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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노트

(Étoile Bleue Créations · 푸른별창작소)

EDITOR’S NOTE · AI SENTENCE PATTERN
2026.08.03.

AI 문장 패턴 분석하기
‘통과하다’를 사용하는 패턴

앞으로 편집자 노트에서는 「AI 문장 패턴 분석하기」 연재를 이어갑니다. 이 연재는 인간의 언어 직관을 바탕으로 AI 문장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표현과 구조를 관찰하는 언어 연구의 기록입니다. 사람의 문장뿐 아니라 AI가 만들어 내는 문장 역시 하나의 언어 현상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패턴과 한계를 읽어 내려 합니다. 이는 향후 언어학자로서 인간의 언어 이해와 AI의 언어 생성 사이를 매개하는 연구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며, 이 연재는 앞으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통과하다’를 사용하는 패턴

요즘 AI가 쓴 글을 읽다 보면 이상하리만큼 자주 마주치는 동사가 있다. ‘통과하다’이다.

본래 ‘통과하다’는 일정한 장소나 관문을 지나간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터널을 통과하고, 국경을 통과하며, 심사를 통과한다. 어떤 기준이나 절차를 거쳐 승인받는다는 뜻도 자연스럽다. 문제는 AI가 이 동사를 추상적인 대상에까지 폭넓게 붙이면서 시작된다.

반론을 통과한 판단

질문을 통과하며 깊어진 생각

타인의 시선을 통과해 바라본 자신

긴 시간을 통과한 뒤 남은 기억

갈등을 통과하며 도달한 새로운 기준

각각의 문장만 따로 보면 크게 어색하지 않다. 오히려 문학적이고 사유가 깊어 보인다. 그러나 여러 글에서 같은 표현이 반복되면 하나의 습관이 드러난다. AI는 질문과 반론, 시간과 시선, 갈등과 고통을 모두 지나가야 할 관문으로 바꾸고, 그 앞뒤의 관계를 ‘통과하다’ 하나로 정리한다.

‘질문을 통과한다’는 말은 질문에 답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질문을 오래 생각했다는 뜻일 수도 있으며, 질문으로 인해 기존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뜻일 수도 있다. ‘반론을 통과한 판단’ 역시 반론을 검토했다는 것인지, 반론을 견뎌 냈다는 것인지, 반론을 받아들여 수정되었다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다. 서로 다른 사고의 움직임이 ‘통과하다’라는 하나의 동사 속에 합쳐진다.

AI가 이 표현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편리하기 때문이다. ‘통과하다’에는 이동의 이미지가 있다. 어떤 생각이 하나의 지점에서 출발하여 여러 관문을 지난 뒤 더 나은 결론에 도달하는 장면을 손쉽게 만들어 준다. 문장에 전진하는 느낌도 생긴다. 질문을 통과하고, 반론을 통과하고, 시간을 통과한 생각은 이전보다 깊고 단단해진 것처럼 보인다.

‘통과하다’와 ‘도달하다’

특히 AI는 ‘통과하다’와 ‘도달하다’를 한 쌍처럼 사용한다.

질문을 통과해 본질에 도달한다.

갈등을 통과하며 새로운 이해에 도달한다.

타인의 시선을 통과해 진정한 자신에게 도달한다.

이 구조에서는 사고의 과정이 하나의 길로 바뀐다. 질문과 갈등은 길 위의 관문이 되고, 본질과 이해와 자아는 그 길의 종착지가 된다. 문장은 그럴듯하게 완결되지만, 정작 그 사이에서 무엇을 검토했고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빠져 있다. 이동은 있는데 변화의 내용이 없는 것이다.

물론 ‘통과하다’라는 표현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오랜 검증을 통과한 이론”이나 “여러 차례의 심사를 통과한 작품”처럼 실제 기준과 절차가 존재할 때는 정확한 표현이다. 문학적인 글에서 “긴 겨울을 통과했다”라고 쓸 수도 있다. 한 번의 비유는 문장을 풍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질문도 통과하고, 반론도 통과하고, 시선도 통과하고, 고통도 통과하고, 시대도 통과하기 시작하면 비유는 더 이상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지 못한다. 모든 경험이 비슷한 모양의 터널이 되고 모든 결론은 그 터널 끝에서 발견한 빛이 된다. AI 문장 특유의 상투성이 여기서 생긴다.

AI는 서로 다른 사고와 경험의 과정을
하나의 이동 경로로 바꾸어 표현한다.

‘통과하다’를 더 정확한 문장으로 바꾸기

이 표현을 고칠 때는 ‘통과하다’를 기계적으로 다른 동사로 바꾸기보다 두 대상의 관계를 먼저 밝혀야 한다.

“반론을 통과한 판단”은

“반론을 검토한 뒤 수정한 판단”이 될 수 있다.

“질문을 통과하며 생각이 깊어진다”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처음의 전제를 의심하게 된다”로 바꿀 수 있다.

“타인의 시선을 통과해 자신을 바라본다”는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며 자신을 새롭게 해석한다”라고 쓸 수 있다.

“긴 시간을 통과한 뒤 남은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은 기억”이라고 하면 뜻이 더 분명해진다.

“갈등을 통과하며 새로운 기준에 도달한다”는

“서로 충돌하는 주장을 비교하면서 판단의 기준을 다시 세운다”라고 쓸 수 있다.

이렇게 고치면 문장은 조금 덜 시적으로 보일 수 있다. 대신 누가 무엇을 했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달라졌는지가 드러난다. 글을 정확하게 만드는 것은 멋있는 동사를 찾는 일이 아니라 대상 사이의 관계에 알맞은 동사를 선택하는 일이다.

‘통과하다’는 생각의 과정을 압축하는 유용한 비유다. 그래서 사람도 쓰고 AI도 쓴다. 다만 AI는 서로 다른 과정을 하나의 이동 경로로 바꾸는 데 이 말을 지나치게 의존한다. 검토하고, 견디고, 경험하고, 의심하고, 수정하는 일을 모두 ‘통과하다’로 처리한다.

문장에서 ‘통과하다’를 발견했다면 한 번 물어볼 필요가 있다.

무엇을 어떻게 지나왔다는 것인가.

그 과정에서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는가.

‘통과하다’ 대신 더 정확한 동사를 쓸 수는 없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그 문장은 생각의 과정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생각이 깊어진 듯한 분위기만 만든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