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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Étoile Bleue Créations · 푸른별창작소)

EDITOR’S NOTE
2025.12.24

편집자 노트를
잡지의 플랫폼 대기실로

이제 홈페이지 제작을 시작한 지 대략 일주일이 넘어서고 있다. 이미 큰 틀은 다 잡았고, 자료를 업데이트하며, 미세한 조정을 하고 있다. 아마 이번 주말까지는 어느 정도 작업을 완료하지 않을까 싶다.

코드 작업을 하면서 문득 내가 이 일에 적성이 잘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논리적으로 딱딱 떨어지는 그 묘한 쾌감을 느끼며, 코드를 짜고 있다. 물론 AI의 도움을 전적으로 받고 있지만,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을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올 한 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은 이 시점에, 새로운 홈페이지 제작 완료를 앞두고 있어서 감회가 새롭다. 디지털 공간에 새로운 집을 짓는 것도 즐거운 일이지만, 스스로 그걸 해낸다는 게 의미가 있다.

돌아보면, 내 작업의 서사가 떠오른다. 포항에서 학창 시절을 줄곧 지내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철학과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논술과 국어 학원 강사를 하면서 결국 내가 있을 곳은 더 넓은 세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뭔가 답답하고 좁은 세상이 숨을 쉴 수 없게 했으니까.

그래서 인생의 행로를 바꿨다. 대학원 진학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보자. 내 꿈을 펼쳐 보자. 무작정 서울에 올라왔다. 그런데 그때도 그 원동력은 컴퓨터가 막 대중적으로 보급되던 시기였고, 온라인 세상에서 알던 친구들 덕분이었다. 나는 그 당시 시대적 배경이 IMF라는 혹독한 시기가 시작되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내 길을 갔다.

요즘 이 시기와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내가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파리행을 준비하는 이때, 환율은 미친 듯이 치솟고 있다. 한국에서만. 내가 서울에 올라올 당시 한국은 IMF라는 혹독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처럼 시대적 상황은 접어두고, 환율과 상관없이 파리행을 계획대로 진행할 것이다. 시기에 미세한 조정이 들어간다면, 그건 환율 때문이 아니라, 내 계획의 진행 속도에 따른 것이다.

이번에 홈페이지를 직접 만들면서 여기저기, 이곳저곳 구조를 쌓고 디자인을 입히면서 내가 예전부터 원하던 길을 또 하나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잡지’, 그 형태는 디지털 잡지다. 나는 서울에 올라와 신문과 잡지, 광고와 출판을 넘나들며 종이를 기반으로 한 일을 해왔다. 그러면서 나는 가장 편안한 자리, 책이라는 형태로 물성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출판에 정착했다. 그리고 이 길을 20년 이상 걸어오고 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나의 심장을 가장 뛰게 한 것은 잡지가 아니었나 싶다. 화려한 색감의 디자인, 매력적인 지면 배치, 나는 잡지를 만들 때 감각이 살아났다. 그리고 자유에의 충동이 더 밀려왔다. 왜냐하면 잡지는 상대적으로 마감일에 덜 쫓겼기 때문이다. 신문은 마감일 압박이 심했고, 내용은 무미건조했고, 그래서 오래 머물지 못했다. 광고는 치열한 경쟁을 위한 프리젠테이션 준비, 고객의 니즈에 충실해야 했다. 그래서 역시 ‘자유의 공기’를 늘 갈망하는 나와는 결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책은 점잖았다. 단행본으로서의 책은 잡지처럼 화려한 패션을 뽐내지 않지만, 경건하고 엄숙미, 품격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인문, 문학 장르의 도서는 그랬다. 그래서 나는 책은 언제나 함께할 수 있다는 것. 평생 같이 가야 할 나의 길 위의 동반자.

그런데 이제 시대는 바야흐로 디지털 시대가 되었다. 종이의 그 영원한 물성은 여전히 존재감이 있지만,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파도를 잘 타야 한다. 그 물결 위에서 춤을 추어야 한다. 아주 멋있는 댄스를! 그렇지 않으면 그냥 그 속도에 휩쓸려 들어갈 뿐.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다.

나는 한때 꿈꾸었던 잡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이제 디지털 시대에는 자본 없이도 잡지를 발행하고 만들 수 있다. 그 당시에는 잡지가 자본주의의 논리에서는 막차를 타던 시점이었다. 아주 감각 있는 잡지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내 꿈은 그저 꿈으로 머물러 있어야 했다. 먼지와 함께 잠든 오래된 앨범처럼.

이번에 새로운 홈페이지를 제작하면서 문득 그때의 꿈이 깨어났다. 세상은 이제 내가 꿈꾸는 것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되어주고 있다. 그건 바로 디지털 세상, 온라인 무대! 나는 파리에 가면 전 도시가 박물관이자 문화의 유적지인 그곳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은 채 자유롭게 돌아다닐 것이고, 그 흔적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잡지를 발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쓰고 있는 편집자 노트를 확장해서, 예전에 접었던 잡지를 만들어 보기로.

이건 그냥 보통 사람이 잡지를 한번 만들어 보겠다는 충동과 다르다. 나는 그동안 신문사, 잡지사, 광고회사, 출판사를 두루 거치면서 편집장이라는 역할도 오랫동안 했기에, 나 자체가 곧 출판 시스템이다. 그게 신문이 되었든, 잡지가 되었든, 광고가 되었든, 책이 되었든, 시스템은 견고하다. 그리고 살아 있다. 언제든 버튼만 누르면 바로 그 시스템으로 갈 수 있다. 신문이면 신문, 잡지면 잡지, 광고면 광고, 책이면 책.

내 인생의 서사 덕분에 나는 이제 마음만 먹으면 뭐든 발행할 수 있는 전문인이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위대한 자산이다. 인생의 후반기에 나처럼 설렘을 간직한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파리에 가서 인생 후반기를 새롭게 짜는 구상을 하면서 심장이 뛴다. 10대, 20대도 나처럼 설렐 수 있을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또 지난 내 시간의 축적으로 나는 파리에서의 로드맵을 창의적으로 구상할 수 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잡지 발행. 한국어 교재 개발 프로젝트 말고도 취미처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게 바로 잡지를 제작하는 것이다. 디지털 잡지는 제작비도 들지 않고, 취재 기자로 일했던 내가 직접 발로 뛰어 사진을 담아 올리며 만들어갈 감각적인 잡지가 될 것이다. 어차피 파리를 누비고 다닐 건데, 그 결과물을 생산적으로 남기자는 취지다.

이 편집자 노트는 그 시도를 위한 실험이 될 것이다. 디자인과 발행의 속도와 주기, 그리고 여러 가지 실험을 이 공간에서 해볼 생각이다. 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생기고 또 뭔가 더 추가해야 할 미션과 비전이 생길지도. 항상 모든 작업은 브레인 스토밍 과정을 내부적으로 품고 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 이제 다음주부터는 정상적인 일상이 다시 시작될 것이다. 프랑스어 공부를 매일 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편집자 노트를 발행하고, 날씨가 좋으면 산책을 하며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 그리고 파리행을 준비할 것이다. 내가 비행기에 오르는 그 날을 기다리면서 나의 일상은 광교 작업실에서 계속된다. 광교 호수공원을 바로 앞에 둔 광교 작업실은, 나에게 파리로 향하기 전 마지막 브릿지다. 여기서 나는 서두르지 않고 파리행을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