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프랑스어를 사랑해서 이 길을 택한 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방송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편입은 영화를 공부하기 위한 준비 단계에 가까웠다. 파리에서 영화를 공부하려면, 프랑스어는 피할 수 없는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은 비교적 현실적이었다. 비용, 시간, 시스템을 모두 따졌고 그 조건을 가장 무리 없이 충족하는 곳이 방송대였다. 3학년에 편입한 뒤, 지금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졸업을 바로 앞둔 시점에 와 있다. 2026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고, 애초 계획대로 2년 만에 과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언어 자체에 큰 감정이 없었다. 프랑스 영화를 더 정확하게 보고 싶었고, 파리에서 공부하려면 최소한 이 언어를 통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프랑스어는 선택이라기보다 조건에 가까웠다.
그런데 공부를 하다 보니, 생각보다 언어 쪽에서 멈추는 시간이 늘어났다. 문장을 읽다가, 영상을 보다가, 뜻보다 구조에서 자꾸 발이 걸렸다. 왜 이렇게 말하는지, 왜 이 시제를 쓰는지, 왜 굳이 돌아가는 표현을 택했는지 같은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어린 왕자』를 원서로 읽으면서 그 감각은 더 분명해졌다. 번역본으로는 여러 번 지나쳤던 문장들이 프랑스어로 읽히자 전혀 다른 밀도로 다가왔다. 문장은 짧고 단순한데, 대충 읽히지 않았다. 의미가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는데도 이상하게 비어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원서 낭독을 들을 때는 문장의 리듬이 먼저 귀에 들어왔고, 그 다음에 의미가 따라왔다. 시제 하나, 어순 하나가 감정을 꾸미기보다는 생각의 방향을 정리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했다.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이 언어가 무엇을 과장하지 않는 대신 무엇을 정확히 남기려 하는지.
그 이후로 프랑스어는 영화를 위한 준비물이라는 자리에서 조금 벗어났다. 영화를 볼 때도 이야기보다 구조를 먼저 보게 되었고, 인물의 감정보다 그 감정이 놓인 문맥을 더 오래 들여다보게 되었다. 프랑스 영화를 좋아해서 프랑스어를 공부했다기보다, 프랑스어를 공부하면서 영화를 보는 방식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영화를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사유가 움직이는 과정으로 생각한다. 언어가 사고를 만들고, 그 사고가 화면 위에서 다른 형태로 번역되는 것. 그 연결을 직접 확인해 보고 싶어졌고, 그 끝에 파리가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