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건축가로 산다는 것
도면이 종이에서 화면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사람이 머무는 구조를 설계하는 일.
한때 나는 건축학과에 가고 싶었다. 도면을 그리고, 땅 위에 집을 세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다. 집을 짓는 일은, 사람의 삶을 설계하는 일이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그 감각은 틀리지 않았다. 다만 장소가 바뀌었을 뿐이다.
『건축학개론』에서 제주도의 집은 로맨스의 결말이 아니다. 그 집은 오래 미뤄졌던 마음이 구조로 드러난 흔적에 가깝다. 설계는 이미 끝났지만, 집은 늦게 지어진다. 그리고 집이 완성되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아, 이 사람은 이렇게 살고 싶었던 거구나.
나는 건축학과에 가지 않았다. 대신 디지털에 집을 짓고 있다.
주소가 있고, 구조가 있고, 누군가는 드나들고, 누군가는 머무르는 공간. 빛이 들어오는 시간대를 고민하고, 사람이 오래 머무를 수 있는 동선을 생각한다. 문장을 어디에 둘지, 메뉴를 어디에 달지 고민하는 일은 실제 집을 고치는 일과 생각보다 많이 닮아 있다.
어제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제는 물리적 건물보다, 디지털 공간을 설계할 줄 아는 사람이 더 필요한 시대라고.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는 곳은 점점 화면 안으로 들어오고, 그 안에도 분명히 집과 길과 방이 생긴다.
이번에 Noblewithbooks의 홈페이지를 다시 짓게 된 건, 기술적인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동안 남이 관리해주는 집에 살고 있었다는 것을. 언제 불이 꺼질지 모르는 집, 비 오는 밤에 갑자기 문이 잠길 수 있는 집.
실패가 아니라, 거주자의 권리다.
처음부터 멋진 집일 필요는 없다. 벽은 얇아도 되고, 여백은 살아보면서 늘리면 된다. 하나 고치고, 며칠 살아보고, 다시 뜯고, 다시 세운다. 이것은 실패가 아니라, 거주자의 권리다.
나는 지금 디지털 건축가로 살고 있다. 땅 위에 콘크리트를 붓지는 않지만, 사람이 머무는 구조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예전에 꿈꾸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 시대에는, 이쪽이 더 건축에 가깝다.
이 편집자 노트는 집을 짓는 사람의 작업 일지다. 완공을 알리는 글도 아니고, 홍보를 위한 설명도 아니다. 어디를 고쳤고, 왜 그렇게 했는지, 그리고 내일은 무엇을 손볼지를 기록한다.
이제 Noblewithbooks는 디지털에 지은 집에서 산다. 그리고 이 집은, 계속 고쳐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