 행운이 함께해서 대박이 나길 바란다.
어느 유명인이 그랬다. 크게 성공하려면 누군가 한 사람쯤 유명한 리더가 끌어줘야 수면 위로 그 존재가 올라온다고. 그런 만남을 하는 게 인생의 ‘운’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물론 자신이 갖고 있는 알맹이가 있어야 그 운은 오래 유지될 수 있다는 말도 잊으면 안 될 듯.
흙수저가 금수저처럼 금방 성공하기는 어렵다. 반면 금수저는 주변에 끌어 올려줄 사람도 많고, 이미 수면 위에 떠 있는 셈이다. 하지만 흙수저도 운이 좋으면 수면 위로 오를 수 있다. 그게 바로 ‘운명’이 아닐까. 정해진 운명.
올 한 해는 운명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가늠해 볼 수 있는 한 해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올해 대박이 안 터진다고 운명이 없는 건 아니겠지. 왜냐하면 늘 말하듯이 인생은 “끝나야 끝나는 법”이니까. 관 뚜껑 덮을 때까지만 터지면 된다.
하긴 고흐처럼, 눈 감고 나서 대박이 터진 사람도 있지만. 생전에는 단 한 점도 제대로 그림이 팔리지 않았는데, 지금은 세계적으로 사람들이 못 봐서 안달이 난 화가가 되었으니까. 그런데 고흐 역시 혼자 힘으로 그렇게 된 건 아니었다. 고흐를 끌어 올려준 존재가 있었다. 그게 죽고 나서 대박이 터진 거지만.
그러고 보면 인생은, 끝나야 끝난다기보다 끝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나야 보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운을 느끼는 ‘촉’이 좀 발달해 있다. 사실 편집자상을 받을 때도 그 한두 달 전부터 이상하게 느낌이 좋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전혀 몰랐지만, 그냥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았다. 예술가들이 보통 사람들보다 소위 감각의 ‘안테나’가 발달해 있는데, 그럴 수도.
올해는 그런 의미에서 어떤 느낌이 온다. 여러 의미로. 큰 흐름은 그렇지만, 자잘한 흐름은 좀 불편하기도 하고. 작은 변수가 생기면, 그것으로 지연이 될 수도 있겠지만 또 그것 역시 큰 흐름에서 볼 때 운명의 설계일 때도 많더라.
처음에 말했듯이, 시작은 좋은 일이었지만 결과는 나쁠 수도 있고, 반대로 시작은 불편한 변수일 수 있지만, 결과는 좋은 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인생은 그렇게 알 수 없는 것이다.
크게 볼 때, 길게 볼 때 목적지에만 잘 도달하면 될 일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은 ‘인생 수업’의 하나라고 보면 될 뿐이다. 많은 인생 수업을 쌓은 사람일수록 잘 버티고 앞으로 나아가면 더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법이다.
나는 어느 편에 설까. 물론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이 ‘버티는 것’이긴 한데, 나도 가끔은 멘탈이 흔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곧 다잡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가능한 것은 ‘꿈’을 잃지 않는 이유에서다. 나에게는 갈 길이 있고, 할 일이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FINALE
올 한 해는 운명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가늠해 볼 수 있는 한 해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올해 대박이 안 터진다고 운명이 없는 건 아니겠지. 왜냐하면 늘 말하듯이 인생은 “끝나야 끝나는 법”이니까. 관 뚜껑 덮을 때까지만 터지면 된다.
END NOTE
세상 일은 끝나야 끝난다.
2026 · 01 ·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