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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기반 창작, 출판 프로젝트

(Étoile Bleue Créations / 푸른별창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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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ginning

강원도의 힘

홍상수 감독을 ‘롤모델’로 만든 첫 확신

나는 원래 철학 쪽 사람이었다. 대학에서 니체를 제대로 만나고, 디오니소스적인 것에 거의 광적으로 끌렸다. 규칙과 규범, 금지와 금욕, 그런 건 싫었다. 내 안에는 늘 “틀을 깨고 싶다”는 쪽이 더 크게 울렸으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자꾸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되더라. 니체로 가려다가 플라톤으로 꺾고, 끌리는 쪽을 알면서도 “자료가 더 풍부한 쪽”을 택하고, 욕망을 외치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방식으로만 일탈하고. 그때부터 내 안에서 질문이 시작됐다. 나는 디오니소스적 인간인가, 아폴론적 인간인가.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질문 자체가 예술과 맞닿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둘 중 하나를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성향이 충돌하고 긴장하는 상태 자체가 창작의 조건이라는 것. 영화가 종합예술이라면, 그 긴장은 더 직접적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것.

나는 영화에 철학의 사유를 입혀서 나만의 색깔이 담긴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망이 그때부터 생겼다.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1998)은 그의 두 번째 장편 영화다. 데뷔작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이후 발표된 이 작품은, 이후 홍상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형식과 주제의 출발점에 가까운 영화다. 하나의 사건을 두 개의 시선으로 나누어 배치하는 구조, 인물들의 우연한 교차, 그리고 명확한 갈등이나 해소를 의도적으로 비켜가는 태도는 이 영화에서 이미 분명하게 드러난다.

영화는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며, 서로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두 개의 이야기를 병렬적으로 보여준다. 전반부에서는 서울에서 내려온 남자들이 강원도에서 겪는 짧은 만남과 욕망이, 후반부에서는 같은 공간을 다른 시간대와 다른 인물의 시선으로 다시 펼쳐진다. 중요한 사건이 발생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설명하거나 강조하지 않는다. 인물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해명하지 않고, 카메라는 판단하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강원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장치처럼 기능한다. 서울이라는 일상의 규범에서 잠시 벗어난 공간, 욕망이 고개를 들 수 있지만 끝내 완결되지 않는 장소다. 인물들은 원하는 것을 말하지 못하거나, 말했더라도 책임지지 않는다. 그 어정쩡한 상태 자체가 이 영화의 정조를 이룬다.

『강원도의 힘』은 이후 홍상수 영화 세계의 원형처럼 보인다. 사랑과 욕망은 늘 어긋나고, 인물들은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중요한 순간마다 말을 돌린다. 윤리적 판단은 끝까지 관객에게 남겨지고, 감독은 거리를 유지한다. 이 영화가 의미 있는 이유는, 그런 태도가 이미 두 번째 작품에서부터 거의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내게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처음으로 들게 한 작품은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이었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도 저렇게 담백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홍상수 감독은 내게 그때부터 롤모델이 되었고, 나도 저렇게 담백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간직하게 되었다.

돌아보면, 그 욕망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철학이 있었다. 철학은 나에게 답을 주기보다 질문을 남겼고, 그 질문들은 형태를 바꿔 영화라는 매체로 옮겨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영화를 하나의 표현 수단이 아니라 사유가 움직이는 공간으로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