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문장 패턴 분석하기
‘들고 있다’를 사용하는 패턴
앞으로 편집자 노트에서는 「AI 문장 패턴 분석하기」 연재를 이어갑니다. 이 연재는 인간의 언어 직관을 바탕으로 AI 문장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표현과 구조를 관찰하는 언어 연구의 기록입니다. 사람의 문장뿐 아니라 AI가 만들어 내는 문장 역시 하나의 언어 현상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패턴과 한계를 읽어 내려 합니다. 이는 향후 언어학자로서 인간의 언어 이해와 AI의 언어 생성 사이를 매개하는 연구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이며, 이 연재는 앞으로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들고 있다’를 사용하는 패턴
AI와 대화를 하다 보면 “들고 있다”라는 표현을 자주 만나게 된다.
“이 문장은 중요한 의미를 들고 있다.”
“그 작품은 여러 가능성을 들고 있다.”
“이 질문은 시대의 문제를 들고 있다.”
“그 개념은 복잡한 역사적 배경을 들고 있다.”
문장의 뜻을 전혀 알아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무엇을 말하려는지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 화자에게는 어딘가 걸리는 표현이다. 사람이 손에 물건을 들고 있는 장면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본래 “들다”는 물건을 손이나 팔로 받쳐 올리는 동작을 나타낸다. 가방을 들고, 우산을 들고, 책을 든다. “들고 있다”는 그렇게 들어 올린 물건을 계속 지닌 상태를 말한다.
그런데 AI 문장에서는 손으로 들 수 없는 것들까지 자주 “들고 있다.” 문장이 의미를 들고 있고, 작품이 가능성을 들고 있으며, 질문이 문제를 들고 있다. 생각과 개념, 역사와 감정도 하나의 물건처럼 어떤 대상의 손에 들려 있다.
물론 한국어에서도 추상적인 대상을 물리적인 사물처럼 표현하는 경우는 많다. “의미를 담고 있다”, “가능성을 품고 있다”, “문제를 안고 있다”, “특징을 지니고 있다”와 같은 표현이 그렇다. 추상적인 대상에 공간이나 신체의 이미지를 부여한다는 점에서는 “들고 있다”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어에는 각각의 대상과 자연스럽게 결합해 온 동사가 있다.
그릇이나 문장에는 의미를 “담는다.”
사람이나 계획은 가능성을 “지닌다.”
생각이나 마음은 질문을 “품는다.”
개인이나 사회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결합은 오랜 사용을 통해 한국어 안에서 하나의 익숙한 표현 단위로 굳어져 있다. 반면 “의미를 들고 있다”나 “가능성을 들고 있다”는 말은 동사와 목적어의 관계가 아직 한국어의 감각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
“이 문장은 중요한 의미를 들고 있다.”
이 문장에서 의미는 마치 문장이 손에 쥐고 있는 물건처럼 놓인다. 그러나 문장은 의미를 손에 들어 보이는 존재가 아니다. 문장 안에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라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가 자연스럽다. 의미가 그 문장의 성질로 존재한다는 뜻이라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라고 할 수도 있다.
“그 작품은 여러 가능성을 들고 있다.”
이 문장도 뜻은 통하지만 표현의 초점이 모호하다. 작품 안에 앞으로 발전할 여지가 있다는 말이라면 “여러 가능성을 품고 있다”나 “다양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가 자연스럽다. 작품이 가능성을 실제로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들고 있다”가 자주 나타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이 표현이 매우 넓은 관계를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가 어떤 것을 가지고 있거나 포함하거나 유지하고 있다는 관계를 모두 “들고 있다”로 나타낼 수 있다.
문장은 의미를 들고 있다.
작품은 가능성을 들고 있다.
개념은 역사를 들고 있다.
사회는 문제를 들고 있다.
명사만 바꾸면 같은 구조를 계속 사용할 수 있다. 문법적으로도 크게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의 동사가 서로 다른 관계를 모두 맡게 되면, 대상마다 달라야 할 의미의 결이 사라진다.
의미는 담기는 것인지, 지니는 것인지, 드러나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가능성은 품는 것인지, 열어 두는 것인지, 내포하는 것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문제 역시 안고 있는 것인지, 제기하는 것인지, 포함하는 것인지가 모호해진다.
“들고 있다”는 구체적인 관계를 선택하지 않은 채, 어떤 대상이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다는 사실만 남긴다.
이때 AI 문장의 특징이 드러난다. AI는 명사와 명사 사이의 관계를 세밀하게 구분하기보다, 하나의 포괄적인 동사를 이용해 빠르게 연결한다. 문장의 표면은 완성되어 있지만, 그 안에서 두 대상이 실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는 충분히 결정되지 않은 경우가 생긴다.
“이 질문은 중요한 문제를 들고 있다.”
질문이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질문 자체가 하나의 문제를 제기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질문 뒤에 더 큰 쟁점이 숨어 있다는 뜻일 수도 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다른 관계다.
“이 질문은 중요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다.”
“이 질문은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이 질문의 이면에는 중요한 문제가 놓여 있다.”
어떤 동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문장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러나 “들고 있다”는 그 차이를 결정하지 않고 하나의 표현 안에 남겨 둔다. 그래서 얼핏 의미 있어 보이지만, 자세히 읽으면 무엇을 말하는지 선명하지 않은 문장이 된다.
사람이 쓰는 문장에서도 동사를 정확히 고르지 못하면 비슷한 일이 생긴다. 하지만 AI 문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반복적인 패턴으로 나타난다. AI는 다양한 명사와 두루 결합할 수 있는 동사를 선호하고, 그 동사를 이용해 아직 정리되지 않은 관계까지 문장의 형태로 완성한다.
“들고 있다”는 그 과정에서 유용한 표현이다. 소유, 포함, 내포, 유지, 보존과 같은 여러 관계를 하나로 묶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그 편리함 때문에 한국어 문장은 어색해지고 의미는 흐려진다.
추상적인 대상을 물건처럼 들어 두 명사를 연결한다.
따라서 AI 문장에서 “들고 있다”를 발견했을 때는 단순히 다른 동사로 바꾸기 전에 두 명사가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지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안에 포함되어 있다면 “담고 있다”나 “포함한다.”
본래의 성질로 가지고 있다면 “지니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여지가 있다면 “품고 있다”나 “가능성이 있다.”
부담이나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면 “안고 있다.”
말이나 질문을 통해 밖으로 드러낸다면 “제기한다.”
적절한 동사를 선택하는 일은 문장을 꾸미는 일이 아니다. 대상과 대상 사이의 관계를 정확히 밝히는 일이다.
“들고 있다”는 무엇인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말해 준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지는 말해 주지 않는다. AI 문장을 인간의 문장으로 다듬는 일은 바로 그 관계를 다시 찾아 주는 데서 시작된다.